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pplepie Aug 16. 2023

여섯 살,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유(2)

대화와 독서가 더 시급해서요

 아이와 하루 종일 뒹굴며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모를, 육아휴직 3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당시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지루했지만 지금에 와 돌아보니 너무 짧았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 몇개의 단어로만 말하던 아기, 팔에 타이어를 낀 듯 통통한 아기가 이젠 어린이가 되어 버려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시절이다. 아직은 코로나로 인한 긴장감이 여전했던 시기에, 나는 내게 허용된 육아휴직 36개월 중 33개월을 채우고 교실로 돌아갔다.


 3년만에 돌아간 학교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코로나로 학교 입학부터 제대로 하지 못했던 2학년을 맡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소통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꼈다. 물론 오랫동안 일을 쉬었던 나의 문제도 있었을 테지만 아이들의 기초 학력과 문해력, 집중 시간이 너무 낮아져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즈음엔 정말 수학 시간이 두려울 정도였다. 우리 반만 그런 사정이었던 건 아니었고 다른 반의 형편 역시 비슷했다. 그런데 그곳은 혁신학교여서 학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을 장려하고 있었던 점이 다행이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나까지 네 명은 절박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덜 배우는 내용이 없도록, 하지만 수준은 쉽도록 매일같이 회의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반 아이들은 학습만 제외하곤 정말 손이 안 가는 유니콘들이었다. 2학년에게 버거울 방역 지침-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도 무리 없이 지켜줬으며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시정에도 별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가 만만치 않은 기억으로 남은 건, 수업 시간에 개념을 이해시키기가 참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 펴세요.'라는 나의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정도였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웅성웅성... 그 해에 나는 '기초학력'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기초학력(3RS), 모든 학습의 기본이 되는 그 3가지는 바로 읽기, 쓰기, 셈하기이다. 뼈아프지만 그것들을 세우기엔 초등학교 2학년의 시기가 늦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 내가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무엇이었을까. 학원이 답이 될 순 없었다. '마지막'도 잘 모르는데 학원을 간들 도움이 되겠는가. 이미 기초학력이 결여된 학생들에게, 뒤집어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후에 학교를 다니고 학습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데엔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른과의 양질의 대화, 그리고 독서이다.


  

 먼저, 어른과의 대화

아이들에겐 대화가 중요하다. 또래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는 어른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어른을 보며 행동을 배운다. 내가 '양질의' 대화라고 한 것은 '눈을 맞추며 하는'대화를 말한다. 그리고 부모의 적절한 반응 또한 중요하다. 아동심리라곤 학부때 배운 것이 전부이지만 그 해의 아이들에겐 어른과의 양질의 대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그 결핍이 아이들의 소통하는 능력,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세우는 데에 큰 구멍을 냈다는 것을 전공 서적을 들춰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오지 못한 기간이 길어져 선생님, 친구들과

소통하지 못했으며 친척들이나 부모님의 지인들과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해서 나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번째, 독서

내가 휴직하던 당시에는 '책육아'라는 말이 (지금도 여전히) 유행했다. 나 또한 책육아 카페에 가입하여 여러 정보와 후기들을 읽는 것이 재밌었다. 안타까운 점은 책육아 카페의 정보가 전집후기에 치중되어 있었고 책장 공개라는 게시판에는 얼마나 많은 책을 제때에 들여서 읽혔는지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그 무렵 그 카페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책육아를 하세요?'는 글이 조회수와 댓글 상위에 있었는데 의견이 크게 둘로 갈렸다. 공부를 잘하게 하려고vs공부를 잘 할 기대는 하지 않고 단지 책이 주는 즐거움과 효용을 얻게 하기 위해, 다시 말해 학습을 잘할 것을 기대하는, 책의 외재적 가치와 책 자체의 내재적 가치만을 원한다는 의견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나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교사로서의 경험을 보태어 말하자면 학습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셔도 좋다는 거다. 책을 읽는 아이는 읽지 않는 아이에 비해 분명 학습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어른이 읽어 주는 것 포함)은 여러 능력을 요구한다. 듣거나 읽은 문장의 의미를 자신이 이해해야 하고 그렇게 이해된 내용이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탐색할 것이고 새로 알게 된 정보를 처리할 것이고(감동이라던지 무섭다던지 신기하다던지, 다음에 여길 가보고 싶다던지 등등) 그러면서 엄청나게 많이 뇌가 활동하게 될 것이다. 점점 학생들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도드라져 보이는 요즘에 책을 읽어왔고,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을 줄 아는 아이는 훨씬 학습 면에서 유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이게 무슨 말이에요?'를 물을 때가 많다.  요즘엔 허탕치다, 천만에요 같은 것들을 물었다. 그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뜻을 알려주고 아이와 함께 예문도 만들어 본다. 이러면서 교과서에서 쓰이는 어휘도 자연스레 익힐 수 있고 더 어려운 책을 읽을 힘도 키우리라 생각한다.


 길게 말했지만 요약하면, 내가 여섯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대화와 독서를 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까봐'라고 할 수 있겠다. 첫번째 이유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길게 보기 위해서'였다. 이 두 가지에 더해 경제적인 이유, 워킹맘으로서 라이딩을 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것 등 비교적 사소한 이유들도 더 있었다. 그런데 그 외에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시키지 않아도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행복한 덕후가 되는 아이를 관찰한 내용을 앞으로의 글에서 써보려 한다.

 

이전 05화 여섯 살,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유(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