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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 우리 반 아이가 산다

우리 교실엔 비밀이 없다

by 다시

제목 그대로이다. 위층에 우리 반 아이가 산다.

옆집엔 작년 옆반 아이가 산다.

아래아랫집은 작년 우리 반 아이가 산다.

옆동에도 우리 반 아이가 산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이웃사촌이다.


같은 동네에서 10년을 살고 있고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발생한 일이다.

학군지 근무를 기피하는 선생님들도 많지만, 출퇴근 빠른 것이 너무 매력적이라 이 동네에서만 10년째, 학교도 같은 동에서 맴돌고 있는 중이다. 보통 걸어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할 때 우리 반 아이들 보는 것도 예사고, 퇴근할 때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인사를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


위층에 살고 있는 우리 반 아이는 바로 윗 집은 아니고, 바로 윗집의 옆집이라 그나마 좀 괜찮은 편이지만 아무튼 우리 반 학생이 너무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침 출근을 하려고, 문을 나서는데 가방을 찾던 아이들이 소리를 빽 지른다.


-엄마! 먼저 가지 마! 엘리베이터 버튼 내가 누를 거야.

하지만 이미 누른 상황. 아이는 재미있는 것을 못하게 됐다면서 엄마 탓을 한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을 나무라고 있는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있다. 하얗고 가느다란 우리 반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어! **아, 안녕?

-엄마! 왜 착한 척 해?

아이를 꾸짖을 때의 목소리와 우리 반 아이를 만났을 때 목소리가 다르니 나에게 하는 소리다.

이 역시 너무 버릇없는 말이어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에 아들과 나 사이의 대화는 칼의 노래였다.


-띵동!

엘리베이터는 로비층에 멈추었고 우리 모자 때문에 어색해진 공기가 그제야 풀어졌다. 우리 반 아이를 비롯하여 이웃 주빈들이 모두 내리고 난 후 나는 천천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죄송해요! 한마디만 하고 뒤통수를 보이며 쌩하니 가버린다.


이런 실랑이가 있는 날이면 학교로 들어가는 짧은 출근길이 천리길이다.

내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어린 영혼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의 한마디에 가슴이 쩍쩍 갈라져선 20명이 넘는 아이들의 수많은 질문과 관심을 어떻게 보듬겠다고 교실로 걸어가는지 출근길이 먹먹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온 윗집 아이는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너무 시끄러웠어요.

-음... 미안해.

-선생님 아들이랑 싸웠어요?

-어? 싸웠다기보다 그 아이가 버릇없이 행동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우리 엄마랑 형도 맨날 싸우는데, 선생님도 그렇네요?

-허허허허허허허허허(ㅜㅜㅜㅜㅜㅜ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우리 집 내밀한 가정사가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것도 민망하지만 선생님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급기야 엄마처럼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어 팔을 문지르거나, 물어보면 말대꾸를 하는 녀석, 쉬는 시간마다 사랑의 쪽지를 보내고, 온몸으로 교실 바닥을 뒹구는 아이들까지 교실인지 집인지 나도 헷갈린다.


윗집 아이는 몇 년 동안 오후 퇴근길에 자주 봤었다. 자신과 똑닮은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가 어느덧 커서 우리 교실로 들어온 것이다. 네다섯살 아가였을 땐 할아버지 뒤에 숨어 눈도 못 마주치고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여전히 작고 올망졸망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친밀감을 느끼는지 나에게 도마뱀 이야기, 학원 이야기,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해준다.


윗집 사는 우리 반 아이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붙잡고 전해준다.

훗날 미래의 기자가 될 아이가 분명하다.

사실에 의견을 더해 생생한 사건을 전달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선생님 아들하고 싸웠어!


이에 질세라 다른 아이들은 또 자신만 알고 있던 비밀을 공개한다.


- 저 선생님 아들 이름 알아요!

- 선생님 아들 돌봄 교실 다니죠?

- 선생님 아들 로봇 과학 다니죠?


우리 교실엔 비밀이 없다.

행동에 만사 조심하자.

미래의 기자들이 연일 단독 보도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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