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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미리 보기(2)

유치원 학부모 연수 원고를 쓰다

by 다시

이번에는 생활면이다.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난감한 것들이 배변 실수 관련한 내용이다.

아이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기자기했던 유아용 어린이용 변기가 있던 유치원에 비해 훨씬 성인들도 같이 써야 하는 화장실을 이용하자면 아무래도 실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학년을 선생님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도 화장실 문제도 한몫할 것이다. 학기 초 여벌 옷을 사물함에 준비해 놓으라고 하였지만 사물함이 비좁아서 한 두 명씩 이미 여벌 옷은 집에 가져간 상황이다. 우리 반에 소변 실수를 가끔 하는 아이가 있어서 아이 학부모님께서는 미리 사물함에 갖다 놓으라고 잘 챙겨주신다. 화장실 실수보다는 용변을 보러 가는데 친구와 같이 들어간다거나, 볼일을 보고 난 후 물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화장실 쪽에서 웅성거리면 거의 만 프로 물을 내리지 않아 생기는 일이다. 이미 유치원까지 다니면서 뒤처리는 잘 배웠을 테니까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일 보고 물 잘 내리는 일! 친구와 같이 들어가지 않는 것 정도만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 장난은 저학년뿐만 아니라 고학년들도 많이 하는 것들인데,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 뿌리고 놀기! 또는 화장지 물에 적셔서 천장에 붙여 놓기 등 화장실은 선생님 눈을 피하기 좋은 장소라서 그런지 장난이 나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둘째 혼자 등하교 연습하기

요즘 초등학교는 집 근처로 배정을 받기 때문에 등하교가 스스로 가능한 거리이다. 그리고 학교 주변이 거의 주정차 금지 구역이라 부모님께서 아이를 학교 정문에 차를 태워서 내려주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다. 학교에 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도 정문 멀찍이 떨어져서 내려야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대부분 걸어 다니지만 학교까지 가는 길이 부모의 눈에 험난해 보이기 마련이다. 왜 그렇게 횡단보도는 많고, 차들은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지. 어린이보호구역 규정 속도가 30이 된 지도 꽤 되었지만, 학부모 눈에는 그 30조차 빠르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뉴스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꼭 보도하면서 불안감은 가중된 것 같다.

1학년 아이들이 커다란 가방을 뒤뚱거리면서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은 대견 한 마음도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일찌감치 노인 일자리 또는 학부모회 등을 활용하여 안전한 등하굣길을 조성하기 위해 애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너무 빠르다. 초록 불로 바뀐 후 약 30초를 알뜰하게 쓴다. 저 멀리서 초록 불로 바뀌자마자 달린다. 횡단보도까지 달려가면 남은 시간 10초 또는 그보다 작아도 뛰어간다. 당연히 좌우 살펴보지 않는다.


유치원 때부터 줄기차게 배운 횡단보도 건너기 4원칙

‘선다 – 멈춘다 – 좌우 살펴본다 – 눈 마주치면서 건넌다’


지키는 아이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거의 없다. 핸드폰까지 사용하면서 걷는 아이들이 생긴다. 학교 갈 때는 아니더라도 하교 후 자전거, 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질주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학교 앞 횡단보도는 엑스자로 변화되는 추세고, 바닥신호등까지 설치하는데 학생들의 규칙 준수는 오히려 점점 저하되는 것 같아 등굣길을 볼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세 번째 소근육 힘 기르기

고사리만 한 손이라고 할 때 고사리를 직접 꺾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채 펴지지 않고 말린 동글동글한 고사리, 솜털이 가득해서 말캉거리는 고사리가 마치 아이들의 손 같다. 어찌 그리도 찰떡같은 비유를 할 수 있었는지 조상님들은 대단하다.

아이들 손은 힘이 없다. 말캉하고 보드랍다.

그 작은 손으로 가위질도 하고, 풀칠도 해야 하고, 색연필 사인펜 집어서 색칠도 해야 한다. 연필은 기본이고, 틀리는 글자를 왜 그렇게 많은지 지우개질도 벅찰만하다.


학교에서 하는 것들은 모두 손으로 한다. 손가락 하나하나 세심한 근육들의 앙상블로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이다. 뇌가 명령을 내리고, 손은 명령을 수행한다. 이로서 뇌는 더욱 발달하고, 손은 미세한 힘조절을 가능하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만능 손이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1학년은 많은 활동을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는 없다. 여러 번 말해도 연필은 가운데로 잡고, 가위는 선이 모두 잘려나가거나 뭉툭하게 잘라 버린다. 종이접기를 할 때도 선을 맞춰 접기보다 마음만 앞서서 빨리 접다 보면 원하는 모양의 종이접기도 안된다. 의도와 달리 제대로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때도 많다.


소근육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엔 정말 섬세하고, 세밀한 근육과 힘조절의 강약이 필요한 종합 예술을 해야 한다. 만지고, 쓰고, 그리고, 칠하고, 두드리고, 문지르고. 고사리손이 굳은살로 변해가는 것이 안쓰럽긴 해도 배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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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기다리기

자기 생각 한 번 말해볼 사람?

교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2명의 손이 올라간다.

분명 여러 번 발표를 시켰는데 여전히 22명이다.

한 번 발표한 아이는 일부러 큰소리로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표현이 확실한 이 아이들이 너무 좋지만 나는 귀가 두 개뿐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말을 하고 볼일이 끝나지만 교사는 그 아이의 말이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집중을 시켜야 하고, 피드백을 해야 하고, 다음 아이를 지목해야 하며, 지목되지 못한 아이가 실망하여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지 봐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신경을 써도 다른 친구가 말할 때는 보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느라 애써 발표 기회를 기다린 친구는 기다린 보람도 없이 여러 아이들의 소음 속에 파묻혀 제대로 발표할 기회도 잃는다.


교사는 여러 번 말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말을 하세요.

선생님과 동시에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이들도 어쩔 수 없다.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해야 할 말을 기어이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자 본능이다.

오히려 해야 할 말을 아끼는 아이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

자신이 선택되지 않아 속상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말만 하고, 자신의 행동만 이어가면 단체 생활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은 살다 보면 차차 알게 되지만, 진짜 포식자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침잠하고, 모든 생명들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방심하는 그 순간을 노려 먹이를 차지하지 않는가.

진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여기 있음을 바른 자세와, 다른 친구의 말을 귀담아듣는 태도로 보여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 잘 안다. 그게 된다면 1학년이 아니다.

그냥 원래 안 되는 것이다. 1학년이니까...

그래도 10번 말하다가도 1번은 기다려 주는 것. 그것 정도는 노력하도록 하자.

이 정도인데 수업이 될까 싶지만 수업은 진행이 된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하는 힘을 가진 아이가 교실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먼저 시작한다.

이거 꼭 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친구 옆에서 해야지! 이거 재밌어!라고 말한다.

인내, 참을성이라는 듣기에도 노력이 너무너무 필요한 말을 가뿐히 건너뛰고 그냥 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자율성 없는 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의욕과 목적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과가 항상 좋지는 않다. 너무 빨리 하면 대충 했다는 오해도 사기도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가진 공통적인 특성은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결과는 안 좋아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리라는 자기 믿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태도. 이런 것이 진짜 자존감이 아닐까?

그럴 때 보면 좋은 그림책은 틀려도 괜찮아!이다.

1학년 필수 그림책이지만 전 학년에서 봐도 좋다.

어른이 봐도 너무 좋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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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공부라고 말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힘들단다.

그럴 것 같다.

학교에 8시 반에 와서 보통 1시 또는 2시에 하교하고 바로 집에 가는 아이는 없다. 못해서 방과 후 수업 1-2개, 1학년이니까 돌봄 교실도 들르고, 돌봄 교실에 같은 스케줄이 없는 아이들은 태권도 피아노까지 가고, 더불어 영어까지 하게 되면 얼마나 바쁠지.. 우리 아들도 일주일에 방과 후 수업 5개 듣고, 돌봄 교실 하면 엄마랑 같이 퇴근한다.

놀고 싶은데 놀 수 없단다. 어른 입장에서 보면 뭐 얼마나 공부를 한다고 저런 말을 하나 싶지만 나 역시 여전히 제일 하기 싫은 것이 공부다.


아무튼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그 공부를 하려면 일단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수업 시간은 너무 길고, 쉬는 시간은 너무 짧으니 그 시간 지키는 것이 힘들다.

자연스럽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도 어렵다.

짧은 점심시간, 쉬는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복도, 교실을 종횡무진 달려야 한다. 우리 학교는 체육관, 운동장도 1학년들보다 고학년에게 배정되어 있어 아이들이 진짜 달릴 공간이 부족하다.

놀 시간도 부족한데 정리를 언제 하겠는가?


서랍, 사물함은 항상 공간 부족.

가방은 열려 있고, 주인 없는 연필, 풀, 지우개는 교실 앞 분실물 바구니 안에 가득하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하다가도 한 번은 정신 번쩍 차리게 혼을 내기도 한다. 자기 자리 청소와 정리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교실에서는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사물함 서랍 정리는 온전히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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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학부모님들께서 궁금해하셨다는 교우 관계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아이들이 참을성이 많이 없을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기다리기 싫은 법도 한데 친구가 정말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멈춘다.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지금 바빠 보이면 조금 있다 괜찮은지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선생님한테 뭘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선생님이 조금 이따 오라고 하면 또 기다릴 수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좁지만 깊은 계곡 같기도 하다. 그 안에서 소용돌이도 인다.

이렇게 속이 깊은 아이들이 사실은 더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기다려주는 아이 옆엔 늦더라도 알아봐 주는 친구가 꼭 생긴다.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아이는 곁에 같은 성향의, 똑같은 아이가 생긴다.

끝까지 가는 것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친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친구다.


교우 관계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학교 폭력 문제까지 번지면 2차전으로 학부모 분쟁으로 번지는 것은 논외로 한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을 관찰한다. 온순한 눈으로 천천히 파악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떼 부리는 아이, 방해하는 아이 기억해 둔다. 몇 번은 그 아이와 놀더라도, 유치원에서 알았던 아이라서 처음에는 같이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와 결이 같은 아이를 찾는다.

레이더 같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관계는 아이들도 벌써 느낀다.


잘 놀았어?

누구랑 놀았어?

뭐 하고 놀았어?

재밌었어?

친구 관계는 평가하지 않는다는 조선미 교수의 말처럼 아이들의 관계는 금방 휩쓸려버리는 모래성 같지만, 모래성을 지을 때 단단한 자갈을 받쳐둔 곳은 파도가 와도 버티는 것 같다.


아이들은 관찰하고 실행한다.

어울려 놀다가도 수업 시간이면 귀신같이 알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

같이 노는 것 같지만 아직은 혼자 노는 아이.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같이 놀다가도 친구가 마음에 안 맞는 행동을 하면 바로 이르러 오는 아이

그럴 때 교사는 다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일이 아니면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일희일비할 수는 없고, 아이들도 그저 자기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러 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겪어가면서 결국 결이 맞는 아이를 찾게 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알려주는 것이다. 절대 다른 친구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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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621_204546858.png 유퀴즈 일부 발췌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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