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조금 늦었습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외모 꾸밈에 들어가는 돈은 사람마다 편차가 매우 크다. 그리고 각자의 기준도 달라서 '이것 다음에 이것'같은 단계가 희미하다. 아이들 공부처럼 기본 다음에 심화, 거기까지 마치면 선행 이런 기준이 있지 않다는 거다. 실제로 파운데이션 프리를 지향하여 파데, 비비를 비롯 그 어떤 바탕화장도 하지 않아 부모님께 '화장좀 하고 다니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 내 동생은 화장은 안 해도 주기적으로 네일샵에 가서 수만원 하는 관리와 젤 네일, 아트를 받는다. 또 내 대학시절 한 동기는 화장도 안 하고 헤어에도 신경쓰지 않으며 항상 큼지막한 동아리 티를 입고 안경을 쓰고 다녔으나 그 시절에도 꼭 피부과에 가서 인중 제모를 받았다. 또 피부과에서 한 번씩 수백을 지출하는 친한 언니는 신발에 쓰는 돈이 그렇게 아깝다고 저렴한 신발만 신는다.
그럼 나는 어떤가? 검소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나이에 걸맞은 깔끔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달마다 이것 저것 살게 생기며 가끔 미용실도 피부과도 가야 하는, 대신 최저가로 사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유독 손발톱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편이다. 동생들이 단톡방에서 귀여운 최신 네일 아트를 자랑할 때마다 나는 허허 웃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치곤 한다. 속으론 '와, 저게 다 얼마야? 너네 돈 많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나도 네일샵을 방문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여름이다. 아니, 정확히는 '페디샵'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관리 안 된 손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나 이상하게 맨발톱을 보이는 것은 마치 옷을 덜 입은 것처럼 창피하다. 그래서 여름에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기 전 꼭 네일샵에 가서 페디를 받는 것이 언젠가부터 나의 여름 준비가 되었다. 심플한 것을 좋아해서 컬러는 대부분 원컬러에 흔하디 흔한 색을 주로 고른다. 다시 말하지만 1년에 한 번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클래식이 진리라고 믿기에.
그렇게 이번에는 어떤 색을 할까 고민하던 어느 아침, 신문에서 백악관 대변인의 사진을 보았다. 관세에 대한 문서를 들고 있는 그녀의 손톱에 나의 시선이 꽂혔다. 맑은 레드 네일이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민감한 문서를 발표하는 공식적이고 매우 중요한 자리, 이런 자리에 빨간 손톱이 안 어울릴 법 한데 적어도 내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도 올해의 발톱 컬러를 아주 쉽게 '레드'로 정했다. 버건디 아니고 오렌지 아니고 맑은 레드로. 이렇게 색까지 정해놓고 네일샵을 예약하는 것이 J인간에겐 편한 일이지. 이번엔 아이 학원 옆에 있는 네일샵을 처음으로 뚫어보기로 한다. 근처를 오갈때마다 늘 손님이 있는 것이 인기 많은 샵인것 같더라니, 이번주는 예약이 꽉 찼네. 아쉬운대로 일주일을 기다리기로 한다. 다음주부턴 빨강 발톱에 당당히 샌들을 신고 다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