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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설명회보단 알림장!

진짜는 거기 있다.

by 다시

이렇게 길고 긴 3월이라니.


지난주 딸의 감기에 이어 아들의 독감, 연이은 남편의 독감까지 휘몰아친 우리 가족의 건강 이상 현상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오늘은 학교교육과정 설명회였다. 학교 교육과정설명회야 교무실에서 하는 행사가 된 지 오래라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지만 이어서 교실로 내려오는 학부모님들에게 학급 교육과정을 설명해야 해서 아예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예전 말로 학부모 총회인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는 일 년 학사일정과 학교 주요 행사, 교육 방침, 각종 학부모 연수 등을 진행한다. 이번엔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의 말씀도 있었을 테니 1시간의 행사가 금방 지나갈 터였다.

연구부장님이 미리 못박은 학급 교육과정 설명회 시간은 20분.

학부모 상담은 진행하지 않고, 학급 교육 특색과 교육 철학, 학년 특색 교육과정 등을 설명하면 된다.

입학식 이후 거의 한 달 만에 방문하는 학부모님들이 저마다 얼마나 많은 궁금증을 갖고 교실에 들어올까 싶어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약속된 시각이 되었고 속속들이 학부모님들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입학식장에서 순간 스치는 얼굴들이 모두 기억날 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교실로 들어오는 학부모님들의 얼굴에서 익숙한 아이들의 모습이 풍겼다.

거의 복사본 수준으로 닮은 엄마와 아이들도 있었지만 분위기나 미소에서 느껴지는 유사함은 핏줄을 거스를 순 없다는 당연한 진리 같았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이 자리는 여기고요, 다른 학부모님들 오시기 전까지 사물함도 보시고 아이들 작품도 한번 보세요 ^^


먼저 오신 어머님들께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아이의 자리와 사물함 위치만 알려드렸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사물함 속 정리 상태 확인과 게시판 작품을 찍기 위해 자연스레 핸드폰을 꺼내셨다.

아이의 서툰 작품도 집에서 보던 것과 실제 교실에 걸려 있는 것은 느낌부터 다르니까.

총 7분, 단출한 수였지만 다른 학년에 비해 높은 참석율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기 시작 처음으로 학부모에게 교문을 개방한 자리니만큼 중요한 자리라 많은 참석을 원했을 수 있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매년 크게 다를 것 없는 학교의 일이 뭐가 그렇게 궁금하겠는가.

다만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과 아이가 일 년 동안 공부할 교실의 분위기가 제일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1학년, 6학년 학부모님들의 참여가 제일 높고, 나머지 학년은 저조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엔 일하는 학부모들의 참석율을 높이고자 저녁 6시 이후에 한 적도 있고, 공개수업과 더불어 한 경험도 있으며, 학기 초 학생 상담과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이 행사 존재 자체가 학기 초 교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그런 부담감도 줄어드는 것같다.

1학년 교육목표 실화?


경력이 오래되어서? 부장 교사라 그런 것이 아니다.

이쯤 되니 그냥 저절로 아는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이라도

내 집에서 편하게 먹는 밥이 최고인 것처럼

학급에서 최고의 모범생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설명회는 아니지만

아이를 일 년 동안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교사의 1년 교육 계획을 진실되게 발표하는 시간. 그게 전부다.


교사의 교육관을 기본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칠 학습 내용과 생활 습관, 학급 특색 교육 등을 간단하게 말하면 되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다.

거창한 계획
우리 반 아이들이 제일 많이 말하는 말!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자리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추장스러운 내용 없이 말하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많이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학부모님들에겐 쉽지 않을 내용을 너무 급하게 말한 것은 아닐까 끝나고 나서야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끝으로 학급 교육과정 설명을 끝내고 어머님들께서도 자기 아이 자리 한번 더 쓸어보시더니 다들 금방 나가셨다.


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나도 우리 아이들을 보러 집으로 갔다.

식탁 위의 알림장 두권.

우리 반 학급 설명회를 하느라 정작 우리 아이들 학급 설명회는 못 갔지만 딱히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 알림장은 꼼꼼히 보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학부모님들이 이런 자리를 때마다 찾기 힘들 것이다.

담임교사들이 학부모님도 모든 부모님이 그런 자리를 오기 원하지도 않는다.

매일의 알림장을 읽는 것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화려한 타이틀의 교육과정설명회보다

소박하더라도 꾸준한 알림장 거기에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모두 담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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