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1학년은 11시 반에 점심을 먹는다. 한 시간 간격씩 3-4학년, 5-6학년 배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는데도 아이들은 2교시만 지나면 배고프다고 하고, 3교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점심을 언제 먹냐고 묻는다. 그래서 커다란 모형 시계를 11시 25분에 맞춰두고 이때 밥 먹으러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오늘도 그렇게 3교시가 시작되자마 모형 시계로 밥 먹으러 갈 시각을 맞춰두고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선생님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갈래요!
-응! **아 조금 있다가 밥 먹으러 갈 거야. 조금만 참아봐요.
-배고파서 화가 나요. 화가 난단 말이야!
아이는 두 손으로 양 눈썹 위를 힘껏 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쉬는 시간 직후, 아이는 20분간 도서관을 가고, 토끼를 보러 갔다 왔으며, 다다다 날랜 발로 학교 여기저기를 누비고 돌아온 상태였다. 조금 늦긴 했어도 약속한 수업 시간엔 맞춰서 돌아왔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철렁하진 않았다. 배가 고프다니 그렇게 돌아다녔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왔어도 두어 시간 진을 빼고 나면 나도 어김없이 11시면 배가 고프니까.
다시 한번 말했다.
-국어 공부 조금만 하면 밥 먹으러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싫어요.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갈래요!
아이는 벌떡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한다.
그 순간 교실 뒤편 책상에 앉아계시던 특수학급 봉사 선생님께서 나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아이를 잡는다. 지금 놓치면 아이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음 졸이며 아이가 돌아오기 기다리거나, 아니면 나머지 20명의 아이들을 놔둔 채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2층이며, 3층을 헤맬 것이다.
특별한 그 아이는 우리 반의 소닉이다.
파란색 외투를 늘 입고, 소닉을 좋아한다며 입학식 다음날 대뜸 소닉 프린트를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아이. 복도에서 다다다다 지표면을 두드리는 속도감 넘치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우리 반 소닉이다.
어디로 달려 나갈지 몰라
현재 우리 교실엔 매일 오전 1,3교시에 기초학력 지원 강사와 특수학급 봉사 인력 2분이 교대로 지원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엔 나 혼자서 어떻게든 끌고 나가려고 했다.
3월 한 달 동안 아이도, 나도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상대에 대한 탐색전을 펼쳤고, 나는 크게 오판했다.
부모님께서 전해주신 내용과 달리 아이는 친구들과 잘어울리고, 얼굴에 늘 웃음이 가득하고, 무엇보다 눈맞춤을 잘하며 또래의 1학년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갓 유치원 이름표를 뗀 아이들.
저마다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가득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풀어내고야 마는 아이들.
자꾸 웅크리고 숨는 아이들보다 시끄럽더라도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그 아이들이 대견하고 이뻤다.
아이들은 여리고 작았지만 각기 다른 색과 향을 내는 꽃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는 그게 힘들었지만 다음 날은 밝게 다시 다가오는 아이들이 소중했다.
수업 중 우는 아이
화장실 가는 아이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싸우는 아이
갑자기 아픈 아이
갑자기 언니가 보고 싶은 아이
언니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 옆에 나도 그렇다고 우는 아이
왜 우냐고 웃는 아이
그걸 보고 이르는 아이
정말 다양한 아이들 곁에 소닉은 조금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고, 어떤 땐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갈까 좀 더 손을 잡아주고 싶은 아이였을 뿐이다.
지금처럼, 밖으로 나가버리지는 않았다.
소닉이야 80년대생인 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했던 만화영화였다. 잘은 기억 안나도 그냥 엄청 빠른 캐릭터였고, 언젠가는 386 컴퓨터로 했던 시디롬 재생의 게임이었다. 다시 봤을 땐 방학 때 우리 아이들과 같이 본 실사판 소닉 영화였다. 소닉도 재밌었지만 소닉을 따라다니며 소닉의 무한 에너지를 빼앗으려는 나쁜 박사 역의 짐캐리가 더 인상 깊었다. 물론 소닉과 함께 악당과 싸우는 경찰관 톰보단 화려하고 최첨단 무기를 동원하여 소닉을 잡으려는 과학자가 더 흥미진진하고 유쾌하긴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판에서 내가 그 과학자가 될 판이다.
나는 우리 반 소닉의 무한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버리는 과학자가 되고 있다.
아이는 달리고 싶어 한다.
아이는 친구와 놀고 싶어 한다.
아이는 교실 대신 운동장을, 놀이터를 누비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앉게 한다.
(복도, 계단, 교실에선 뛰면 안 돼!)
아이와 놀려고 하는 친구가 싫다는 표정과 말을 하면 친구 입장을 소닉에게 전달하며 거절하게 된다.
(친구는 지금 너와 놀고 싶어 하지 않아. 친구랑 놀고 싶으면 기다렸다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운동장과 놀이터는 한정된 시간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때 아이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슈퍼 에너지를 발동한다.
(학교에선 규칙을 지켜야 해. 규칙을 어기면 다른 친구들이 힘들고 너도 힘들게 돼!)
-집에 갈래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학교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곳은 아니야.
-맞아요. 내가 맞아. 내 세상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
자기 세상에서 어디든 누볐을 아이를 좁은 교실에 데려와 모두가 같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내 모습에서 빌런 과학자가 겹쳤다. 소닉이 마음껏 세상을 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사랑해 주는 도넛맨이 될 줄 알았는데.. 낭패다.
1학년을 맡고 나서 1분 만에 떠올랐다.
내가 왜 그동안 1학년을 지망하지 않았는지.
작년 5학년 아이들은 공부보단 다른 것에 너무 관심이 많아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모두 못 주는 것 같아 답답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을 자리에도 못 앉히니 그때보다 오조오억 배 답답하다.
일단 최우선 과제는 소닉을 자리에 앉혀라!
빌런 과학자처럼 최첨단 무기를 개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