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일
그날 밤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 스스로 응급실에 가길 원했고 나는 그녀의 응급실행을 지켜만 보다 잠들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니까 얼른 자. 학교 가야지.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덕분에 나는 새벽에 일어나 어디론가 가야 할 채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수고스러운 일은 정말이지 할 필요가 없었다. 잠에서 깨기 전에 얼른 다시 눈을 감은 뒤,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등교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오늘과 같은 일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어서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가 응급실에 입원했던 첫날, 그녀의 응급실행은 나의 등교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고 중학생인 나의 의무 교육이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되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는 정기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병원은 자취방과 같았다. 학기 중에는 자취방에 머물다 방학에는 본가에 내려가는. 딱 그 정도의 빈도수였다. 그녀의 병은 참 이상했다. 치료를 계속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명확해 보였다. 치료의 목적보다는 잠시나마 고통으로부터 해방의 목적이 더 커 보였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야 했고 간호사에게 하루 세 번 검사를 맡아야만 했다. 단 음식은 혈당을 올려서, 짠 음식은 부종을 일으키기 때문에 먹지 못했다. 그녀의 병은 어린애와도 같아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일이란, 산더미처럼 쌓인 숙제와도 같았다. 24시간 이내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데자뷔를 자주 느꼈다.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는 일이나 태몽 같은, 예지몽이라면 예지몽이라 부를 수 있는 꿈같은 것을 자주 꿨다.
깨어난 뒤에도 기억이 선명하게 남는 꿈은 꼭 현실이 되기 마련이었고 야속하게도 빗겨 나가는 법이 없었다. 예지몽을 꾸고 나면 꿈속의 일이 현실이 되어 한 달 내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데자뷔를 저주라 생각했다.
그녀가 응급실에 가던 날 밤이었다. 늘 그래왔듯 나는 금방 잠에 들었다. 벽지부터 커튼, 침구류 등 온통 새하얀 것들이 가득 찬 병실이었다. 금방이라도 시력이 다 망가질 것만큼 새하얀 방이었다. 방금 전까지 온몸이 아프다며 몸부림치던 여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양 함박웃음을 가득 짓고 있었다. 그런 뒤, 병상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나를 품에 안았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이것이 예지몽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이제 전혀 아프지 않다는 표정을 하고서 내 손을 한 번 잡은 뒤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꿈에서 깼다.
새벽 6시, 나를 깨운 건 알람 소리가 아닌 벨소리였다. 아무래도 그녀임이 분명했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기에. 전화를 받으면, “이제 괜찮아졌으니 학교 잘 다녀와.”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벨 소리의 주인공은 그녀도, 아빠도, 할머니도 아닌 할아버지였다. 새벽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 전화기 너머로는 얼른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들려왔다. 30분 안에 나갈 채비를 하라는 말 한마디에 학교는 금방 뒷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라 말하지만 귀띔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 것일까. 좋지 못한 일은 늘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다.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비일상적인 하루는 한 달가량 지속되었다. 어쩌면 일상 자체가 바뀐 걸지도 모르겠다. 2인용 매트리스가 아닌 1인용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응급실에서 등하교하는 것, 하교 후에는 마른 수건으로 여자의 얼굴을 닦아주고 새 기저귀를 채운 뒤 경직된 몸을 조금 움직여 주는 것.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의 일상은 많이 변해있었고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는 데에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작 하룻밤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를 따라 응급실 생활을 한 지도 거의 한 달. 오랜만에 집에서 잠을 자게 된 날이었다.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는 나의 불길함을 증폭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함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금 데자뷔의 저주를 겪어야 했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아야 했다.
3년 전 겨울, 나는 여자와 일상을 잃었다. 그녀가 떠난 뒤 나는 날마다 누워서 여자의 죽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누군가의 임종을 암시하는 꿈을 왜 내가 꿔야만 하는 것인지. 세상 전부와도 같았던 그녀를 잃은 상태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의 현실은 너무나 삭막한 것이어서 나를 탓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예지몽 속에 갇혀 영원히 깨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삼 년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예지몽을 꾼다. 이를테면 미래에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으리라 믿었던 애인과 헤어지는 꿈. 전 애인과 헤어지기 일주일 전에도 나는 꿈을 꿨다. 어젯밤 꿈속에서는 키우던 강아지가 아팠다. 전보다 더 자주 데자뷔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