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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나 Mar 02. 2023

아까운 광고 : 동경하거나 동정하거나

우루사_대한민국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2013

더이상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ㅡ

새로운 광고로 잊혀지기에는ㅡ

광고 카피라고 무시해 버리기에는ㅡ

너무나 아까운 광고 이야기

illustrated by Yunna

2012년 [내딸서영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때, 성인이 된 대한민국 딸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서영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쓰디쓴 인생을 소주잔에 담아 털어 넣던 이 땅의 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 같아 놀랐고, 기억하는 내내 힘겹게 이고 지고 견디던 아버지의 무게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딸들의 이야기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것은 ‘서영이 아빠’로 대표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은 대부분이 철이 없고 이기적이며, 그런 아버지의 딸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고되고 가혹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10년도 더 된 드라마를 다시 불어온 건 한 소설 덕분입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인데요. 출판사는 이렇게 서평을 적고 있습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 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내 딸 서영이]에서 그러했고 내 삶에서 그러했듯이, 딸에게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는 동경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딸은 몸이 달라지고, 기대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죠. 우리가 받은 그 어떤 교육도, 우리가 속한 그 어떤 사회도, 급격하게 벌어지는 그 간극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다름은 이해와 타협보다는 아버지의 노화나 죽음을 계기로, 긴 세월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감성적인 용서로 끝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2013년에 진행된 우루사의 ‘대한민국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캠페인에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 보실까요. 흑회색의 흙먼지가 쌓인 어두운 빈 공간에 안경을 쓰고 앙상한 상체를 맨 살로 드러낸 중년의 남자를 롱테이크(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장면의 영상)로 보이며 자막이 나타납니다.


[COPY]

이것은 몸

뽐내기보다 견디기 위한 몸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 위한 몸

이것은 내리는 비를 대신 맞고

쉽게 아프다 하지 않으며

아파서도 안 되는 몸

그래서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전사의 몸

평생 온몸으로 가족을 부양해 온

대한민국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광고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waTsSdGIhpI )


술 많이 마시고, 과로 많이 하는 남자들의 건강보조제, 초등학생들도 따라 하던 “간 때문이야~” 노래를 부르던 간장약 ‘우루사’가 던진 이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광고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세월과 책임이 훑고 지나간 그 앙상한 몸을 보아서 마음이 아프고,

그가 짊어졌을 고통에 대한 마음가짐을 들어서 마음이 아프고,

세상이 그에게 강요했을 그 삶의 모습이 마음 아픕니다.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렇게 과정은 없고 언제나 결과만 있으니까요.


차라리 아버지에게 이렇듯 정형화된 ‘가장’의 모습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모든 일에 답이 있어야 하고, 모든 돌발상황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를 가두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다시 소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동경을 떠올리고, 그 애잔한 삶에 동정을 갖게 됩니다. 이런 과정 역시, [내 딸 서영이]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수많은 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 전 너무 놀라웠습니다. 동경으로 시작된 아버지와 딸이 결국 동정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이요.


광고는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절대로 넘지 않은 선은 존재합니다.

태도나 스타일은 다르게 바꿀 수 있지만, 사회의 고유한 가치들은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특히 가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광고에서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의 가치관은 늘 한결같습니다. 엄마가 되는 순간 모성애를 장착한 엄마,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빠,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서 고민해 봅니다. ‘공감’이라는 광고의 목표치가 어쩌면 사회적 고정관념을 더 시각화시키는 건 아닐까… 광고가 새로운 사회적 롤모델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들은 광고를 만드는 동안 내내 멈추지 말아야겠죠!


이런 모든 생각들을 뒤로하고 우루사의 대한민국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캠페인에 작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짧은 영상과 카피가ㅡ

남자라는, 가장이라는 지구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었기를…

그리고 그들의 고단한 삶을 까치발로 함께 들어 올리는 그들의 딸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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