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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아이들로부터 앗아간 것

by Applepie

교사로서 나는, 작년과는 사뭇 다른 주제의 글을 쓰고 있다. 작년은 3년만에 복직했던 해이고 코로나로 입학식조차 제대로 못했던 2학년 아이들을 맡은 해였다. 3년의 세월+코로나가 준 등교 공백에서 나는 아이들의 학력 저하를 극심하게 느꼈다. '마지막 페이지 펴세요.'나, '휴지가 다 떨어졌어요?'가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못할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올해는 일단 작년보다 더 고학년을 맡게 되어 글이나 숫자를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학년보다 더 큰 변화는 학교를 옮긴 것이었는데 학군에 대한 얘기는 너무 진부하기도 하고(기승전 학군탓이 될 수 있음)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니(교사가 학군을 따지고 있어?류의)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늘 글을 전개하기 위해선 현 근무지에 대한 설명이 필수적일 것 같다. 올해부터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구도심에 위치한, 대단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들을 몇 배출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부모님이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도 꽤 있다. 그만큼 오래된 동네이며 또한 복지학교로, 학교나 지자체의 복지 지원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이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 아이들과 함께한 1학기는 정말 녹록지 않았다. 교사 인생 통틀어서 가장 힘든 학기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학습지도도 생활지도도 뭐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을 불러다 앉혀 얘기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 가정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거다.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1학기를 반추하며, 빈약한 내 경험으로 스마트폰이 우리 아이들에게서 빼앗아 간 것을 딱 두 가지만 꼽아보려고 한다.



1. 집중력

아이들을 만난 첫 날, 심란함이 마구 피어올랐다. 아이들의 집중 시간이 4학년의 것이라기엔 너무 짧았던 것이다. 수업시간 태도를 잡는 건 내가 교직생활에서 그나마 자신 있는 것 중 하나였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상에 올라와 있는 물건을 최선을 다해 만지고 의자를 까딱이며, 심지어는 착석이 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환경이 문제였던 것은 최대한 개선하고(책상위에 교과서, 연필 외에 필통도 올려놓지 않기) 수업 스킬에도 신경을 써서 학급의 전반적인 집중력은 어느 정도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4학년의 집중 시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잠시 후 서술할 다른 요인 때문에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집중력이 유독 나빴던 아이들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도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어린이성

'어린이성'이라는 용어는 이현아 선생님의 그림책 연수에서 처음 접했던 것이다. 어린이가 가진, 어른과 구별되는 속성 중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강의 자료에 현아샘이 정의해 주신게 있는데 그건 학교에 있고 연수도 복습 기간이 끝나서 확인할 수가 없다. 포털에 '어린이성'이라고 검색해도 나오는게 없다ㅠㅠ) 암튼 '아이다움'같은 말로도 이해해도 될 것 같지만 흔히 '아이다움'이라고 하면 순수함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와 더불어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적극적임','세상을 긍정적이고 재밌는 것으로 보는 시선', '높은 에너지'등을 추가하고 싶다. (나의 5살 아들을 떠올려보면 어린이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긴 아주 쉬워진다)

어린이가 가진 이런 wonderful한 특성과 유독 반대되는 학생들이 있었다. 분노에 늘 차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정말 제가 휴지 가지러 간 시간이 딱 30초나 됐을까요? 그 사이에 그랬다니 믿을 수 없네요.' 과학 전담 선생님께서 뭘 가지러 딱 30초 자리를 비우신 사이 이미 사이좋게 한대씩을 주고 받은 두 남학생도 그랬다. 놀라운 점은 고작 30초 동안 주먹이 나갈 만큼의 분노가 차올랐다는 것이다. 만나서 시비를 걸고 그게 폭력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고작 30초라니. 그 아이들의 눈빛은 어린이의 그것과는 이미 다르다. 교사로서 억울한 건 30초 동안에 주먹이 나갈 정도면 굉장히 active한 성향이어야 하지 않나, 근데 또 그렇지 않다. 수업시간엔 시큰둥, 심지어 아이들이 다 흥분하는 체육시간에도 눈빛이 빛을 잃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들었지만 한 학기동안 이와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단골 학생들은 몇 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개별적으로 불러다 겨우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면 공통된 대답이 있었다.

'솔직히 스마트폰 많이 해요. 한 세 시간? 할머니는 뭐라고 안하세요.'

'자기전까지요? 몇시인지는 모르는데 자기 직전까지 게임하는데요? 열시는 확실히 넘겨요.'

하필 나는 학교폭력 담당 교사라 다른 학년의 사례도 접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다 스마트폰이 발단이거나 매개가 된 일들이었다. 문제가 된 카톡 창을 바라보고 있거나 게임하다 욕해서 일어났다는 일들을 듣고 있자면 얘네가 과연 초등학생이 맞나 싶었다. 또 재밌자고 하는 게임일텐데 이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왜 이렇게 분노에 가득 차 있나 속상했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들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의 맑은 마음과 눈빛- 어른보다 훨씬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 장난기 많은 태도, 별거 아닌 것에도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을 이미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삼십몇년을 살아보니 날 때부터 불공평한게 참 많은게 이 세상이다. 흔히 수저 색깔로 대변되는 가정 환경, 소위 부모빨을 제외하고라도 인지적 능력, 외모, 태어난 국가와 지역 등등... 불공평한것 천지이다. 이 와중에도 그나마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어린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마저 빨리 뺏겨버리는 이 세태에 대해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울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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