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딸이 아파서 오늘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이 벌개서 열을 쟀더니 37.7도다. 주말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고, 기침에 가래가 끓어서 좀 쉬면 괜찮을 줄 알았더니 감기 기운이 며칠 이어졌다. 오늘 아이가 학교에 가면 컨디션이 더욱 안 좋아질 것 같아 하루를 쉬었다. 조퇴를 하고 일찍 나와서 아이 병원을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전체 회의도 있고, 부장 회의도 있어 빠지기 어려웠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난데, 오늘 반차 쓸 수 있어? **이가 아픈데 내가 오늘 빨리 못 나올 것 같아서.
- 응. 알았어.
- 점심때 와서 밥 좀 챙겨 주고, 병원도 다녀와.
- 알았어.
한시름 덜었다 싶었는데 곧 출근 시간이라 서둘러 아침밥을 차려줬다. 그래도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어 급하게 쾌속으로 눌러 밥을 했는데 설익었다. 조미김에 밥을 싸주면 군말 없이 먹는 둘째가 밥맛이 이상하다고 한다. 큰 아이는 입맛이 없는지 나중에 먹겠다고 하여 대충 김에 만 밥과 과일을 반찬통에 넣어뒀다.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볼이 빨개서 소파에 누워 있는 아이를 애써 잊고 학교로 출근했다.
새벽에 눈발이 날리더니 먼 산엔 눈이 희끗희끗했다.
날씨가 이렇게 변덕을 부리니 안 그래도 힘들 3월 초, 아이들이 병치레가 잦은 것이다.
집에서 오분거리인 학교지만 오늘따라 품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이 발걸음을 잡아끌어서 겨우 교실에 들어갔다. 신발장 앞에 모래가 자글자글 거려 가방을 벗어 놓고 바로 청소를 했다.
아이들이 속속 들어온다.
어제부터 아이들 옷차림이 다시 한겨울로 돌아갔다. 모자까지 푹 눌러쓴 아이들이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고 교실로 들어오면 인사를 한다.
-1번, 2번, 3번?
대뜸 번호를 물으면 아이는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
1번은 안녕하세요? 배꼽인사다.
2번은 손을 힘차게 흔들며 악수를 한다.
3번은 머리 위로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한다.
매일 인사를 바꿔하는 아이들, 똑같이 예의 바른 1번 인사를 하는 아이들, 고민하다 앞에 친구가 하는 인사를 따라 하는 아이들. 그때는 1대 1로 아이의 눈을 보고 인사를 할 수 있다. 하루 중 온전히 아이와 눈과 손을 마주치는 시간. 단 5초. 그 정도 시간이면 아이의 컨디션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늘 활기차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여학생이 오늘은 힘이 없다. 가방을 힘겹게 자리에 놓더니 고개만 꾸뻑하고 들어간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머니에게 소통 어플로 메시지가 와있다.
-선생님, 우리 **이가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컨디션 안 좋으면 연락 주세요.
씩씩한 아이가 배가 아파서 힘이 없었던 것이었다. 메시지 확인 이후 아이에게 상태를 묻고 힘들면 꼭 이야기하라고 당부를 했다. 1교시가 시작되고 평소만큼 활발하게 돌아다니진 않아도 수업 시간에 해야 할 공부를 잘 따라오고, 눈 맞춤도 잘하고 있어 안심을 했다.
쉬는 시간, 쉬라고 있는 쉬는 시간인데 아직 1학년 녀석들은 별 걸 다 묻는다.
-선생님, 물 마셔도 돼요? - 그럼요.
-선생님, 화장실 가도 돼요? - 그럼요.
-선생님, 도서관 가도 돼요? - 아니요. 중간놀이 시간에 가세요.
-선생님, 종이접기 해도 돼요? - 그럼요.
아이들이 연달아 질문을 하는 통에 물 한 모금 마실 새도 없이 다시 2교시가 되었다.
아까 아팠던 아이가 앞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선생님, 배 아파요.
-그래? 얼마만큼 아파요? 화장실은 갔어요?
-네. 그런데도 배가 아파요.
-그러면 선생님이랑 보건실에 갈까요?
-아니요. 가기 싫어요.
-그럼 조금 교실에서 더 있다가 지금보다 더 아프면 말해요.
-네.
그렇게 아이가 자리로 돌아다니까 다른 아이들도 다시 엉덩이를 떼고 내 책상으로 다가온다.
-(손가락을 내밀며) 선생님, 여기 베였어요.
-응. 종이에 베인 것 같네. 밴드 하나 붙여줄게.
한 녀석 보내고 나니 또 다른 아이가 와서는
-선생님 발목이 아픈 것 같아요.
-응? 언제 부딪쳤어요?
-아니요. 어제부터 아파요.
-그럼, 지금은 수업시간이니까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랑 보건실에 가봐요.
한 녀석 보내고 나니 또 다른 아이가 와서는
-선생님, 화장실 가도 돼요?
-응? 방금 쉬는 시간에 안 갔다 왔어요? 어쩔 수 없지. 빨리 다녀와요.
한 명 한 명 응대를 하고 나니 수업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갔다.
또다시 수업 시간을 안내하고, 쉬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말하고,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아까 아프다고 했던 아이 눈치가 영 심상치 않아서 다시 가보았다.
-**아, 많이 아픈 거야? 지금 보건실에 가보자.
-아니에요. 지금은 괜찮아요.
-알겠어! 쉬는 시간에 가보자.
그렇게 2교시 수업 시간이 뭘 할 새도 없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 그 녀석을 찾으나 자리에 없다.
옆에 짝꿍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해서 스스로 보건실에 갔나 싶었다.
우리 학교는 2교시 쉬는 시간을 중간놀이 시간이라고 해서 20분 정도 놀이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때 각 학년에 정해진 장소인 강당, 운동장에서 놀거나, 도서관에 간다. 선생님들도 이때 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리거나 못 본 학교 메신저를 확인한다.
별다른 메시지가 없어 조금 쉬고 있는데, 그때서야 생각났다.
우리 딸! 집에 혼자 있는 아이가 출근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떠올랐다. 아직 쉬는 시간이라 전화를 거니 목소리에 힘이 없다.
-딸! 밥은 먹었어?
-응. 근데 입맛이 없어서 조금만 먹었어.
-그래? 과일이라도 먹지.
-근데 별로 먹기 싫어.
-약은? 약 먹었지?
-아니, 이제 먹을게.
-그래. 아빠가 조금 이따 간다고 하니까 그때까지 좀 쉬어. 티브이도 보고.
-응. 알았어.
소란스러운 교실 안에서 아이와 통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도 크게 아픈 것 같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나머지 시간 수업도 했다. 아까 아프다고 했던 아이가 눈에 띄어 보건실에 갔다 왔냐고 하니까 도서관에 갔다 왔다고 한다. 아까보단 생기가 있어 보여 안심을 하고 3교시 수업을 했다.
이윽고 찾아온 급식 시간. 밥 먹을 때만큼은 조용할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급식 먹으러 가기 전에 물을 충분히 마시라고 해도, 아이들은 밥 먹을 때마다 물 생각이 나는지 계속 내 자리로 와서 묻는다.
-선생님 물 마시러 가도 돼요?
-응, 먹고 싶으면 걸어서 다녀와요.
이렇게 대답을 몇 번 해주고 나면 이번엔 더 먹으러 가도 돼요? (간식으로 나온) 옥수수 먹어도 돼요? 까지 나온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는 밥을 평소에도 늦게 먹는 편인데 입만 오물오물하고 있길래 가서 물어보니 못 먹겠다고 하여 이번에는 같이 보건실에 갔다.
점심때마다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또 한 곳은 바로 보건실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아프고, 또 아픈지.
아픈 곳도, 이유도, 상태도 다 다른 아이들을 2분 보건 선생님께서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고 계셨다.
같이 간 아이는 보건선생님께서 손으로 배를 눌러보고, 상태를 확인해 봤을 때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보건실에서 쉬고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를 두고 혼자 교실로 올라왔는데 금방 뒤따라와 물어보니 누워있기 싫다고 한다.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데리러 오신다고 하여 5교시에 아이를 조퇴시켰다. 혼자 정문으로 내보낼 수 없어 같이 나갔더니 얇은 니트 한 장만 입고 나와 너무 추웠다.
아이를 인계하고 교실로 돌아오니, 머리가 띵 하다.
입학 초기 적응 기간이 저번 주로 끝나고, 이번 주부터는 원래 일과운영을 하기 시작했는데, 화요일은 5교시인지라 평소보다 50분 마치는 일정이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 한 시간을 참기가 힘들었는데 5교시엔 눈이 감기고, 허리가 굽어 얼굴이 책상에 맞닿아 졸려했다. 그런 시간도 잠시, 방과후학교 강사님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온 1학년 교실을 돌아다니시면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시기에 어서 챙겨서 하나둘 보냈다.
돌봄 교실, 방과후학교, 늘봄학교(아, 무슨 교실이 이렇게 많고 무슨 학교가 이렇게 많은지..이름도 사실 바뀌어서 늘봄학교 선택형 프로그램,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헷갈려.)
챙겨 보내고 집으로 하교하는 아이 다섯 명만 데리고 정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까 분명 추워서 외투를 입고 나오자 했는데 또 잊었다. 찬 기운에 순식간에 몸이 떨렸다.
교실 안과 밖의 기온차가 이렇게 큰 날. 서늘한 냉기가 몸속을 파고들면 감기가 시작인 것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그제야 다시 딸이 생각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병원에 다녀왔고, 밥도 많이 먹고 쉬고 있다고 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힘이 없긴 해도 아빠랑 같이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어 온몸이 힘이 쫘악 풀렸다.
뜨거운 믹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이때....
아프냐? 나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