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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건네는 인사

by 다시

열흘이나 되던 긴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는 월요일. 평소의 월요일도 힘들었지만 오늘 학교로 내딛는 발걸음은 유달리 무거웠다. 추석동안 마음 편하게 먹고 놀며 즐긴 시간이 길었던 만큼 교실로 들어섰을 때 머릿속은 오늘 해야 할 일로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래도 일단 아이들과 인사는 해야지.

오랜만에 본 아이들은 교실 문 앞에서부터 내게로 달려와 인사한다.


우리 반의 아침 인사는 특별하다.

아이가 교실 문을 들어서먼 나는 묻는다.

"몇 번 인사?"

인사 방법이 무려 6가지나 있다.

개별로 6 가지고, 2-3개씩 조합하여 새로운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어 아침 인사가 꽤나 진지하다.


첫 번째 인사,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하기

-안녕하세요? 배꼽 손하고 선생님 앞까지 와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자기 자리먼저 가는 아이들도 처음엔 많았지만 지금은 가방을 두고 다시 나와서 인사한다. 제일 편하고 간단한 인사다.


두 번째 인사, 악수하기

-서로 손을 내밀고 맞잡은 후 여러 번 인사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온 아이들은 손바닥까지 촉촉하다.


세 번째 인사, 하이파이브하기

-오른손을 힘껏 내밀며 짝! 소리가 나도록 부딪히는 인사다. 대부분 살짝 부딪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 손을 부딪치는 바람에 움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귀여운 아이는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갑자기 내 손바닥을 간질이며 '해파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입이 헤벌어지게 함박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가 학기 초반에 했던 인사방법이고 어느 정도 인사가 늘었다 싶어 세 가지를 더 추가했다.


네 번째 인사, 머리 위로 하트!

-여학생들이 많이 하는 인사다. 짧은 팔을 들어 손가락 끝을 정수리에 딱 꽂으며 무거운 가방이 흘러내려도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가 진짜 하트 모양이다.


다섯째 인사, 눈썹 위로 경례하며 충성!

-남학생들이 많이 하는 인사다. 어느 순간 매일 1번 인사만 하던 예의 바른 남학생들 몇 명이 충성! 을 외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국방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여섯째 다정한 포옹으로 인사하기.

-손으로 6번 그림을 마구마구 두드리며 아침마다 포옹을 나누는 몇 명의 아이들 덕분에 아침에 한숨을 돌린다. 이 아이들은 갈 때도 기다렸다가 이렇게 꼭 안아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번외로 학교 끝났는데 인사하러 오기! 교실 앞문 살짝 열고 선생님 있는지 확인하기! 선생님 오는지 안 오는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기! 아무튼 다양한 인사 방법 중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사는 여전히 1번이다. 아침마다 바쁜 것은 선생님만은 아니다. 지난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얼굴로 가볍게 교실 문을 통과하는 아이들도 있고, 머리가 하늘로 솟구친 것으로 보아 지난밤에 어마어마하게 요동쳤을 아이의 꿈자리가 걸음마다 느껴질 만큼 무겁게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땐 아이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앞까지 가서 내가 먼저 인사한다. 물론 늦게 오는 아이도 한 둘 있어서 이 녀석들은 들릴락 말랑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자리로 스리슬쩍 앉아버린다.


6가지 인사 방법을 모두 통달한 아이는 1번부터 6번까지 인사를 아침마다 모두 해야만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약식으로 하고 싶은 아이는 교사 앞까지 나오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한다.


"몇 번 인사?"


1번부터 6번까지, 뭐가 더 좋고 뭐가 더 어색한지를 떠나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시간은 채 5초도 되지 않는다. 이런 인사조차 없다면 선생님과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할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시작한 우리 반 인사는 이제 아침에 없어서는 안 될 풍경이다.

금목서 나무 두 그루에서 날아든 향기가 반가웠다.

그런 우리 반 풍경에 오늘 향기가 하나 더 했다.

아침에 교실을 들어섰을 때 열흘동안 묵었던 공기가 답답하여 창문을 드르륵 모두 열었더니 먼지 낀 방충망 사이로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교실로 굽이치며 들어왔다. 순식간에 바람과 섞여 교실 한 바퀴를 돌자 케케묵은 냄새는 금방 사라지고 진한 가을이 교실로 들어왔다. 비가 올 듯 말 듯 어두컴컴한 하늘이 절로 얼굴까지 흐리게 만든 날이었지만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저희도 모르는 채 향긋한 냄새를 맡으러 코를 벌름거렸다.



그리고 꽃들이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교실을 가득 메운 이 향기는 바로 금목서입니다.

가지마다 댕글댕글 매달린 꽃들이 우리반 아이들 같이 참 작고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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