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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묶인 교사

by Applepie

깨질듯한 두통을 안고 출근하기 싫은 마음과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글을 쓴다.


올해로 12년차 교사, 올해가 오기 전까진 난 대체로 내 일을 사랑했다. 정년까지 할거라는 마음이 있었고 아이들을 대체로 사랑했다.

그리고 올해가 오기전까진, 난 '손발이 묶여 뭘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성토를 미안하지만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올해, 학교를 옮기고 학폭담당자가 되고 tv에 나올만한 애의 담임이 되기 전까진.


며칠전 그 아이가 청소시간에 쓰레받기에 담긴 쓰레기를 여학생 머리 위에 붓는 것을 보았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여학생은 목소리를 듣지 못한 급우들이 많을 정도로 소극적이고 얌전한 아이였다. 이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나를 감쌌다. 자, 내가 이 미친 아이를 어떻게 할수 있을까.

1. 말로 타이른다.

2. 상담실로 보낸다(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 이 부모는 이미 몇개월전 동의 안함. 강제할 수 없다.)

3. 복도로 잠시 분리한다(수업권땜에 불가능)

4, 학폭을 연다(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먼저 제기해야 가능. 근데 이 학폭처분이라는것도 얼마나 웃음이 나오는지 아는가.)

내가 할수없이 1번으로만 애쓰고 있는 동안 우리반 선량한 학생들은 그 학생의 다채로운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학폭 담당자가 되고 사안처리에 대한 연수를 들었다. 최근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분리한다는 조치가 생겼는데 최장 3일 이내이고, 분리할 경우에도 가해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해줘야 한단다. 따로 온라인 수업을 제공하거나 뭐 과제를 주거나 해서 암튼 수업권이 해쳐지면 안된단다.


실제 모 학교에서 있었던 일. 학폭이 열리고 전담기구 처분이 끝났는데 '교육'이었다고 했다. 인성교육 이런거. 피해학생의 어머니는 너무 억울하셨댔다. 그간 우리애가 저 애때문에 당한 고통이 큰데 이게 끝인가요?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부모에게 받을 순 없나요?

정답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없다.'이다. 일단 가해학생의 부모의 폰번호는 알려줄수 없다. 또 전담기구에서 나지 않은 처분에 대해 생활부장 교사가 권고할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전담기구가 내릴수있는 처분엔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있다. 1호가 공개사과, 숫자가 커질수록 교육, 교내봉사 이런거다. 속시원한 처분을 원하면 교육청 심의위원회로 올리거나 행정심판인데 이런 과정은 피해부모에게도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왜 피해자 부모가 수고를 감수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가.


그리고 라스트팡, 학폭 처분을 받은 사실을 생기부에 기재하는게 원칙이나, 반드시 졸업 후 몇년이내에 삭제해줘야 한다.(삭제하라는 방침을 아예 규정으로 만들었으면서 기계적으로 삭제는 안된다. 전담기구 열어서 삭제합니다~하며 회의하는 모양새를 내야한다. 답은 정해져있는데?)


점점 두통이 심해진다. 출근시간이 다가온다. 나도 걱정이다. 큰병 안걸리고 올해를 버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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