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매일 잔소리하는 것
4교시 수업을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부랴부랴 보냈다. 선생님 보고 싶을 거라고 우리 반 아들내미 한 명이 계속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방과 후 교실에 가지 않았는데 어서 가라고 보내자 이번엔 방과 후 교실 준비물을 안 가져갔다며 교실에 온 아이도 보였다. 이제 다 보냈나 싶었는데 그제야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후다닥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겨우 1시.
마지막 아이까지 보내고 나자 내 영혼도 탈출하기 직전, 간신히 부여잡고 교실 정리를 했다.
분명히 청소를 했는데 아이들이 나가고 간 책상, 의자 밑에는 꼭 색종이, 공기알, 바둑돌, 연필 지우개 등이 떨어져 있다. 통 한가득 들어있던 공기알은 어느새 반이나 집을 나가버렸고, 그릇이 넘치게 있던 흑돌 백돌 바둑돌은 눈으로도 셀 수 있을 만큼 줄어 있다. 분명 사물함, 책장 밑에 들어있을 테지만 그걸 옮겨가며 꺼낼 용기도, 시간도 없어 넘어가기로 한다.
교실정리를 대강 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퇴근? 아니 출장길에 올랐다.
오늘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내실 있는 이음교육을 위한 컨설팅이 있었다.
이음교육은 경남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유치원 - 초등학교 연계 프로그램으로 유치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기 위해 서로의 교육과정을 공유하고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동에 위치한 단설 유치원과 연계를 맺은 후 1학기에는 컨설팅과 교사 협의회를 통해 각급 교육과정의 이해를 높이고, 2학기에는 실제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오늘은 그 첫 활동으로 우초 이음 컨설팅 경험이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효과적인 프로그램 운영 방법을 배우고,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예상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차에서 좀 있다가 나와보니 오늘 방문할 유치원은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단설 유치원으로 학급수도 다른 유치원보다 많고, 시설도 너무 좋았다. 실내 놀이터, 요리실, 시청각실(영화를 본다고 함), 창의놀이실(레고 잔뜩), 미술실 등등 우리 학교도 나름 개교 10년의 젊은 학교였지만, 벌써 군데군데 세월이 묻어났고, 1500명가량의 학생들을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하였으며, 무엇보다 놀이 공간이 많이 없어서 유치원의 다양한 놀이 공간을 보니 부러움이 샘솟았다.
텃밭에는 오이, 상추, 토마토가 사랑스럽게 자라고 아이들 발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마한 의자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인형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작 시간이 되지 않아 실내로 들어가기 민망하여 놀이터에서 쭈뼛대자 드르륵 창문이 열리더니 묻는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예. 오늘 컨설팅 때문에요.
-아! **초 선생님! 들어오세요.
활달한 목소리의 원장 선생님께서 이끄는 대로 실내로 들어가니 밖에서 본 것보다 더 깔끔했다. 처음 본 원장 선생님과의 대화는,, 내가 이제 나이가 들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스스럼없이 이어졌다.
말주변 없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던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물어보는 말에 덕지덕지 살을 이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는 모습말이다. 잠깐 원장실에서 숨을 돌리고, 회의에 들어갔다.
오늘 회의의 목적은 너무 명료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이음교육 계획을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까였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원장, 원감, 교무부장 선생님에 담임 선생님 4분까지 총 7분이 참석한데 반해 초등학교는 오로지 나뿐이어서 이음교육에 대한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온도차가 드러났다.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각자 수립한 교육과정 내에서 유치원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잠깐이지만 미리 경험해 봄으로써 다음 해 입학했을 때 1학년 과정에 좀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는 둘 다 공감하는 바였다.
한정된 예산과 서로 거리가 있는 두 기관이 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던 차에 통영교육지원청에서 오신 컨설턴트 선생님이 본인이 유초이음 했던 경험과, 컨설팅 갔던 학교 사례를 말씀해 줌으로써 조금 가닥이 잡혔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 차례가 왔다.
초등학교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유치원에서 미리 교육받고 와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셨다.
내가 주가 되어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그냥 참석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앉아 있던 차에 기습 질문을 받고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꽤 빠르게 답이 정리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생각하면 되니까.
바로 오늘도 아이들과 입씨름을 벌였던 일들. 아이들에게 매일 하는 잔소리.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로 인해 초등학교에서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알면 유치원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
교실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크게 생활 부분과 학습 부분에서 이야기하자면.
생활 부분
1. 교사와 동시에 말하는 아이들 - 경청하기
22명 우리 반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극적,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교사의 질문에 다른 친구가 이미 한 답과 같더라도 자기 입으로 꼭 말을 해야 한다. 22명 가까운 아이들이 손을 들 때 교사가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크게 실망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자기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며 꼭 말을 해야 하는 아이들. 획일된 정답만 말하지 않고 의외의 생각, 톡톡 튀는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어찌 기특하지 않겠냐만은.... 교사, 친구가 말할 때는 귀담아듣는 태도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교사가 발표 기회를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친구가 말하는 것을 귀담아들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는 것도 발표의 방법이다. 기어코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꺼내는 것만이 발표의 전부는 아니다.
2. 아이들끼리의 다툼 - 서로 이야기하기(의사소통)
1학년 교실에선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 시간 할 것 없이 아이들끼리의 다툼이 잦다. 어른의 입장에서 이런 걸로 싸운다고? 이런 걸로 이른다고? 할 법한 일도 많지만 어디 감정 상하는데 크고 작은 이유가 있을까. 내 기분 상하면 그것으로 참기 힘든 것을.. 아이들도 오죽하겠는가.
예를 들어 친구와 알까기를 하고 있다. 이때 이런 일들로 다툰다.
-친구가 다른 친구만 응원한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모아 튕기는데 친구는 손가락 하나로 툭툭 친다.
-놀다가 다른 친구와 논다면서 말도 안 하고 간다.
-뒷정리를 하지 않고 가버린다.
-친구가 나랑 논다고 했는데 다른 친구랑 놀고 있다 등등
알까기 하나에도 이렇게 다툼 소지가 많다는 예이다.
이 모든 일을 해당 친구와 대화 해결이 당연히 어렵다. 안된다. 교사에게 무조건 달려오는 것이다. 개입을 바라던지 그저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는 이유던지.
3. 책상 위, 서랍, 사물함 정리 및 학용품 정리
1학년 학부모님들이 제일 먼저 1학년이 되는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것들은 준비물일 것이다. 색색의 색연필 사인펜, 쓰기 좋은 연필, 지우개. 기능도 디자인도 가지각색이 다양한 학용품들을 보자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학용품들은 아이들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최소 하루 안에 사라질 수도 있다.
만능 점보 지우개가 최고였던 예전 시절에 비해 요즘은 드르륵드르륵 슬라이딩 지우개도 있다는 사실.
수업 시간 내내 드르륵 드르럭거리다가 플라스틱 케이스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시꺼멓게 지우개똥만 만들다가 산산이 잘려서 가루가 되어버린다.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지우개똥을 만들어서 수업 시간 내내 까만 정체불명의 동그라미를 굴리고 놀았던 적 말이다.
연필은 아무리 이름표를 붙여 놓아도 교실 바닥에 데굴거리는 것이 몇 자루나 된다.
색연필은 심한 경우 색연필 심을 꺼내서 똑똑 분질러 놓는다.
그러고 나서 꼭 써야 할 때 그 색연필이 없다고 말한다.
풀은 어떨까? 하얀 딱풀을 돌돌 돌려 쓴 후 그대로 뚜껑을 덮어버린다. 그러면 뚜껑과 본체 주변에 풀이 떡져있다. 가위는 꼭 필요할 때 써야 하는데, 아까 말했던 지우개를 자르느라 늘 손에 붙어 있다.
이런 학용품들이 좁은 책상 위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그걸 치우라고 몇 번을 말해도 치우는 아이들은 늘 깔끔.. 안 그런 학생들은 서랍 안에 학습지와 학용품과 교과서가 뒤엉켜 있어도 스스로는 불편하지 않다.
오로지 그걸 보는 교사의 눈이 어지러울 뿐.
아직 1학년임을 감안하면 이제 배우면 되니까, 힘들면 도와줘도 되고, 부모님들도 학용품 잘 챙겨주고 계시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이런 학생들은 고학년이 되어도 그런 습관을 고치기 힘들다.
가방엔 언제 풀었는지 모르는 학습지가 가방 맨 밑바닥에 구겨져 있고, 학기 초 반짝하게 닦아 두었던 책상 위는 네임펜 자국, 색연필 자국, 풀 자국으로 혼미하다.그렇게 물티슈로 닦으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20세기 사람인 내가 21세기 미래의 우리 반 아이들을너무 가둬두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많지만 이것들이 안되면 학습이 어려운 것을 어찌하랴.
학습 부분도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자.
저출산 시대에 유치원은 그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의 단설 유치원이라도 총원을 채우기 어렵고, 이마저도 사립 유치원으로 많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사립 유치원에서는 영어, 수학, 한글을 미리 수업하는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은 이런 것들을 미리 가르쳐 주는 사립 유치원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도 7살 반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을 굳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원을 옮기는 모험을 하지 않고, 대신 어린이집에서도 위와 같은 영어, 한글, 수학 학습을 진행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던 2-4년 전에도 벌써 단계별 교재를 활용하여 한글, 수학을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은 더 치열하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미리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것을 지적 호기심 자극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선행의 위험성이나, 적기 학습만이 맞다는 것이 아니다.
선긋기를 예로 들어 보자.
1학년 입학초기 적응기간에도 아이들 손 힘을 기르기 위한 선긋기를 많이 하지만 본격적으로 국어 수업에 들어가도 바로 글자를 배우지 않고 선긋기를 먼저 한다.
선긋기 활동도 참 다양한 것이 많다. 곧은 선, 굽은 선, 기울어진 선, 동그라미선 등등
연필은 선이 얇기 때문에 선의 움직임을 더 잘 보기 위해 색연필을 사용한다.
색연필을 꼭 잡고 원하는 지점까지 선을 지속하여 긋는 활동. 글씨 쓰기에 핵심이다.
아래 그림은 교사가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명하게 색을 내기 힘들어하고, 선긋기가 아니라 색을 칠하거나, 선에 힘이 없어 마지막까지 선이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다 했다는 말에 가서 검사를 하면 손에 힘이 없는 아이들 대부분이 활동 목표를 도달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올해 초 7세 고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교육 열풍이 그 도를 넘었다며 연일 뉴스에서 보도를 했던 터라 나는 우리 반 아이들도 그렇게 공부하는 아이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손에 힘이 없다.
종이접기를 해도 선에 맞춰 접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직 손과 뇌의 협응이 최대로 발달한 것은 아니므로 많이 사용하는 학습을 통해 발달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린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아이들 손은 진짜 고사리손이다. 금세 지치고 힘들어한다.
유치원 학부모였고, 지금은 초등학생 학부모인 내가 봐도 제일 중요한 것들은
경청, 정리, 의사소통과 같은 기본학습 습관과 태도이다.
우리 아들을 예로 들어보자.
2학년인 아이들은 내가 급작스럽게 가방을 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도 가방을 열어보면 위의 내가 열거했던 가방 상태와 같다. 언제 풀었는지 모르는 학습지, 가방 가득한 색종이 접기, 필통에 언제 깎았을지 모르는 연필 등.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교실에서의 모습은 또 어떨지 걱정이다.
아침마다 책상 위 물티슈로 닦고, 사물함 정리하라고 이야기하면 건성으로 대답하기 일쑤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내 말이 정답도 아닐 수 있다.
다만 그런 것들이 되지 않는 교실은 분명 혼란스럽고, 혼란 위에 학습은 어렵지 않을까..
유치원과의 컨설팅에서 내 의견을 말했을 때 유치원 선생님들은 매우 공감하셨지만
이런 말들을 유치원 학부모님들에게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학습 성과들이 아니니까.
영어 단어를 몇 개 외우고,
한글 받아쓰기를 백 점 맞는 것보다
학습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스스로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 계획하고 실천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