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학부모 연수 원고를 쓰다
4월에 이야기 나왔던 유치원 학부모 연수가 다음 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유치원 초등학교 이음교육으로 인연을 맺은 유치원 선생님께서 학부모 연수를 부탁했을 때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은 매일 하고 있지만 학부모 대상 연수는 처음인데 겁도 없이 덜컥 허락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교 생활 전반을 주제로 하는 연수는 내가 직접 가르치는 1학년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니까 하면서 편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가벼운 마음은 무거워져서 어느새 연수날이 다음주가 됐다.
학교 행사뿐만 아니라 가족 행사로 빽빽했던 6월도 점점 지나가고 있어 홀가분해야 할 마음이 한 켠으로 미뤄뒀던 가장 큰 짐 때문에 이 좋은 주말도 편하지 않다. 끝냈어도 벌써 끝냈어야 하는 시간인데 아직 시작도 못하다니.
분명 시간 많았다.
저녁 먹은 후 7시 반 넘어서 준비를 하려고 컴퓨터를 켜면 수업 준비도 하고, 연수도 듣다~~~~~보면은 거짓말이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클릭 몇 번이면 시간이 벌써 잘 시간이라 제대로 된 시작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연수 내용은 사실 좀 뻔하긴 해서 찾아보고 베끼려면 좋은 자료는 많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만들어 둔 자료를 보면 훌륭한 자료이긴 한데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니라 입에 붙지도 않고 겉도는 내용에 아무리 예쁜 프레젠테이션 템플릿을 써도 억지로 꾸민 느낌이었다.
각종 법정 연수를 들었을 때 그토록 하품을 하면서 지루해했던 이유처럼 나도 그렇게 연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변찮은 강사 소개를 그럴듯한 낱말로 꾸미고, 여기저기서 캡처한 자료를 나열하고, 남은 시간은 질문을 받는 순서로, 너무 뻔한 내용이다 보니 일부러 연수를 신청해서 온 학부모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보기에 그럴듯한 자료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 동안 발표하면 끝이지만, 그렇게 하기엔 그 자리에 올 학부모들의 걱정, 불안, 기대가 무엇인지 나도 이미 경험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조금은 풀어주고 싶은 일말의 공명심도 있었나 보다.
그러면 어떻게 연수를 진행할까. 1학년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기록한 수년간의 데이터를 모아 논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자료? 한글을 몰랐던 아이가 선생님의 진정성 있는 교육 철학과 효과적인 학습 방법으로 글을 술술 읽게 되었다는 감동 스토리? 그런 스펙터클한 서사는 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현재 1학년 담임이자, 두 번의 1학년 학부모였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1학년 아이들의 3월 첫째 주 기록 중 일부를 보자.
희망 편
입학식 때 다른 친구들이 오길 기다리며 바른 자세로 앉아서 선생님을 계속 응시했음. 은은하게 미소지음.
친구들이 놀잇감을 정리할 때 같이 도와줌.
혼자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관찰함. 조용히 있다가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아서 놀았음.
협동화 만들기를 할 때 자신이 만들 것을 다 만들고 서툴지만 자기 자리도 청소했음.
학교 밥이 왜 이렇게 맛있냐고 매일 말함. 밥을 매우 맛있게 먹고 또 받으러 감. 편식 없이 고루 먹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잘 알아서 함. 바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함.
선생님 도우미가 되고 싶다고 말함. 뭐 도와줄 것 없냐고 여러 번 물었음.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면 좋아함
절망 편
2교시 수업 때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함. 눈물을 흘리며 집에 가고 싶다고 함.
교실에 오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함. 가방을 계속 메고 있음.
퀴즈에서 정답을 못 맞히니까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하기 싫은데 자꾸 하라고 해!라고 화를 냄.
만들기를 할 때 매우 천천히 함. 하기 싫다는 말을 함.
수업 시간에 해야 할 내용을 빨리 끝냄. 책상 밑에 책을 두고 봄.
줄을 설 때 자신이 제일 먼저 서지 않으면 움. 어제 친구들이 온 순서대로 줄을 서자 앞에 끼어들었음.
감동 편
아침부터 작은 손으로 가져온 선물들. 거절하기 애매한 작은 선물들에 담긴 온기.
힘든 날 문득 돌아보니 바닥에 손수 쓴 고백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1년 동안 재밌게 놀아요."
희망과 절망, 그 사이 감동 포인트.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1학년이 어려운 이유다.
초등교사들이 창원, 양산, 김해 등 선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 1학년 1년 경력은 0.5점이나 된다. 0.5점이 얼마나 큰 점수냐면 요즘 세상에 자녀 2명 이상인 교사만 받을 수 있고, 도단위 연구대회에서 입상을 해야 하는 점수다. 특히 경남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들어갈 때는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데 1학년 1년 경력은 그만큼 점수 쌓는데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기피하는 학년이 1학년이기도 하다.
나 또한 2월 업무 희망 지원서에 1학년은 올해 빼고는 최근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다. 연달아 1학년을 2번 하고, 2학년까지 하다 보니 저학년 3 연속 콤보에, 마침내 아이들도 그때 당시 5살, 7살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라 학교에서조차 내 손길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1학년에서 멀어진 지 4년.
부장 제의도 힘들었는데 하필이면 1학년이라니.
그동안 1학년을 멀리 했던 일이 한꺼번에 날아온 카드 영수증 같았다. 다행히 지나간 시간 동안 짬이 쌓여서 마음과 달리 입만 웃을 수 있었고, 이상한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을 수도 있게 됐다. 워치 소음 데시벨이 90을 넘어서 청력 손실이 올 수 있다고 수시로 떠도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덥석 물어버렸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다 풀려면 연수 2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더 궁금한 일은 브런치북에 연재헀던 이야기들을 읽으면 좋다는 홍보 아닌 홍보를 하고 본격적으로 유치원 학부모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를 해보겠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미리 참석할 학부모님들이 진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적어주셨다.
1. 한글, 수학은 어느 정도 알고 입학해야 할까요?
1학년 수업 시수는 22시간으로 주 3일은 5교시, 2일은 4교시 후 마친다. 평균적으로 국어는 6시간, 수학은 4시간으로 통합교과(나이스상으로는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11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국어는 한 학기에 총 3권의 책을 배우는데 국어 1-1가와 나, 그리고 국어활동이다.
3월 입학식 이후 바로 교과서로 배우지 않고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2주간은 입학초기 적응활동 기간으로 학교 적응 기간을 갖는다. 교재를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자체 제작 교재를 사용하거나 교육청에서 제공되는 자료, 또는 시판 교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입학 적응 기간은 4교시 후 바로 마치고, 이 기간 동안은 보통 방과후학교를 진행하지 않고 바로 하교한다. 아이들이 급식 시간 다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는 시간이다. 학교마다 이 역시 다르기는 하지만 3월 한 달간은 교문까지 하교 지도를 간다. 각 반별로 선생님과 같이 하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 흐뭇하다.
2주간의 입학초기 적응 기간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교과 교육과정을 시작하는데 교과서를 사용하여 수업을 한다. 한글은 이 교과서에 자기 이름을 쓰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국어 교과서에서 개정교육과정에서 새롭게 신설된 단원이 한글놀이 단원인데 자음과 모음을 선긋기, 색칠놀이, 말판놀이 등의 활동으로 배우게 된다. 물론 자음과 모음을 획순이 맞춰 쓰는 것도 활동에 포함된다.
1학기 국어 교육과정은 이렇듯 한글 자모음을 시작으로 낱말의 짜임, 받침 있는 글자 읽기, 여러 가지 낱말, 인사하기, 띄어 읽기 등으로 구성된다.
이미 한글을 떼고 온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실력은 아이마다 다르지만 가정이나 유치원에서 학습하고 온 내용들이 대부분 읽고 쓰는 것의 반복이었다면 1학년에서는 기초학력 책임교육을 기저로 하므로, 한글 학습의 필요성과 생활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긋기와 말놀이 동요다.
선긋기는 교과서에서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강조되어 여러 쪽에 걸쳐 나오지만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선긋기를 위해 8칸 공책을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선을 그었다.
자음과 모음의 기본인 곧은 선과 뻗은 선, 기울어진 선, 동그라미선 등을 그렸다.
모음은 공책을 길게 가로질러 여러 번 반복하여 그음으로써 큰 모음이 되게 썼는데
이 모든 것은 색연필로 한다. 색연필로 하다 보면 아름다운 색감도 보기 좋지만 연필보다 힘을 줘야 바르게 선을 그을 수 있기 때문이다.
8칸 공책을 이용하는 것도 1학년 아이들이 아무 보조선도 없이 선을 곧게 바르게 그을 수 없기 때문에 8칸 공책에 이미 그어진 선을 이용하여 선긋기를 하다 보면 손에 힘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획순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선긋기를 할 때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글자를 많이 아는지 뽐낸다.
모음 주변으로 그 모음이 들어간 여러 글자를 쓰기 때문에 낱말을 많이 아는 것 같아도 실제로 쓰라고 하면 언제 다 쓰냐 한 개만 써도 되냐 안 쓰면 안 되냐 이런 말들을 하기 일쑤다. 당연히 쓰고 싶은 만큼만 쓰라고 한 후 검사를 받는데 대부분 아이들의 선이 삐뚤빼뚤이고 힘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확도와 힘이 생기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말놀이 동요는 최승호 시인의 시에다가 그 유명한 BTS의 아버지 방시혁이 작곡한 멜로디의 짧고 재미있는 동요다. 모음을 배울 때는 원숭이, ㅋ을 배울 때는 코뿔소, 모음 ㅏ를 배울 때는 이구아나, 받침 ㅇ을 배울 때는 도롱뇽 이런 노래들을 수업 시간 처음에 반복적으로 틀어주면서 같이 부른다.
부르기만 하지 않고 그날 배울 자음과 모음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친다거나 점프를 하도록 하면 더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활동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국어 시간에 가장 많이 한 활동은 독서다.
정말 다양한 그림책들이 많은 요즘, 그림책이 더 이상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게 된 요즘에 그림책을 수업 도입활동으로 사용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독서 의지를 갖게 하였다. 학교 도서실은 신간도서들로 넘치고, 많은 학생들의 손을 타서 손때가 번들번들한 인기 있는 책들도 정말 많다.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동네에 있는 아파트 도서관, 시립도서관들은 마음만 먹으면 한걸음에 갈 수 있다.
이렇듯 학교에 꼭 한글을 정확히 모두 떼고 오지 않아도
학교에서 하는 1학기 대부분 국어 시간 동안 한글을 여러 가지 재미있는 방법으로 배우고 있으니, 가정에서는 배운 내용을 잊지 않도록 학습 상황을 파악하여 가정학습도 진행한다면 한글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수학이다. 수학 1학기 교과서 차례를 보자.
1학기 통틀어서 50까지만 배우면 된다.
이미 입학하기 전에 100까지 세고 오는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 삶이 수이기 때문에 일부러 1단원에서는 9까지만 쓰자! 하지도 않는다. 숫자 쓰는 방법은 정확하게 하지만 아이들이 수를 접할 기회는 교실 여기저기 많다. 아이들 삶에서 수는 생활이다. 알까기 하면서 친구보다 몇 개 더 땄는지 생각하면서 덧셈 뺄셈을 머리 속으로 이미 몇 번을 했다. 색종이를 가져갈 때도, 우리반 친구들 수만큼 우유를 가져왔을 때도, 수학을 삶 속에서 분리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성급히 했는지 모른다.
삶 속에서 유리된 수학은 숫자로, 학습지로, 문제지로 떨어져나와 어려움과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다.
토끼장 속에 아기 토끼를 세면서, 친구와 함께 줄넘기를 넘으면서 더 많이 넘겠다고 목청껏 수를 말할 때 이미 수학은 아이들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을 교과서와 학습지로 가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학습적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머지 생활 관련한 부분은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랜만에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동영상을 보았는데, 보는 내내 행복했다. 손짓과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의 말을 그때는 마음이 너무 바빠 잘 못 들었는데, 이제서야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그리워졌다.
우리 아이들의 1학년은 이미 지나갔다.
우리 교실 내 학생들의 1학년은 지금이다.
지금 그 아이들의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또 잊을 뻔했다.
진짜 가르쳐야할 것은 이미 아이들이 갖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손짓 눈빛으로 말하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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