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부장님?
3월은 교사에겐 시련의 시간이다. 겨울방학 동안 응축했던 정기를 모두 발현해야 버틸 수 있는 시기이다.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과 만나서 같은 반으로 1년을 만날 우리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것들이 첩첩산중인데 학생들과의 관계보다 현실적으로 더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서류다!
기본적으로 걷어야 하는 서류만 보면
1.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동의서
2. 행정정보공동이용 사전 동의서
3. 수익자부담경비 납부 신청서
4. 다자녀 입학 지원금 서류(등본, 신청서)
5. 녹색학부모회 동의서
6. 우유 급식 신청서
7. 식품 알레르기 조사서
8. 학생 응급상황관리 건강조사서
위의 내용은 걷어야 하는 기본적인 신청서다. 행정실, 급식소, 교무실, 보건실에서 필요한 서류는 제출 기한을 꼭 지켜야 해서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는 알림장이 폭탄급이다.
위의 서류와 더불어서 1학년 늘봄학교 선택형 프로그램(예전 방과후학교, 이름 왜 바뀌었는지 교사들에게 안내 전혀 없었음), 맞춤형 프로그램(1-2학년 대상으로 하는 돌봄 교실과 비슷한 개념) 안내장을 배부하고
교실에서 꼭 필요한 학습 준비물 목록 안내장, 학급 소통 어플 사용방법 안내장, 출결 관련 안내장 등 안내사항이 빼곡히 적힌 안내장을 숨쉴틈도 없이 배부한다.
보내는 것도 일이지만 걷는 것은 더 일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안내장과 신청서등을 제때에 보내주시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미신청자를 파악하여 연락한 후 서류를 받으면 각 실로 따로 보내야 한다.
두 번 걸음 하는 일이니 번거롭다. 지난주 나의 걸음수가 평소보다 훨씬 늘어나는 이유다.
교사의 입장에서 벗어나 학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보면 나는 2학년 4학년 남매의 엄마이기 때문에 서류를 2배로 똑같이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므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서류에 꼼짝없이 갇힐 수밖에 없다.
입학 이후 첫 주는 이렇게 학기 초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여러 서류들을 대강 정리했다.
서류 더미에서 조금 벗어날 때쯤은 이제 여러 가지 수업 신청을 해야 한다.
기본 교과과정(국어, 수학, 바슬즐) 및 창의적 체험학습(자율자치, 동아리, 진로)은 교과서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수업과 학년에서 운영하는 특색 교육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서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도서관 수업, 관내 교육청에 등록된 재능기부 강사들의 수업, 한국문화예술교육
진흥회에서 하는 문화예술교육, 인성교육, 민주시민 교육, 지역 박물관에서 하는 체험 프로그램 등을 학년 교육과정에 연계한 아이들 흥미를 더욱 살릴 수 있는 수업으로 신청을 해야 한다.
각종 공문들을 보고 각 학년에서 신청을 하는데, 우리 학교는 업무지원팀이 있어 대부분 업무부장님들이 연락을 주면 학년에서 협의하여 일정을 조정하여 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이다.
입학식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날 바로 가방 한가득 학습 준비물을 들고 온 아이들은 이 준비물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가방에 이런 것들이 왜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학습준비물만 그럴까?
교실, 자기 자리, 화장실, 급식소가 어디인지 하다못해 줄을 어떻게 서야 하는지도 모르는 새하얀 백지의 아이들이 교실로 밀려 들어오는데, 이 아이들보다 더 정신없는 것은 사실 선생님이다.
입학식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들을 정리했었다.
1. 제일 중요한 화장실 사용 방법 -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재밌게 알려줘야지
2. 급식소 이용 방법 - 급식소에 직접 가서 식판, 수저 위치, 잔반 처리대 방법도 알려줘야지
3. 줄 서는 방법 - 번호 순서, 키 순서, 거꾸로 번호 순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봐야지
4. 사물함 사용 방법 - 깔끔하게 학습 준비물 정리하는 방법 알려줘야지!
첫 만남의 반가움을 노래로도 불러보고, 그림책을 보면서 학교가 즐거운 이유를 같이 이야기해야지!
야심 차게 수업 준비를 하고 교실에 들어섰는데, 나보다 빨리 온 귀여운 두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문이 잠겼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따로 열쇠를 사용하지 않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앞문이 고리로 걸려 있어 그걸 풀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리만 빼면 그냥 열려요!
이렇게 말하니까 한 녀석이 대꾸하길
-선생님 교실 문이 자동문이에요?
-헉! 아니 고리만 빼고 힘을 주면 문이 열린다는 뜻이에요.
자동문까지 기대한 거니?
그렇게 교실에 들어온 아이가 한참 후에 보니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아! 운동화를 신고 있네? 실내화 안 가져왔어?
-........ 네..…..
-그렇구나. 그러면 오늘은 교실에서 운동화 신고 있고 내일은 꼭 실내화 챙겨 오세요.
이렇게 말했는데 쉬는 시간에 신발장에 가보니 떡하니 실내화가 있었다. 자기 실내화가 거기 있다는 것과 갈아 신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자기 몸 보다 훨씬 큰 가방을 들고나 22명 우리 반 아이들 중 22명이 공통적으로 묻는 내용이 이렇다.
-선생님? 가방 어디에 걸어요?
-선생님? 화장실 가도 돼요?
-선생님? 준비물 어디에 넣어요?
책상에 있는 가방 고리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책상 바깥쪽 고리에는 가방을 걸고, 안쪽 고리에는 빗자루를 걸으세요.
-화장실 가도 돼요! (화장실 센서등이 꺼져 있자) 그냥 들어가면 돼요.
-준비물은 선생님이랑 사물함 정리 방법 배우면서 정리할 거예요.
일일이 대답하기 힘든 내용은 그림으로 간단하게 표현한 PPT를 띄어 놓고
아직 시계를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시간도 타이머를 맞춰놓고 알려줬다.
화장실 지도 방법을 알려주려고
-이번 시간에는 화장실 사용 방법 알아봐요!
-네! 선생님 저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어?????? 그래! 급하면 다녀와요.
한 아이가 화장실에 가자 나머지 아이들도 화장실에 가는 줄 알고 뒤따라 가는 것이었다.
-급하지 않은 친구들은 좀 기다렸다가 사용 방법 배우고 가요!
-선생님! 저 안다요!(아는데요가 아니라 안다요!)
되돌아온 아이들과 다시 제대로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코 파는 아이 몇, 짝꿍이라 이야기하는 아이 몇, 두리번거리면서 아직도 교실을 낯설어하는 아이들이 많아 웅성거렸다.
주의집중 구호를 간단히 연습하니 아까의 웅성거림은 사라지고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다.
긴장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질문과 웅성거림은 아이들 나름의 긴장 해소 방법이다.
서류를 챙기고, 언제 해야 할지 아직 미정인 수업을 정하기 전에
뭘 가르쳐 주면 자동으로 따르기를 바라기 전에
아이 한 명 한 명 눈맞춤하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