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캠핑이 힘들었던 이유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다.
저녁 식사로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고 두둑해진 배를 비스듬하게 뉘어 캠핑의 백미인 불멍을 시작하려고 했다. 쌓아 올린 장작 사이에 불꽃이 넘실거려 늦은 5월의 저녁을 덥혀줬다. 너른 캠핑장에 아무도 없이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있어 불꽃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점점 더 커지는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바람 소리였다.
요즘 인기 있는 에스파 'Supernova' 가사처럼 장작을 태운 불꽃은 바람을 맞아 거세게 일었다.
사건은 다가와 Ah Oh Ay
거세게 커져가 Ah Oh Ay
올해 첫 캠핑이었다.
더운 날씨를 못 견뎌하는 남편과 첫째 덕분에 한여름 캠핑은 어림없고, 주로 가을, 아침저녁으로 선선할 때 캠핑을 갔다. 좋은 시설에 편리한 캠핑장 많겠지만 항상 찾는 곳은 거제 바다가 잘 보이는 옛 학교의 캠핑장이다. 다용도실에 잠자고 있던 캠핑 도구 챙기기가 제일 힘든 일인데 남편이 알아서 잘 챙긴다. 캠핑 자주 다니는 분들은 이것저것 신기한 장비들도 많던데 우리는 딱 십 년 전에 산 코베아 텐트와 도구들이 전부다. 그때 산 코펠이며, 식탁, 의자 10년이 다 지나도 망가진 것이 없고 1년에 많아야 한두 번 쓰기 때문인지 아직 멀쩡해서 잘 쓰고 있다. 다만 4 식구 한 텐트 안에서 자기엔 아이들도, 어른도 부피가 조금씩 늘어나서 원터치 텐트 하나를 더 사서 원래 있던 이너텐트 대신 썼다.
전날 급작스럽게 결정한 캠핑이었지만 이번주 내내 날씨가 좋아 주말 캠핑은 기대됐다. 장보기로 음식도 준비하고, 어느새 큰 아이들이 자기 짐은 스스로 챙겼으며, 아빠랑 같이 차에 짐을 나르기도 해서 기특했다. 토요일 오전, 분주히 준비해서 캠핑장에 도착하니 11시. 텐트는 남편이 진두지휘하여 설치하고, 점심은 주문한 부대찌개 밀키트에 라면을 추가해서 맛있게 먹었다.
캠핑장은 옛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지금은 초등학생, 유치원 아이들 도자기 체험장 겸 오토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당은 넓게 잔디가 깔려있고 옛날 학교 건물이라 오래된 동상들도 많고 키 큰 나무들도 많다. 아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나름 놀이터도 구색을 맞춰 놓았고 공도 몇 개 놀고 있다. 올 때마다 캠핑객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한적해서 더욱 좋았다. 커다란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타프도 높게 쳤다. 소란스러워도 우리들 뿐이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책 보다가 지루해지면 바다 보고, 그것도 지루하면 보드게임하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싸웠다가 놀았다가 놀아달라고 했다가 같이 뛰었다가 정신없어도 여유 있게 그렇게 오후가 흘러갔다.
그때까진 분명 바람도 딱 시원하게 적당했다.
저녁도 맛나게 먹은 후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불멍을 하려고 했는데 불꽃이 사정없이 흩어졌다. 바람에 일렁이던 불꽃은 바람을 타고 더 커졌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급박한 상황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단단히 팩도 박고, 나무 기둥에 묵었던 타프가 들썩이더니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 위협적으로 휘청거렸다. 아이들은 급하게 텐트 안으로 들여보내고, 타프를 걷었다. 장작에 물을 부어 불을 껐다. 일주일 동안 내내 건조했던 날씨라 불꽃이 어디로 날아가 활활 타올라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치이이이...... 소리도 더 큰 바람 소리에 묻혔다.
남편은 팩을 더 단단히 고정하고, 나는 이부자리를 챙겼다. 아이들이 침낭이 폭 파묻혔는데도 쉬이 잠들지 않았던 것은 텐트가 온몸으로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들으면 좀 나을까 싶어 오디오북을 하나 읽었는데 하필 내용이 좀 으스스한 부분이 있어 바람 소리와 내용이 한데 뒤섞였다. 흔들리는 텐트에서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땐 아까와 비교도 못할 만큼 더 거세진 바람 소리와 흔들림이었다.
큰 아이는 엄마가 깨서 허둥거리자 덩달아 깼다. 펄럭거리는 소리.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 파도 소리. 텅 빈 운동장 가득한 바람이 어디에든 부딪치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
낮엔 아무도 없어 조용하다며 좋던 고요함을
밤에는 바람이 모두 깨트리며, 무엇이든 닿는 것은 떠밀고 내밀리며 몰아치는 중이었다.
도저히 불안해서 잠시 바깥에 나왔다. 남편은 자는지 기척이 없고 밤하늘엔 별빛이 형형한데 바람은 오로지 우리 텐트를 목표물로 삼은 것 같았다.
다행히도 텐트 어디 한 구석 찢어지거나 튀어나온 곳이 없는 것 같아 다시 들어갔다.
누군가 우리 텐트를 들어 올려 손바닥 안에서 공기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 같았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니 어느덧 아침이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바깥에서 멀리 새소리가 들렸다. 멀리. 가까이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어제 텐트를 들어 올렸던 바람 소리는 사라졌다. 나무 한 그루 부러졌어야 했는데 캠핑장은 말짱했다.
후두둑 떨어진 오디만이 어제 바람이 분 흔적처럼 남았다. 심지어 주인 내외가 널어둔 마늘도 포장 위에 멀쩡히 존재했다. 한 알도 이탈 없이.
우리 텐트는 아무 이상 없었지만 분명 바람이 휩쓸고 간 증거로 한데 모아두었던 의자가 나뒹굴고 있었을 뿐 멀쩡했다.
도대체 그 바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에스파 수퍼노바로 돌아가면
사건은 다가와 Ah Oh Ay
거세게 커져가 Ah Oh Ay
질문은 계속돼 Ah Oh Ay
우린 어디서 왔나 Oh Ay
바람이 거셌던 것은 사실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넘기지 못했던 것은 바람의 목적을 찾으며 우리에게 가할 위해를 걱정했기에 바람이 강풍에서, 태풍으로 느껴졌나 보다.
캠핑장을 휩쓸고 간 바람이 시작은 바깥이었지만 텐트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그 시간 동안 계속 질문했다. 도대체 언제 끝나지? 왜 지금 그렇게 불지? 왜 여기에만 부는 것 같지?
바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가까웠다 멀었다를 반복하며 두려움에 떠는 시간이 꿈처럼 지나가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잔 우리 둘째만 빼고 다들 앓는 소리를 하며 텐트 바깥으로 탈출했다. 질문의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바람이 불었을 뿐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하게 커피를 마시고,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캠핑은 어려울 것 같다. 바람이 남긴 흔적은 가슴에 남았나 보다.
캠핑 가기 힘들다는 말을 참 길게 쓴다.
그래도 거제 바다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