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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뒷 이야기

펄떡펄떡 1학년 3월 생존기

by 다시 Mar 04. 2025

밤새 비가 왔다.

지난 주말 봄처럼 훈훈한 날씨에 살랑살랑 내리는 비에 봄이 실렸는가 했는데 다시 겨울이다.

큰맘 먹고 산 원피스가 오늘 날씨를 견디기엔 얇디얇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단단한 우산도 갈대마냥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런 날씨에도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학교로 걸음을 당차게 옮기고 1학년 담임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도 학교로 바람처럼 들어갔다.


오늘의 메인 업무는 뭐니 뭐니 해도 입학식이다.

서류 속에서만 존재했던 우리 반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는 날.

텅 빈 교실을 가득 채우기엔 아직 작은 우리 반 22명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가 낯설고 어색하고 떨리기까지 하다니. 당당히 학교로 향했던 걸음은 어느새 초조와 번민으로 가득하다.


입학식이 시작되는 시각은 10시지만 미리 가서 이름표도 배치하고, 입학식장도 둘러보니 어느새 식 시작 30분 전이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교사 이름표도 반듯하게 찬 후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미리 이야기된 대로  전담 선생님들께서 체육관 문 옆에서 이름표를 찾아 아이들 목에 걸어주면, 다른 2-3분 선생님들께서 아이들 손을 잡고 체육관 앞으로 데리고 들어 온 후 의자에 차례대로 앉는 것이었다.

착착 순서대로 진행은 되는데 이게 무슨 일? 아이들이 다 오지 않았다!


10시 입학식인데 우리 반만 하더라도 그 시각까지 22명 중 19명, 다른 반은 23명 총 인원 중 18명으로 각 반에서 최소 1-3명이 안 온 상태였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님은 입학식 시각이 10시 30분이 아니냐면서 반문하더란다. 30분 전부터 온 아이들은 지루해서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파닥파닥 거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명만 더 기다리자며 하다가 10시 10분이 되었고, 그제야 입학식은 시작되었다.


이제 8살!  연신하던 하품 때문에 눈물이 글썽해도 이 작은 아이들이 입학식을 시작하겠다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입학식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은 없다.


식순

1. 국기에 대한 경례

2. 애국가 제창

3. 교장선생님 입학허가선언

4. 새로운 교장선생님 인사말

5. 1학년 담임 선생님 소개

6. 각 교실로 이동 후 첫인사

7. 원래는 없었던 순서지만 오늘 비가 와서 체육관 전원 도착 후 하교 지도


이렇게 식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을 데리로 교실로 들어왔다. 다행히 아침 일찍 켜 둔 히터 때문에 훈훈하다.


춥고 지루하고 긴장되고 머쓱하고 설렜던 체육관의 분위기가 보드랍고 따뜻하고 신기하고 편안하고 궁금한 분위기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단 몇 초 면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입학식엔 보이지 않았던 3명의 아이들도 교실로 이동했을 땐 도착해서 교실 안 빈 책상들이 아이들로 꽉 찼다. 아이들과 첫인사로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이다.

체육관에서 학부모 안전 연수와 학교 생활 관련 연수가 있는 동안 교실에서 아이들과 짧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춥고 떨렸던 체육관보다 교실에선 긴장이 풀렸는지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이 한결 해사해졌다.

손으로는 책상 위에 있던 이름표를 만지작 거리며, 앞에 저 동글동글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귀를 쫑긋거리는 아이들이 모습에 아 이래서 1학년을 하는구나.


그동안 잊고 있었던 1학년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뭐든 작은 아이들 앞에선 선생님의 어떤 행동도 크고 선명하게 보일 터였다.


첫날 읽어주고 싶었던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과 간단한 구호 연습을 하고

미리 준비해 둔 안내장과 선물을 한 명 한 명 불러내어 건네줬다.

서류 속 이름이 진짜 얼굴과 연결되며 아이의 이름이 뇌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작은 아이들 중에서도 더 작은 아이

재잘거리는 아이들 중에서도 더 조잘거리는 아이

웃는 아이들 중에서도 더 환하게 웃는 아이

선생님이 하는 말에 집중하면서도 짝꿍을 몰래몰래 보느라 눈이 바쁜 아이

그 20분을 참지 못하고 배고프다고 말하는 아이와 간식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까지.


아직 그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 속으로 혼잣말을 되뇌는 아이들의 마음까진 다 몰랐지만 한 가지 우리들이 같이 느꼈던 것은 설렘이었다. 크고 작은 미소를 각자 얼굴에 걸고서 다시 체육관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아침의 비바람을 사뿐히 걷어찰 수 있을 만큼 이젠 힘이 생겨버렸다.



3월 4일 우리들은 그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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