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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지르지 않고 교육하고 싶다면

카렌 프라이어 '가르치기의 결'

by Applepie

아이와 '우봉고'라는 보드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작년까지는 내가 좀 져줬지만 이젠 아이가 지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 첫 판부터 내가 앞서가니 아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다 내가 운좋게 점수가 높은 루비 구슬을 뽑는 순간, 아이는 게임판을 흩뜨려 엉망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조각을 내게 던졌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소리를 질러 훈육해야 하나 아님 끌어안고 마음을 읽어줘야 할까?

사례는 실제로 불과 하루 전 내가 겪은 일이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이런 상황과 종종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왜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이 성숙해지는데엔 이토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1학년씩이나 됐는데도 저렇게 떼를 쓰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잘못 키웠나 싶고 눈 앞이 깜깜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카렌 프라이어의 '가르치기의 결'을 읽었기에 아이의 이런 행동에도 예전만큼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절대 떼에 넘어가면 안 돼. 내가 강화하고 싶은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라고 소리 없이 수십번 다짐했다.




오늘 소개할 '가르치기의 결'의 저자인 카렌 프라이어는 1960년대에 하와이 해양생물 공원에서 돌고래 수석 트레이너로 일을 하다 강화 교육 원리를 공부하고 돌고래 교육에 적용하여 매우 효과적인 성과를 냈다. 그 후 이 원리를 다른 동물과 사람에게까지 적용하며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교육법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 책은 1984년부터 아마존 스테디셀러인 '돈 슛 더 도그'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카렌 프라이어의 교육 이론은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데, 행동주의는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시절 교육학 강의에서 배우기도 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도 달달 외웠던 이론인데 그땐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다. 뭐랄까, 이렇게 학습자의 행동을 의도를 가지고 형성한다는 관점이 너무 학습자의 수동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옛스럽게 느껴졌다고 할까. 하지만 교사로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지금 이 책을 읽으니 행동주의가 수동적 인간을 만든다는 오해는 풀리고 오히려 행동주의 이론을 나도 모른채 교실에서 많이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과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른 존재를 가르친다는 것-교육-은 본질적으로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렌 프라이어는 스키너의 행동주의 중 '강화 이론', 그 중에서도 학습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한 타이밍에 제공하는 '포지티브 강화'를 바탕으로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계속 하길 원하는 행동에는 강화물(달콤한 간식, 칭찬, 포옹 등)을 주고 사라지기를 원하는 행동에는 강화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네가티브 강화'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원하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공부하는 경우나, 냄새가 싫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책에 제시되어 있다.


한 아이가 상점에서 사탕을 사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의 떼쓰기에 항복해 사탕 하나를 사 준다. 이로써 아이의 떼쓰기는 사탕에 의해 포지티브 강화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강력한 사건은 부모가 아이에게 항복하는 것이 네가티브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너무 불쾌하고 곤혹스러운 일인 아이의 떼쓰기가 감쪽같이 중단되었으니 말이다.


위 사례에서 아이는 떼를 썼으니 강화물(사탕)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떼를 쓸 것이며, 부모는 아이에게 항복함으로서 떼쓰기를 중단시킬 수 있었으므로 계속 아이에게 항복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이의 떼쓰기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도 무심결에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강화하고 있지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조르기, 떼쓰기,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강화물을 주었던 경험이 수두룩하므로.


다시 보드게임이 파국에 이른 어제로 돌아가보자.

내가 없애고 싶었던 것은 아이가 떼쓰는 행동, 조각을 던지는 행동, 울고 게임판을 엎어버리는 행동이었으며 새로 형성하고 싶은 행동은 지더라도 매너있게 끝까지 게임을 마치는 것, 그리고 실망스러운 감정을 다음처럼 말로 성숙하게 표현하는 거였다.


"아 이번판은 내가 지겠다. 어쩔수 없지. 엄마 한번 더 해요. 다음엔 제가 이길거예요!"(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엄마, 엄마가 너무 앞서가서 속상해요. 신이 안 나요."(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비로소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원하는지 명확하게 깨달은 나는 아이가 던진 조각에 맞은 후 바로 게임을 멈췄다. 그리고 단호하고 분명한 저음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떼쓰고 폭력적인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게임 그만 할거야."

아이가 바로 수긍했겠는가, 떼는 더 커졌다. 그런게 어딨어요, 한번만 봐줘요. 봐달라고요!!

듣고 싶지 않은 이 소음을 견뎌내며 나는 한번씩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이렇게 떼쓴다고 달라질거 없어. 이제 조용히 해."

고통의 시간이 수 분 지나고 아이는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내가 이래봤자 엄마는 꿈쩍 안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으리라. 그렇게 아이의 떼가 잦아들고 나를 향한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 졌을 무렵 나도 아이에게 조금 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 판 다 정리하고 얼굴도 깨끗이 씻고 엄마한테 사과도 하면 게임 다시 하는거 생각해볼게. 오래는 못기다려줘. 20분 줄게. 그 사이에 엄마는 샤워하고 올거야. 20분 후에 봐."

나를 붙잡는 아이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20분 후에 돌아온 내게 그 사이 감정을 추스린 아이는 사과를 했다.

"엄마, 제가 진다고 조각 던지고 떼써서 미안해요. 앞으론 안그럴게요. 다시 엄마랑 게임 하고 싶어요." 나 역시 샤워를 하고 상쾌해진 기분이 되었으므로 아이의 변화를 칭찬하고 다시 게임을 했다. 다시 한 게임에서 아이는 나를 응원해주기까지 했는데 그런 기특한 행동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건 강화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할 행동이니 말이다.


내가 적용한 것은 매우 간단한 처방이다. 소거되어야 할 행동은 강화하지 않고(무시), 형성되어야 할 행동은 강화하는 것. 물론 이것이 저자의 교육법 전체는 아니며, 책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래도 근본이 되는 원리는 같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성과는 '구별'이다. 어떤 행동을 강화할 것인가,

우리는 타인의 장려할 행동과 없애고 싶은 행동을 잘 구분해야 하며 정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강화물을 주어야 한다. 그 중 아이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강화물은 '칭찬'이다. 호들갑스러운 칭찬이면 더 좋다. 세상 자기 혼자 사는 것 같이 뻣뻣하게 구는 남편도 "어머, 오늘 착장 멋지다. 색감 조화가 좋아."라고 칭찬했을 때 얼굴 근육이 풀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맞다. 또 저자는 이 강화 교육을 습관화하면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당연한 효과일 듯 하다. 내가 좋아하는 말, 좋아하는 것을 적재적소에 준다니. 이걸 싫어할 사람이 있나?


그 밖에 얻게 된 큰 성과는 아이를 교육할때에 따라오는 죄책감을 많이 없앴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생들이나 내 아이를 훈육하며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과연 울게 놔둬도 되나, 내가 더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거 아닌가 고민하는 건 교사나 엄마나 똑같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이것은 '교육'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내가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가 싫어하는 자극을 주지 않아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죄책감도 한결 덜어졌다. 강화할 것과 강화하지 않을 것을 구별하고 불필요한 죄책감에 에너지를 쓰는 대신 옳게 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교육하는 것. 이것만 되어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얼마나 더 편해질 것인가.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강화는 타인을 교육할 때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성과를 끌어올리고 힘든 일을 덜 힘들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며칠 전 진짜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운 나는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 차를 돌려 조금 더 가서 맛있는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사왔다. 그건 내가 내게 선물하는 강화물이자 그 날의 특별한 점심이었다. 앞으로도 주머니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내게 강화물을 자주 주려고 한다. 물론 돈이 하나도 안 드는 일상 속 칭찬이 제일 좋겠다.


"오늘 이렇게 더운데 안 빠지고 운동을 왔어? 대단해 나 자신!"

"오, 오늘 된장찌개 좀 괜찮은데? 나 요리 실력 좀 늘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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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민망하니 혼자 있을때만 해야겠다.


시험용으로만 공부하고 고리타분한 이론이라 여겼던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을 이 책의 저자인 카렌 프레이어 덕분에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나와 아이, 주변인들이 즐겁게 더 많은 성과를 내게 되기를. 그리고 내년부터의 내가 소리지르지 않은 대신 단호하며 친절한 선생님이 되기를, 학급경영을 훨씬 노련하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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