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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Apr 12. 2023

안정감을 듬뿍 주자구

3월, 아직은 깜깜한 새벽 5시 무렵 내 눈이 먼저 떠졌고 뒤이어 복도를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아이 발소리가 들린다. 아, 오늘도야? 어김 없이 이 시간이 되면 아이가 우리 방으로 달려온다. 제아무리 킹사이즈 침대라 해도 이미 아기가 아닌 여섯살 아이와 셋이 눕기엔 편하지 않은 터. 짜증을 삼키며 일어나 내가 방을 옮긴다. 벌써 몇 달째. 내 몸도 적응했는지 아이 발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먼저 깨버렸다. 뻑뻑한 눈을 안고 쉽지 않을 하루를 지낼 것이 벌써 걱정이다. 

 ISTJ인 우리 부부는 육아도 대개는 계획적으로, 책을 보며 해왔다. 분리수면을 무려 140일 경부터 실천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를 재운 후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수면의 질도 좋다며 주위에 분리수면 예찬을 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아이가 자라고 나서 생겼다. 안방과 멀리 떨어진 방이더라도 밤에 재우면 해가 밝을때가 되어서야 깨던 황금기가 지나고 4세 후반부터 아이는 밤에 혼자 자기 무섭다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깜깜한 새벽에 악몽을 꿨다며 우리 방으로 달려오더니, 급기야 5세 후반부터 해가 바뀌고 나서까지 매일같이 거의 비슷한 시각에 안방 침대로 파고들었다. 깜깜한 새벽부터 쿵쾅쿵쾅, 아랫집이 걱정되기도 했고 뭣보다 아이와 나의 수면이 질적으로 수직하락했다.(아이가 오든 안오든, 침대가 좁든 말든 코를 골며 잘 자는 남편은 예외) 그래도 잠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시나 일어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5시 즈음에 오던 날들은 그럭저럭 참아낼 수 있었는데, 길고 달콤한 밤의 허리를 뚝 자른 3시 반에 온 날엔 나도 화가 났다. 화가 나니 잠도 안오더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내게는 아동심리 전문가이신 지인이 계시는데, 그분을 다른 일로 뵈었다가 살며시 이 사태에 대해 여쭈었다. 짐짓 별일 아닌 것처럼, 그런데 곧 좋아지겠지요 하며. 하지만 그 분께서는 이 일을 별일이라고 여겨 주셔서 자세히 말씀드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지인께서 처방을 내려 주셨다. 오늘부터 일주일에 하루만 빼놓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잘 것. 파격적인 처방에 분리수면을 마치 신줏단지처럼 모셔왔던 내가 잠시 휘청거리고 있던 차, 너무나도 납득이 가는 이유가 내 귀에 꽂혔다. '지금 아이의 마음엔 안정감이 없어요.' 뼈때리는 팩폭은 계속 이어졌다. "생후 140일은 어디에서 자는지 아직 알지 못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분리가 쉬웠을 수 있어요. 적어도 생후 7개월쯤이 되어야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잔다, 따로 잔다는 걸 인식합니다. 그 이후 안정감을 충분히 형성한 후 분리하는건 좋습니다. 하지만 140일부터 분리한 아이에겐 안정감이 없을 거예요."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동의하는 바였다. 산뜻한 제안도 해 주셨다.

"일주일에 하루는 요일을 정해서 혼자 자는 날로 하는게 어떨까요? 그렇게하면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잤던 날의 따뜻한 기억을 안고 혼자 잘수 있어요. 또, 오늘만 지나면 엄마 아빠와 같이 잘 수 있다는 믿음도 있으니까요."

 나는 그날부터 실행에 옮겼다.(나보다 더 신념이 강한 남편을 설득하는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 장소에서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남편의 말에 좁은 아이 침대에서 아이와 내가 이틀밤을 보낸 후, 침대 아래에 요를 깔고 누워 자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사소한 방식이야 어떻든간에 가장 컸던 변화는 아이가 더는 밤에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새벽에 안방으로 달려오지 않는다는 것도, 내가 훨씬 덜 피곤한 아침을 맞는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오랫동안 내 맘에 남을 지인분의 말씀, "아이에겐 정서적인건 무엇이든 흠뻑 줘야 해요. 사랑도 흠뻑, 안정감도 흠뻑이요."

듣고보니 어른인 나도 그렇다. 남편이 표현하는걸 어려워 해 마음을 감추고 사랑을 찔끔찔끔 드러내면 목마르지 않았던가. 친구가 우정을 감추면 서운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여섯살 아이에게 부모가 주는 안정감이란,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정서적인건 뭐든 듬뿍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의 작은 마음이 사랑으로 흠뻑 적셔지도록, 엄마 아빠는 나와 함께 있어서 편안하다는 안정감이 넘치는 자리에 불안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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