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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by 다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떠나간 님처럼, 나의 목소리도 시들어 가더니 영영 가버렸다. 화요일 1교시, 뒤뜰에서 아이들과 놀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소닉이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 버렸을 때, 그 아이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른 것으로 목소리가 영 집을 나가버렸다.

감기 기운도 있었지만 워낙 수업할 때 톤 자체가 높다 보니 학기 초엔 목소리가 쉬는 것은 일상이었다. 이번엔 그래도 지난 십몇 년 간 단련되어서 무사히 넘어가려나 했는데, 지난주부터 소닉을 찾는 일이 워낙 잦다 보니 단시간에 성대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교사 대부분이 겪는 질환이 성대 결절이라고 하던데, 나도 3월이면 달고 사는 병이 목감기, 심하면 인후염이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말을 많이 안 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웃고 넘어갔다. 다행히 요즘은 마이크도 쓰고 영상 매체도 쓰기 때문에 목소리를 대체할 자원은 많지만 그래도 어떻게 교사가 수업을 할 때 목을 안 쓰겠는가. 나름 조심조심하는 정도이지.


달리고 싶고, 놀고 싶어 하는 소닉을 교실에 붙잡아 두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우리 반 자체가 본관 현관과 매우 가깝고, 문만 열면 급식소로 통하는 넓은 복도와 중앙현관 밖으로 바로 운동장에, 위아래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어 어디든지 달려가기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소닉이 자리에 없을 때마다 중앙현관을 나와 부르고, 계단 위아래로 부르러 돌아다닌다. 하지만 소닉이 마음만 먹으면 이제 학교에서 숨바꼭질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숨기 너무 좋은 장소가 군데군데 있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다.

교실 밖으로 탈출하는 소닉은 어디로 갈지 몰라 위험하고, 뒤따라 내가 소닉을 찾으러 돌아다닐 때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그대로 남아 방치되니 우리 반이 무너지는 것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학교와 공유하여 소닉이 탈출했을 때 최소한의 안전 경계를 갖춰야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날 때,

수업 시간을 알리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친구가 놀아 주지 않는다고 말할 때,

친구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때,

국어책을 펴라고 할 때,

아무튼 책을 펴라고 할 때,

자기 자리 주변을 청소하라고 할 때,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할 때,

밥 먹으러 갈 시간은 30분 남았다고 할 때,

아무튼 내가 말을 할 때 소닉은 이미 다리를 움찔거리고 있다.


자유로운 시간에는 아무런 문제없다가 공부와 관련 있는 말을 하거나 정리하려는 말을 하면 이미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버리는 이 아이를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1학년이지만 하루 4교시에서 5교시의 수업이 있고, 각 시간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수업을 할 수 없기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 인력을 끌어와야 했다.

특수학급 봉사인력, 기초학력 지원강사, 문제행동 지원인력 등 각 시간마다 소닉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최대한 수업 방해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더라도 밖에는 나가지 않도록 했다. 교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 안전부장님께 협조를 구해 바깥출입을 막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던 것은 소닉이 마음만 먹으면 요리조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가능했고, 교실 안에서 마구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교사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하면 교실 안에서 소요가 벌어지므로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몇이 되어도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를 접했다.

도망치고, 찾으러 가고 이런 행동이 반복된다면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매일 매시간 이 아이를 통제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리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리도 없다는 생각에 뭐든지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소닉이라는 우주 속에 내가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다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문득 스쳤다.


천천히 짧은 시간부터 시작해 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아침활동 시간부터 아이가 집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의자에 앉힐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색칠공부였다.

소닉이 입학식 다음날부터 말했던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소닉이라고, 프린트해줄 수 있냐는 말이었다.

소닉 그림을 찾아 프린트를 잔뜩 해두었다. 다른 것은 뭘 더 좋아할지 몰라 미로 찾기, 숨은 그림 찾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른 캐릭터의 색칠 놀이까지 인쇄한 학습지를 바구니에 종류별로 담아 두었다.


다음 날 소닉이 가방을 내려 두지도 않고 교실을 둘러보더니 친구들이 하고 있는 색칠 놀이에 관심을 가졌다.


- 소닉이다! 소닉이 많아요! 이게 다 뭐지?


바구니들을 들춰보고 자기 옆에 그 바구니를 통째로 들고 와서 세심히 고르더니 제일 좋아하는 그림 하나를 골라 천천히 색을 칠했다. 아침시간 20분 동안 그 고요함. 덕분에 다른 아이들도 책 보기 말고 다른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어 한결 자유로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이 방법이 통했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닉이 앉게 하고 싶은 또 다른 방법, 친구들과 같이 놀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을 찾을 때다. 19세기의 교실에 20세기 교사가 앉아서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20세기 교사인 나는 21세기, 다른 차원에서 온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연구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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