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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초등학생 학력저하가 나타나고 있을까?

2021년 7월의 이야기

by Applepie

네이버 마이 박스에서 굳이 7년 전 오늘이라고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사진 속 그날은 나의 임상장학 수업 공개가 있던 날이었다. 사진을 보니 그날의 긴장과 후련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곧 마음이 불편해졌다.

​요즘의 나는 뭐 워낙 과거사진을 보면서 자주 마음 아파한다. 훨씬 싱그러운 얼굴과 날씬한 몸, 다크서클이나 튀어나온 지방 없이 매끄러운 눈밑을 보면 출산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속절없이 변해버린 현재의 모습이 너무 속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진들을 보고 불편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진 속 7년 전 우리 반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게 과거형이라 서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에겐 보기 힘든 눈빛이라서.

​3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고 오랜만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학교란 곳은 별로 변화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변해버린 환경과 시스템에 적응할 것을 가장 걱정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변해버린 아이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학년을 거의 원격수업으로만 한 아이들이라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고만 생각했다. 3개월을 아이들과 꽉 채워 보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코로나 탓을 하기엔 그 전의 아이들과 그 이상의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학력이 낮아진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아니, 학력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 같고 바로잡기 위해 문제집을 사거나 학원을 등록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어려워서 못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야 더 비슷할까.


몇 가지 일화를 얘기해보자. '마지막 페이지 펴세요.'라는 나의 말이 끝나자 불안한 정적이 교실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마주 보며 웅성웅성하더니 뒤따르는 질문들. '마지막 페이지가 어디예요?' '어디 펴야 돼요?' '선생님, 저 여기 폈어요. 맞아요?' 다른 선생님께 전해 들은 일화도 있다. 이른 더위가 찾아왔던 어느 날, 우리 반 학생이 벌게진 얼굴로 하굣길에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들렀단다. 보건 선생님께서는 '더워서 그런 것 같구나. 바로 집에 가지 말고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렴.'이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는 '그늘이 뭐예요?'라고 물었다고. 아주 천진하고 해맑은 모습이다. 어른과 대화를 많이 해 보지 않은 듯한 모습. 이렇게 간단한 소통도 쉽게 되지 않으니 수업시간에 내가 하는 말이나 교과서의 지문은 이해하겠는가. 당연히 국어고 수학이고 과목을 막론하고 학습 성취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걸 문해력 저하라고 하던가. 문장을 읽을 수는 있는데 이해는 못하는 현상.


며칠 전 중고등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기사를 한 편 읽었다. 뜨악한 실태 몇 건이 나열되고 교사들의 짧은 인터뷰가 실린 기사였다. 나는 그 기사의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조기 영어교육에만 신경 쓰니 이런 결과를 낳지.' 동조하는 대댓글도 달렸던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영어를 신경 쓰는 가정의 아이는 모국어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며 부모와 대화도 많이 한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기 영어 교육을 받은 그 아이는 모국어 문해력도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물론 영어에만 지나치게 집착해 모국어 발달을 소홀히 한 경우는 당연히 제외다.)

​대화와 독서가 그럼 해결책의 전부일까. 물론 그건 아닐 게다. 하지만 일개 교사인 나는 양질의 대화만 가지고도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학력저하가 많은 부분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적인 대화도 좋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라면 더 좋겠다. 아이 수준에 맞고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그림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나누는 대화라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쑥쑥 자랄 것 같다. 교과서의 내용을 부모와 함께 예습 복습한다면 학력향상의 지름길로 가는 것일 거다. 잘 가르치는 학원을 수소문해서 보내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 하는 대화와 독서가 더 아이를 키울 거라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대화와 독서가 일상이 된 아이는 교과서에서 많이 쓰는 낱말과 문장을 자연스레 익히고 대화에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말이나 교과서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와의 끈끈한 유대는 덤. 우등생은 못되더라도 평균 이상의 학업 성취도를 갖출 순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학교 수업시간에 성실히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겠지.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체력과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오히려 전문가의 손길이 더 확실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화와 초등학생까지의 독서는 가정의 영역이었으면 좋겠다. (쓰면서도 확신이 없다. 수많은 독서 학원들이 부모보다 더 나을 수 있으니)


장황하게 문제제기를 했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오늘은 그냥 7년 전 우리 반 아이들을 추억하며 글을 마치련다. 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었을 아이들, 잘 지내고 있을지, 열한 살 때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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