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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나 Apr 03. 2023

아까운 광고 : 생리대를 팔러 서점에 간 사람들

독일 THE FEMALE COMPANY (더피메일컴퍼니)

더이상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ㅡ

새로운 광고로 잊혀지기에는ㅡ

광고 카피라고 시해 버리기에는ㅡ

너무나 아까운 광고 이야기

illustrated by Yunna

갑분퀴~ 시간입니다.

갑자기 퀴즈 하나 낼게요!


다음 품목 중에서 생필품을 골라 보세요.

1. 캐비어  2. 유화그림  3. 생리대  4, 트러플


몇 번을 고르셨나요? 많이들 3번을 고르셨죠? 저도 생리대를 골랐습니다. 국어사전에 생필품의 뜻이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3번이 정답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 의회의 의원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의 정답은 3번 생리대인데, 독일 세금법에서의 정답은 3번 빼고 캐비어/유화그림/트러플 이라네요. 독일은 세금법 상 생리대를 ‘사치품’으로 규정하고 19%의 세율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지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아마도 이 법을 남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보네요. 실제로 50년 전에 이 법을 제정한 의원들은 모두 남자였다고 합니다.


이 지극히 비상식적인 세율에 주목한 것은 ‘안조피 클라우스’와 ‘지냐 슈타델마이어’라고 합니다. 이 둘은 친환경 탐폰(체내 삽입형 생리대)을 판매하는 ‘더피메일컴퍼니(The Female Company)’의 공동 설립자입니다.

생리대를 판매하려고 보니, 이 어이없는 세법을 알게 된 거죠. 이들은 이 세법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가 처음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시도했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세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서명운동을 실행했습니다. 무려 17만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독일 정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죠. 1년이 넘는 노력, 1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로부터 받은 피드백은 “부가세를 낮췄을 때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다”는 독일 재무 장관의 소극적인 회신뿐이었습니다.


법을 바꾸고자 했던 피메일컴퍼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죠. 그러자 그들은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정치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그만두고, 광고적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이슈를 만들었죠.


바로 [더탐폰북] (The Tampon Book_생리대책)을 발행하는 것으로요!

더피메일컴퍼니는 생리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 46 페이지짜리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의 내용이 이슈를 만들었냐고요? 아니요! 책의 내용’물’이 커다란 이슈를 만들었습니다. 책 안에 ‘진짜’ 탐폰(생리대)을 담았거든요. 책에 적용되는 세율이 7%인 점을 활용해, 책 안에 생리대를 넣어 서점에서 판매한 것이죠.


[더탐폰북]은 독일 사회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쇄는 단 하루 만에 매진되었고, 2쇄는 1만 부가 팔려나갔죠. 독일을 넘어 유럽의 여러 셀럽들과 언론과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이 이슈를 알리는 데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네, 해피엔딩입니다. 2019년 11월 7일, 독일 의회는 생리용품에 7%의 세율을 적용하는 법개정을 공표합니다.  

네, 광고 캠페인이 진짜 법을 바꾼 것이죠!

이 캠페인이 세상만 바꾼 것은 아닙니다. 광고적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죠.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국제광고제 중 하나인 칸국제광고제에서 2019년 PR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실행에 옮긴 더피메일컴퍼니의 두 대표는 “이 부당함을 납득하기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가 젠더이슈(성차별 또는 성대결에 관한 사회적 갈등)가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그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조정함으로써 더 성숙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름’ ‘나쁨’으로 변질되는 순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죠. 가장 뼈아픈 손실은 바로 문제의 ‘본질’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본질을 변질시키면 바로잡기 너무나 어려워지니까요.


[더탐폰북] 캠페인은 여러 가지 점에서 너무 부럽습니다.

광고인으로써 맞닥뜨린 문제를 너무나 크리에이티브 한 캠페인으로 풀어낸 것, 그 해법이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 법까지 변화시킨 것, 칸국제광고제에서 큰 상을 받은 것 모두 부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부당함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그들의식이 부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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