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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나 Jul 26. 2023

아까운 광고
: 당연하면 안되는 당연한 것들

박카스: 나를 아끼자_엄마 편

더이상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ㅡ

새로운 광고로 잊혀지기에는ㅡ

광고 카피라고 무시해 버리기에는ㅡ

너무나 아까운 광고 이야기


illustrated by Yunna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강연 의뢰가 들어왔죠. 10년도 더 된 일인데도 생생히 기억할 만큼 그 강연은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그날따라 청중들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거죠. 전 결국 청중들의 관심과 집중력을 앞선 강연만큼 끌어올리지 못했습니다. 강연자도, 강연 내용도 똑같았는데…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제 배였습니다. 전 그때 만삭이었거든요. 

늘 그렇듯 그날 강연도 주최 측의 담당자와 전화로 일정 및 세부사항들을 결정했고, 강연 당일이 되어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담당자는… “아… 말씀을 하시지… 괜찮으시겠어요?” 하더군요. 강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저 제 몸상태가 괜찮겠냐는 배려인 줄 알았는데, 강연이 시작되고 나니 그 우려가 강연 진행이 괜찮겠냐는 걱정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 복귀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거요. 출산 후 얼마간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쉬어야 했고, 다시 복귀하는 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경력단절이 된다더라, 아무리 일을 잘해도 복귀가 힘들다더라, 힘들어서 다들 그렇게 주저앉는다더라… 전해 듣던 남의 이야기들이 제 이야기가 되었죠. 


박카스_나를 아끼자 ‘엄마’ 편 (2018)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광고 다시보기 나를 아끼자, 2018년 박카스광고 '엄마'편 (30초) - YouTube


정말 그렇습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참고,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열심히 배우며 해내는 시간이었고, 엄마가 된 이상 그 시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만, 그 모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칭찬과 격려도 힘들 만큼 온 힘을 다해 견디고 있는데… 부족하다고, 더 해야 한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참견과 비난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엄마들은 다 겪는 일인가 봐요. 결혼한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어제까지 나도 엄마한테 ‘엄마, 밥 줘’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밥을 달래!”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산린이도 같은 일을 겪습니다. 임신 후 신는 신발, 먹는 음식, 커피 한 잔, 그리고 좋아하던 일까지 그만 두라며 사사건건 비난을 받습니다. ‘임산부가 그러면 안 된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 그 참견을 다 견디며 이렇게 독백합니다. 

‘남편의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세상만 변한 것 같아.’ 

그리고 친정엄마를 찾아가 오열하며 말하죠.

“엄마, 나 이상한 사람인가 봐. 임신한 게 하나도 기쁘지 않아. 나 너무 이상하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말은 ‘당연히’ 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랑과 희생은 엄청나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가치로 추앙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사랑해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 강요할 수 없죠. 강요하는 순간 폭력이 되니까요. 그런데 거기에 ‘엄마’가 붙으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을 물론,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당연한 것이라며 강요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사랑과 당연한 희생이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타인에게 절대로 강요할 수 없는 이 절대가치의 두 개념이 왜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는 이렇게 무자비하게 변해버리는지 너무 안타깝네요.


엄마에 대한 이 모든 폭력을 없애는 건 아주 간단합니다. 

단어 하나만 바꾸어 보세요.

‘엄마’라는 단어를 ‘생명’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됩니다.

임산부를 배려하는 것은 ‘생명’을 배려하는 것이고, ‘엄마’를 존중하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거라고요. 인간은 탄생부터 생존까지, 다른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절대적인 필수조건 이기 때문이죠.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고,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은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지위보다 그 사람 자체의 가치를 더 존중하려는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여겨지던 그 많은 잘못들이 당연히 잘못된 일 이었다고 생각을 바꾸는 일이 더 많아지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겠죠.

그래서 ‘나를 아끼자’는 캠페인의 주인공을 엄마로 만들어준 박카스의 이 광고가 참 고맙습니다. 단순히 여성의 경력단절의 이슈에서 멈추지 않고, 엄마도 ‘자신을 아껴야’하는 주체로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제가 이래서 광고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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