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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20. 2022

빨갛고 빨간

빨간 앵두가 가지에 댕글댕글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새콤하고 달지만 싱거운 앵두의 맛을.
하나만 먹기에 아쉬워서 손바닥 가득 열매를 따서 한 입에 털어 넣어야 싱겁지 않고 과즙을 가득 느낄 수 있다. 열매 크기에 비해 씨가 크고 단단해서 먹을 때마다 뱉어내야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계속 먹을 수 있다.


지난 5월에 장수에 갔을 때 집 뒷마당에 있는 앵두나무에 초록 열매들이 가득 달린 것을 보고 다음에 왔을 때는 꼭 아이들과 따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왔을 때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난 딸과 같이 앵두를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뒷마당에 갔을 때 앵두는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더 빨갛고 탐스럽게 가지 가득 매달려 있었다.  

키가 작은 아이의 손에도 충분히 닿을 만큼 가지는 아래까지 풍성히 자랐고 초록 잎 사이사이마다 반짝이는 빨간 구슬 같은 열매가 가득이었다.

앵두가 한창 익을 시기를 지나서 오거나 그전에 왔기 때문에 아이는 앵두 맛을 몰랐다.

이번에 처음으로 앵두를 먹을 수 있었다.

제 손으로 열매를 따서 하나를 입에 넣더니 아이는 갸우뚱했다. 아이는 시거나 새콤한 것을 잘 먹지 않는다.


"한 개만 먹으면 맛없어. 다섯 개 정도 따서 먹어봐."

"씨가 너무 커. 맛이 이상해."

"씨가 좀 크지만 입 속에서 굴려서 열매만 먹고 씨는 툭 뱉으면 되는 거야."


아이는 한두 번 얼굴을 찌푸리더니 점차 맛에 익숙해졌는지 아이가 서 있는 자리에는 분홍의 앵두 씨가 살살 흩어져 있다. 조금 있다 아빠랑 같이 나온 둘째도 앵두를 보고 누가 먹으라고 하기도 전에 손에 가득 따서 입에 넣는다. 씨 뱉는 것이 좀 번거로웠는지 몇 개는 삼키다가 컥컥 거리기도 했지만 더 큰 알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가득 따먹었다.


6월 중순.

여름의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금방 머리 위를 후끈하게 데울 수 있을 열기.

꿉꿉한 습기를 머금고 있어 조만간 장마가 시작될 듯이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대기는 뜨거운 6월

그 자락에 앵두는 빨갛고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 빛을 점차 잃고 가지에 쪼글쪼글 매달리거나 떨어져 버린다.


예전 우리 시골집에는 앵두나무가 없었다. 대신 동네 어귀마다 이웃집 마당에 한 그루씩 앵두나무가 있어서 쉽게 맛볼 수 있었다.

바로 아랫집 담벼락 밑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어서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 한 주먹씩 따먹곤 했다.

인정 많았던 아랫집 할머니가 우리 남매에게 앵두 따먹고 가라고 말씀하실 때면 부엌에서 국그릇 하나씩 들고 가서 그릇 가득 따오곤 했다.

그러다가 아빠가 뒷마당에 앵두나무를 심으셨고 심은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열매가 영글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무에 있는 앵두를 모두 따오라고 시켜서 동생과 따러 갔다. 작은 열매 탓에 일일이 따기 번거로웠는지 손으로 훑으며 털어서 땄다. 그러다 보면 바구니에 담는 것보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많았지만 엄마는 앵두를 깨끗하게 씻어 잼을 만들어주셨다.

달달하고 시큼했다.

냄비 밑에 눌어붙어 조금 탄 내가 나기도 했지만 빨갛기보다 거의 거무스름한 앵두 잼은 빵에 발라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동네 친구, 언니, 동생들과 같이 놀면서 그 집 마당 구석에 있는 열매를 따 먹던 기억.

일일이 따먹기 귀찮아 가지 하나를 툭 꺾어 손으로 훑다 보면 작은 가시에 찔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맛있었던 기억.

분홍 꽃이 떨어진 자리마다 다글다글 달려있던 초록 열매를 보며 빨리 부풀기를 바라며  연한 분홍빛에서 주홍빛으로 그러다가 빨갛고 빨간 열매로 자랐을 때 한 손 가득 따던 기억.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열매는 따스했다.
아이와 같이 열매를 따면서 딸려 나온 예전의 기억들하나같이 다 촌스럽지만 촌스러워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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