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망의 방학식. 한 학기동안의 고생을 잠시 보상받는 시기이며 합법적으로 아이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감격스러운 기간의 시작이다. 이 감격의 날, 나는 며칠전부터 계획하고 있는 게 있었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했던 그것은 바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통지표를 직접 읽어주는'것이다.
통지표를 아이들에게 직접 읽어주는 이 방법은 윤지영선생님의 자율교실 연수에서 들은 것이다. 10년 언저리의 교육 경력 동안 어느 학교를 가든 통지표는 적어도 학생의 영역은 아니었다. 늘 봉투에 담아 입구를 닫고(심지어 이번 학교는 양면테이프로 밀봉까지 한다) 봉투 겉면엔 '♡♡♡학부모님께' 라고 씀으로써 이것이 학부모를 위한 문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러는 이유는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학부모님께 알려드리는 공식적인 문서인데 이것을 학생이 훼손하거나 분실할것이 우려 되어서일 것이다. 아주 타당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통지표에서 학생이 이렇게까지 배제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지표는 학생 자신의 얘기를 써놓은 건데 말이다.
뭘 해도 마음이 붕 뜬 방학식날, 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를 틀어주고 나와 마주보는 자리로 한명씩 불렀다. '자, 이 부분 읽어봐.'로 시작하여
'선생님이 1학기 동안 ♡♡를 관찰한 걸 이렇게 써봤어. 어때, 잘 관찰한거 같아? 여기에 쓴대로 ♡♡는 참 밝고 웃음이 많아. 다른 친구들이 다 쑥스러워 할때 선생님한테 크게 인사해 줘서 참 고마웠어.'
특별히 책임감을 갖고 1인1역을 열심히 해 준 아이에겐,
'@@이가 앞문 출입구 1인1역 하고 있을때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감탄하셨던거 기억나? 선생님은 그때 @@가 자랑스러웠어. 책임감 갖고 성실히 역할을 다 해줘서 고마워.'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인 여학생에겐,
'♤♤이는 친구들과 갈등 상황이 생겼을때에도 넓은 마음으로 친구를 잘 이해해주더라. 그런데 만약 네게 선을 넘는 친구가 있다면 그때는 단호해져야 하는거야. 학기말로 올수록 용기 내준거 참 고마웠어.'
쓰레받기의 쓰레기를 여학생 머리에 부어버린 금쪽이에겐,
'##이가 친구들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갈수록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것이 보여. 눈을 보면 네 맘을 알 수 있거든. 2학기에도 계속 노력해 줄 수 있지? 방학 동안에 집에서 게임 몇시간씩 하면 다시 노력이 물거품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지 않으리라 믿어.' 라고 해주었다.
문해력이 부족한 요즘 학생들이 이해하기엔 통지표의 단어들은 너무 어렵고 딱딱했을 것이다. 원래 공문서의 언어란게 별로 다정하진 않다. 그냥 읽었다면 이게 내 얘기를 하는건지 와닿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말로 쉽게 풀어주니 '이건 내꺼'라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았다. 좋은 문장만 받은 아이들은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고, 통지표에 과연 무슨 말이 쓰여 있었을까 걱정했을 금쪽이들 얼굴에도 어떤 안도감을 품은 미소가 보였다. 집에 가서 내가 말한 내용을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전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학부모님께 문자 메세지도 두 통 받았다. 통지표 감사하다며, 고칠 점을 써놓은 아이의 부모님들도 충격이 조금 완화되셨기를. 내가 아이에게 '이건 네가 나쁘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무지 강조했으니까.
한 학기 동안 나도 참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잘못한 순간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학기동안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아이들도 좀 흐릿하게 잊어줬으면, 통지표를 건네며 칭찬을 퍼붓던 다정한 모습으로 방학동안 나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