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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해볼까, '자율교실'

교실 이야기

by Applepie


지난주는 정말 힘들었다. 이 곳에 쓴 글대로, 출근이 두려울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이 많은 직업 중에 교사가 제일 불쌍하고 교직은 앞으로 더 안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다른 생각을 불렀다. 온갖 비관적인 생각들이 자석에 붙는 철가루처럼 빽빽하게 붙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내가 듣고 있던 연수가 있었다. '자율의 힘'이라는 연수인데, 사설 연수원 인기강좌라 신청했고 기한 내에 듣기 위해 주 4강씩은 듣고 있던 차였다. 강의에 따르면, 자율성으로 가득한 교실을 만들기 위한 핵심은 이렇다. '필요없는 틀은 깨고 명확한 울타리를 세워라. 학생들에게 울타리 안에서의 (제한된)자율성을 부여하라. 울타리는 대화를 통해 세워라.'


울것 같은 표정으로 다니던 나를 보고 다정다감한 동학년 선배샘들이 주신 조언도 비슷했다.

'학급회의를 해서 폭력에 대한 벌을 정해라.'

지난주의 난, 어떤 조언이든 동앗줄로 느껴졌으니까 당장 조언대로 실행했다.


학급회의는 생각보다 순탄했다. 여러 의견을 다 듣고 내 의견과 경험도 밝히고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을 정했다. 그 결과 이런 성문법(?)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만든 규칙이니 칠판 옆 안내판에 잘 보이게 게시해뒀다. 그리고 (겨우) 3일이 지났다.

그동안 2건의 사건을 저 규칙에 따라 처리했다. 처분을 받는 아이들은 빠르고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했고 받아야 할 처분도 달게 받았다. 사실, 굉장히 의외였다.


난 이제까지 우리반 아이들의 주된 정서는 '억울함'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야 원래, 어른보다 더 자주 억울해하는법이다. 하지만 올해 만난 아이들은 그 정도가 과하다고 생각했다.

'맨날 자기만 억울하고 남은 다 잘못했대, 대체 이 자기중심적인 억울함을 어떻게 다뤄?' 나는 매일 막막했고 솔직히 올해 학급경영은 이미 망한거라 생각했다. 이 정서는 가정에서부터 비롯됐을거라 내가 어쩌지 못할거라고. 그런데 (고작 3일인게 아쉽지만) 억울함이 훨씬 덜 보이는것 같다. 또 한 건의 신고가 들어오니,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피해 학생들이 용기를 낸다. 특히 여학생들이, 두셋씩 손을 잡고 내게 다가온다.


또 다른 수확도 있었다. 방과 후 태권도에서 있었던 일이 신고가 들어와서 추가로 간단한 회의를 했다.

얘들아, 우리 신고가능한 사건의 범위를 정하자. 신고되는 사건이 많으면 수업시간에 회의를 해야하니 학교 안에서의 일만 다룰까, 학교 밖의 일이어도 우리반 학생이 우리반 학생에게 행한 폭력이니 다루는게 좋을까?

투표 결과 수업시간 침해 우려가 있으므로 교내에서의 일로만 제한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렇게 가지를 뻗어 정교하게 규칙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열한살에게도.


가만히 돌아보니 그 동안 우리반은 담임인 나의 판단이 곧 법인 곳이었다. 나의 판단이란건 눈에 보이지 않고 예측하기도 힘드니 아이들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한테 지극히 당연한것이 열한살짜리들에게도 당연할거라 생각한건 나의 무지였고 무신경이었다. 이제 아이들의 얘기를 더 들을거고 모든 일을 내가 다 통제해야 바른 교실이 될거라는, 공격성과 충동성이 강한 학생을 제어하기 위해선 내가 더 강해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려 한다.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순응형 아이들을 위해서도, 반대로 공격적인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가진) 나를 위해서도 말이다.


미칠듯한 더위가 지속되는 요즘이다. 우리반 25명은 교실에서 만이라도 산뜻했으면 좋겠다. 3일간의 뿌듯함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의 과거 학급경영에 대해 다소 엄격한 비판 과정을 거쳤으니 칭찬도 좀 해줘야겠다.

잘했어 애플파이, 네가 바쁜 와중에도 연수를 들으며 노력하는 교사라 다행이야. 동료의 조언에 귀가 열려있는 교사라 다행이야 라고. 매우 쑥스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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