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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와이프

by Applepie

"오빠, 잠깐 나 좀 봐."


지난 3월,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때, 결국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마저 감염된 직후였다. 남편과 나는 격리하게 될 아이를 돌보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남편이 오전 근무를 바꾸어 11시까지 맡고 그 후엔 내가 맡겠다는 얘기를 하다 어린아이가 확진이 되면 보호자 한 명을 공동 격리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내가 공동 격리자가 될 것을 제안(아니, 제안보다 더 세고 요구보다는 약한 어떤 것)했다. 내가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안 하고 일주일을 격리한다고? 당시의 학교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하루에도 확진자가 둘 이상씩 나와 갑자기 원격 전환되는 학급들이 허다했고 갑작스러운 교사들 확진에 보결 들어갈 인원이 부족했다. 휴직자에, 심지어 퇴직한 교사에게까지 연락이 간다고 했다. 사정이 어려우니 며칠만 나와서 일해달라고.

이런 생각에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고 있을 때 남편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이건 합법인데 뭘 고민하는 거야? 학교 사정을 네가 왜 봐줘?'


순간 움찔하여 말문이 막혔다. 내가 또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못 누리려고 하는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확진된 내 아이만 생각할 때가 아닐까. 하지만 석연치 않았다. 가족을 1순위로 여기는 게 마땅하다 생각해 남편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사실 난 내일 하루는 꼭 출근하고 싶은 게 진심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학교 사정이 걱정되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모레부터 원격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안내를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충분히 하고 싶었던 거다. 1주일 원격수업에 사용할 준비물과 학습지도 직접 아이들 손에 들려주고 싶었다. 겨우겨우 시간을 내어 우리 교실에 한 시간씩 들어오실 보결 선생님 다섯 분 말고, 진짜 담임인 내가 챙기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공동 격리자가 되어선 안됐다. 하지만 진짜 서운했던 건, 일에 대한 내 책임감을 너무도 가벼이 여기는 남편의 태도였다.


'오빠는 내 일이 뭐라고 생각해? 나 내일 출근하고 싶어. 나도 학급을 맡은 담임이고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게 간단히 안 나가도 되는 게 아니야.'

그 뒤에 몇 마디를 더 붙였던 거 같다. 여기 쓰기 좀 민망하지만 오빠 일만 중요한 거 아니다 이런 좀 유치뽕짝 한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은 순순히 내 말에 수긍하며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출근하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고. 자긴 내가 학교 눈치를 보느라 공동 격리자를 망설이는 줄 알았다고. 내일 그냥 얘기 나눈 대로 서로 교대로 보자고.

나도 이해해줘 고맙다고, 내일만 그렇게 하고 모레부턴 원격이니 재택 하겠다고, 대화는 나쁘지 않게 매듭지어졌다. (결과적으론 쓸모없는 대화였다. 대화 직후에 남편이 확진되어버렸기 때문. 공동 격리자고 뭐고 본인이 찐 격리자가 되어버렸다.)


가벼이 넘길수도 있는 일에 내가 정색을 한건 평소의 억울함이 쌓여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육아휴직, 육아시간, 방학 등 훌륭한 제도를 이용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남편의 공백을 꾸준히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이를 씻겨야 하고 설거지는 산더미 같은 상태에서 병원에서 콜이 온다. 환자가 위험하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남편은 퇴근이 6시를 훌쩍 넘기는데 나는 육아시간을 써서 2시 반에 나올 수 있다. 그럼 당연히 하원은 나의 몫이 된다. 퇴근 전까지 모든 일을 숨도 못 쉴 정도로 바쁘게 마무리 짓고 3시에 아이 하원 차량 앞에 태연하게 서있는 것이다.

아님 고등학교 3년 내내 의대에 가고 싶었으나 못 간 자의 자격지심일수도.


물론 남편의 직장문제는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안다. 퇴근 후의 그는 아주 가정적이고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그리고 나보단 그가 일적으로 성공하는 게 우리 가정에 훨씬 더 이롭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이런 모든 이유로 난 내가 육아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억울함은 쌓이고 지난 3월처럼 표출하게 되는 날도 있다. 중요한 간담회가 있다며 아직까지 남편이 퇴근하지 않은 오늘처럼 말이다. 그가 없는 동안 하원, 밥 차려 먹이기, 놀이터, 씻기기, 놀아주기 등 많은 일을 태연히 한 오늘의 나는 4개월 전의 나보다 성숙하게 글에 내 억울함을 담아 보았다. 왜 우리 직장은 2차까지 가는 간담회가 없는가. 그것보다 간담회를 하면 내가 갈 수나 있을까.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도, 억울해지지도 말아야지. 오늘은 심지어 불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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