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태도에서 때로는 민망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불필요한 연락을 자주 받지 않아도 되겠지.’
‘거기에 응대하느라 시간을 버리지 않겠지.’
내 편에서는 안도감이지만,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소통의 포기로 들릴 것이고, 이렇게까지 말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혹시 차단당한다는 느낌까지도 들 수 있으려나?
그러나 나는 특정인을 향한 특정한 차단을 원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한 태도를 고수해 왔을 뿐.
상대방의 체념에 자신 있게 안심할 수 있는 것 또한 그래서일 것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들, 지인들에게서도 이런 반응은 비슷하다.
처음에는 “왜?” 그다음에는 “아!...”
타인들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은 묻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좀 더 알고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들의 반응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준다는 것.
물론! 전화나 문자 메시지, 이 메일을 통해서다.
아주 아주 간혹 가다가는 뜻밖의 응원을 받기도 한다.
오랜만에 연락을 재개하게 된 한 친구는 통화 중 내가 카톡이나 SNS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
“요 현명한 것!”
이라고 답했다.
업무 상 잠시 뵈었던 어떤 분은
“와... 대단하시다! 저도 어쩔 때는 안 하고 싶어요 정말!”
하면서 동조해 주신다.
예의 상 해 준 말들이라도, 내 삶의 일부를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은 큰 힘이 된다.
이처럼 상대방의 체념이나 응원에 안도하는 심리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지켜내었다는 데에 대한 안도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카톡을 하지 않는 열 번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