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되는 주말이었다. 그래도 주말은 아이들과 무엇을 꼭 해야 할 것 같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주중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고, 같이 있는 시간마저도 바쁘다는 말만 닳고 닳도록 해대서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벌충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이고 이번 주말은 시댁도, 친정도 가지 않아도 되었고 남편 주말 출근도 토요일 하루는 쉬어서 여유가 있었다.
주중엔 아무래도 더 어린 아들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학교 갈 때, 끝나고 올 때도 나와 같이 오고 가방 챙기는 것, 공부하는 습관까지 이제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들과 나눈 말들은 대화라고 하기보단 잔소리 폭탄(아들 왈)이지만 그럼에도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파고들고 거침없이 대드는 아들과 엄마의 폭발 옆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딸이 대견했다.
금요일 저녁 식사 후 자듯이 책을 보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와서 안부를 살피는 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자기 전에 내일 아침 수영장에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약속 시간은 빠르게 다가와서 여섯 시가 되자마자 일어난 딸은 엄마를 재촉했다. 약속을 했기에 일어나긴 해야 했는데 새벽부터 수영장에 가긴 싫어서 약속을 바꿔 동네 산책을 했다.
이제 여섯 시 반은 해가 둥실 떠있어 어둡지 않고 오랜만에 비도 내리지 않아 걷기 좋았다.
수영을 다니기 전엔 아침마다 산책을 했는데 내가 걷지 않는 동안에 더욱 아파트를 가득 채운 벚꽃은 꽃잎을 이미 많이 보낸 뒤였다. 동네 어디로 걷든 희고 눈부신 꽃나무들이 가득해서 걷는 걸음이 싱그러웠다. 무엇보다 싱그러운 것은 이런 산책을 버거워하지 않고, 엄마가 손을 잡아 주지 않아도 혼자서 꽃과 나무 곁에 아름다움을 찾는 딸이었다.
눈곱을 달고도 입 옆에 밤새 흘린 침자국이 있어도 아이는 꽃보다 예뻤다.
뛰듯이 걷는 아이와 보조를 맞추려고 나도 덩달아 봄 속을 뛰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목이 타서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 하나를 사고 놀이터에 앉았다. 이번주는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 계속 흐리고 비가 왔는데 주말에 몰아서 햇빛을 쏟아내려고 그랬나 보다. 놀이터에 앉아 떨어지는 꽃들을 딸과 둘이 보자니 여기가 벚꽃 축제였다. 음료수 하나씩 먹고 사진도 찍고 하늘도 보고 아이 얼굴도 보았다. 따로 말이 필요 없이 편안한 시간이었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공원에 나갔다. 오후엔 아이와 수영장을 갔다. 작년 이맘때쯤 주말에만 같이 가서 조금씩 물에 적응을 하던 딸은 이제 어린이 수영장에서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2년째 수영 초보인 내가 조금씩 알려주었더니 아이는 느리지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형을 하게 되자 배영도 도전하더니 어느덧 팔도 돌리면서 배영을 한다. 다음엔 접영 발차기를 알려줘서 짧은 웨이브를 타면서 접영 발차기도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놀면 추워서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수영장 앞에 바로 조선소가 있다. 조선소로 들어가는 도로 아래 나름 큰 천이 흐르는데 그 주변에 벚꽃 나무가 성성하여 아침에 이어 또 꽃을 보러 갔다.
예전엔 꽃을 보면 그 꽃보다 그 앞에 서있는 내가 더 이뻤는데 이젠 그 자리를 딸에게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아이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오후에도 가장 밝고 예뻤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에 가는 길.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거리에 흰 꽃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함께 천천히 녹는 중에 문득 아이를 돌아보았다.
분홍 막대 아이스크림을 요리조리 깨물어 먹는 아이의 빨간 입술이 동그랗고 야무졌다.
어디로든 가도 되는 주말에 다른 곳도 아닌 집 근처에서, 늘 가는 수영장에서,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보낸 짧은 시간들로 주말이 가득했다. 그때 라디오에서 들렸던 노래가 이 노래였다.
익숙한 여 가수의 목소리는 이효리였다. 양희은 목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른 가수는 정미조라는 가수였다.
한번 들었는데 뭉근하게 식은 누룽지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음 하나하나가 마음을 따끈하게 데우는 노래였다. 그립고 아득한 마음으로 노래를 듣는데 문득 아이랑 앞으로 같이 봄을 보낼 날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딸이 이뻤던 것은 아니다. 쪼그만 녀석이 울기도 많이 울고, 짜증도 많아 아이를 키울 때 힘들었다. 서툴고 부족해서 그런 힘든 마음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표현한 날도 많았다. 사실 아이가 미운게 아니라 못난 내가 미워 힘들었던 것인데 그런 날들도 지나 이제 내 도움 없이도 너무 잘 크고 있는 아이를 보면 새삼 흐른 시간이 아쉬웠다. 이제 열 살인 아이지만 지금만큼 아니 지금보다 더 빨리 아이의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그 곁에 내 공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 아쉽고 벌써부터 허전했다.
다가올 어느 봄날...
다 큰 딸이 벚꽃을 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모든 기억이 생생하진 않아도 행복했던 조각만큼
아득하고 그리운 마음에
엄마한테 짧은 문자라도 보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