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체육시간,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등교한 준우가 온 에너지를 다해 배드민턴을 치는 걸 보고 다가가 물었다.
'준우야, 몸은 괜찮니? 체육 할 수 있겠어?'
어른이라면 기대되는 대답이 '네, 괜찮아요.'정도일 것. 그러나 역시 우리의 초등학생들은 다르다.
'네.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 그리고 이 정도면 엄청 못하고 있는 거예요. 원래는 저 이것보다 백배는 더 잘해요!'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준우는 마음이 건강하구나.
사실 교사 경력이 짧을 때엔 아이들이 저렇게 과하게 불필요한 말이나 자기표현을 하는 것을 고쳐주려고 애썼다. 상황에 맞게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 대화예절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력이 좀 더 쌓인 지금은 아이들의 저런 표현이 교사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예쁜 마음의 표출이며 아이의 마음이 아직 말랑말랑하고 건강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우려가 되는 건 이런 아이들이다.
교사: 아까 물건을 던질 때 기분이 어땠니?
학생: 별 마음 안 들었는데요?
교사: 선생님한테 들려줄 얘기 없니? 주말엔 뭐했어?
학생: 딱히 말할 게 없어요.
왜 이런 대답이 나올까? 이런 대화를 하는 아이들은 먼저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해서일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혹은 교사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교사뿐 아니라 타인(혹은 어른)을 대할 때 마음의 장벽이 높은 경우, 즉 친근함보단 경계심을 더 크게 갖는 아이일 수 있다. 당연히 이런 아이들 지도가 더 힘들다. 마음에 단단한 응어리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담 의뢰를 하는 등 내 선에서 해결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자기표현이 가진 힘을 최근에 또 실감했다. 지난주의 일이다. 교과부진이라 남아서 보충학습을 해야 하는 서준이가 자꾸 도망가길래 하굣길에 기다리고 있다가 교실로 다시 데려왔는데 엎드려서 너무 서럽게 우는 거다. 아니, 지금 울고 싶은 사람이 누군데! 당황+난감+화남의 쓰리콤보였지만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서준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저 혼자 공부하기 싫어요.'였다. 그랬구나, 나는 일대일 수업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보충수업 학생을 도움이 가장 필요한 딱 한 명만 선정했는데 얘한텐 그게 속상했구나. 나만 남아서 공부한다는 사실이 서준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구나 싶어 조금 미안했다. 그리고 그것을 물꼬로 아이의 말이 터졌는데 덕분에 나는 특수한 가정환경까지 알게 되었고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는 다정하고 하교시간이 여유로운 친구를 한 명 더 섭외하여 훨씬 화목한 보충지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가진 표현의 위력을 믿는다. 얘들아, 말로써 너희를 많이 드러내 주렴. 단, 수업시간에 말이 많은 건 곤란하고 선생님이 지쳐 보일 때에도 다음 기회를 살펴주면 좋겠다. 나의 체력은 곧 너희의 성장이니까 너무 소진되어선 안돼.
역시 문제는 늘 체력이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수다쟁이 아들의 얘기도 들어줘야지. 그래서 오늘 저녁은 고기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