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gettingbetter Apr 07. 2024

적어도 너는

두부 (上)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다. 그 아이는 능동보다는 수동에 가까운 형태로 찾아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옅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은 식탁이었고, 식탁에는 손바닥만 한 고양이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할머니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계속 두면 죽을 것 같다고. 이젠 한계라고.


   나는 할머니랑 산다. 2층은 우리 집, 3층은 할머니 집. 엄연히 구분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사실 같이 사는 거나 다름없다. 왕래가 잦다. 매일 아침 할머니는 우리 집에 내려오고, 나는 저녁마다 할머니 집에 올라간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3층 복도에는 작은 창고가 하나 있다. 저온 창고 같은 곳인데, 주로 양파나 배추를 보관하는 용으로 쓰인다. 할머니는 양파 찌든 내를 없애기 위해 종종 창고문을 열어뒀다. 손질하지 않은 양파를 쌓아두는 탓에 창고 주위는 늘 양파 냄새로 가득했다. 그때 나는 연인들이 키스하기 전, 고기는 먹어도 왜 양파는 먹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냄새만 맡아도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으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미 고양이가 문이 열린 틈을 타 3층 창고에 새끼를 낳았고, 그중 몸이 약했던 한 마리를 버리고 간 것이었다. 창고 주변은 양파 냄새 때문에 조금이라도 머물기 어려웠을 텐데.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할머니는 새끼한테서 사람 냄새가 나면 어미가 새끼를 데려가지 않을까 며칠 동안 새끼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어미가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새끼는 버려진 게 확실하다고 했다. 어떻게 아픈 자식을 버리지. 어떻게 그러지. 할머니는 어미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살아있잖아. 멀쩡히 살아있잖아.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매일 잠만 잤지만, 반복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배에서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어미는 계획적이었나. 이곳에 새끼를 낳았어야만 했나.


   계획적이었다. 여기에 낳아야만 했다. 이렇게 춥고 냄새나는 곳에 새끼를 낳았어야 했다. 춥고 냄새가 심해서 사람 냄새도, 새끼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곳에 낳아야만 했다. 그래야 버리는 게 쉬울 테니까. 새끼를 낳았는데, 새끼가 아팠다. 이것 외로 어미가 느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추억할 기억도, 추억할 건덕지도 없을 테니까.


   안아주고 싶어졌다.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고양이 냄새보다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나게.

   이제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처음부터 가족이었다고. 너는 버려진 게 아니라고. 너를 두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전 02화 이별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