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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13. 2022

도망치고, 찾고

<그림책 도망치고, 찾고 리뷰> 나는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이 글은 그림책 리뷰입니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그림책은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나는 정말 이 작가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짤막한 팔과 다리, 무성의한 듯 대담한 선, 당황스럽게 많은 여백, 정말 쥐어박고 싶은 실감 나는 표정 등등의 이유가 많지만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상상력이다.

이 작가의 그림책을 보면 나도 덩달아 상상하며 둥실둥실 날아가게 된다.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애정 하는 책인 <이게 정말 사과일까>와 <이게 정말 나일까>

오줌이 자주 찔끔 새는 아이의 호기심을 담은 <오줌이 찔끔>

읽다가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 생각에 웃다 울었던 <이게 정말 천국일까>

달걀 하나로 무수히 많은 요리를 생각해내는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뭐든지 다 있지만 베스트셀러 되는 방법 가르쳐주는 책만 없는 <있으려나 서점>

맨날 땀 흘리는 우리 딸 생각나서 빌린 <더우면 벗으면 되지>


작가의 모든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면 꼭 들춰보고 킥킥거리면서 두고두고 읽고 싶어 진다. 이번에 읽은 <도망치고, 찾고>도, 처음 보는 이 작고 앙증맞은 책을 보고 안 빌려올 수 없었다.

그냥 넘겨 보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곰곰 되새기며 읽다 보면 나의 세계로 들어간다.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도망쳤고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책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어.'로 시작한다.

그중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히고 못된 말을 내뱉는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나의 다리는 위험을 감지할 때 최대한 빨리 도망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그 아이가 떠올랐다.

새를 좋아하고 장난감을 늘 손에 들고 다녔고 어디든 뛰어다니거나 그도 아니면 누워있던 아이.

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잘하고 승부욕이 강했던 아이.

친구를 좋아해서 친구 곁을 맴돌고 친구의 사소한 한 마디에도 상처받고 눈물 흘리던 아이.

이렇게 쓰고 보니 참 평범하고 보통의 남자아이지만 나는 그때 그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석에 끌리는 수많은 쇳가루처럼 나의 모든 세포가 수업 시간에 그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반응하고 있었다.


하루가 시작되어 출근 준비를 할 때 혹시나 그 아이 어머니의 문자가 오진 않았을까 핸드폰을 응시하느라 바빴고,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면 오늘은 어떤 자세로 복도에서부터 교실까지 올까 교실 문을 쫓았다.

수업 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소음을 내거나 갑자기 밖으로 뛰어가는 일이 있을까 노심초사였고

내가 모르는 사이 벌써 다른 아이와 다툼이 생겨 소리를 지를 때는 심장이 얼어붙었었다.

점심시간에  그런지 몰라급식소로 가는 도중 교실로 돌아가버려 아이를 찾아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일도 많았고... 뭔가 마음에 맺힌 일이 있으면 교실로 돌아오지 않고 학교 건물 안을 배회하며 내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던 아이.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교실 앞 뒤로 돌아다니면서 교실 문을 차고 큰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걸어오는 그 애의 발걸음은 쿵쿵.  그것은 심장에 이롭지 않은 떨림이었다.


나는 사실 그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의 행동은 다른 아이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이 잦았었고 아이도 그것을 느꼈지만 어쩐지 더욱 모두를 힘들게 했던 그 시간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 아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자괴감의 늪으로 빠뜨리는 가볍게 흘리는 그 말들.


"다른 데서는 안 그러는데 유독 학교에서만 이러네요."

"선생님이 친절하셔서 말을 잘 안 듣나 봐요."

"집에서는 착한 아이인데 학교에만 가면 따돌리고 잘 안 놀아준대요."

"친구들이 @@이만 싫어한대요."

"선생님이 @@이만 미워한다는데 맞나요?"



이런 아이의 행동이 수위가 감당하기 힘들 때 급기야 수업 중 어머님의 호출했을 때 나는 내가 더 이상 이 아이를 마음으로 회피하지 않고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겪고 참아내며 고통받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학교 상담 교사에게 상담을 의뢰했고 그동안 누가 기록했던 아이의 행동에 대해 서류로 정리하여 상담을 하였다. 상담 선생님과 면담 후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의 말을 해주셨지만 내가 듣고 가장 힘들었던 말은

"@@이가 수용받지 못한 경험이 많아 돌발 행동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의 행동을 너그럽게 봐주시고 마음을 읽어주세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옹졸하게도 선생님이 내가 아이의 마음을 품어주지 않는다고 내 탓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담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집에서 기르는 새에 대해 묻기도 하고, 어렵다고 투덜대는 아이를 내 옆에 두고 하나하나 도와줬다.

일대일로 아이의 눈을 보며 마음을, 그 알 수 없는 마음을 읽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다시 시작되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과 말들 때문에

우리 교실은, 나는, 나의 아이들은 가라앉고 있었다.

교실에는 이 아이만 있는 것 아니라 21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다.

겨울눈처럼 고요하고 묵묵히 그 시간들을 나와 같이 견디고 있었다.

가라앉는 마음을 붙잡고 나를 기다리며 나를 좋아해 주는 우리 반 아이들의 시간을 찾아야 했다.

이상하게도 도망치면서도 찾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리고 아이는 진급을 했다.

이 아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고작 9살인 아이에게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 아이와의 시간이 나에게 고통이었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선사했으며 무엇보다 학교를 쉬게 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어도 꽤 중요하게 작용한 원인이었다.




지나가다 그 아이를 보았다.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못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마스크를 쓴 채 같은 교실에서 1년을 있었기에 못 알아볼 수 없었다. 면목없지만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잘 지냈니? 3학년은 어때? 친구들하고 잘 놀고 있어?

그저 툭 던질 수 있는 그 한 마디를 못하고 달려가는 아이 뒤통수를 보며 나도 가던 길을 바삐 가버렸다.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부디 언젠가 네가 멋진 무언가를, 멋진 누군가를 찾을 수 있기를

부디 언젠가 내가 상상력이 더 풍부한 사람이 되어 그 아이뿐 아니라 내가 만날 다른 어떤 아이라도 아이에게 숨겨진 진심을, 진실을, 마음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가볍게 읽으려고 빌린 책이었는데 괜스레 무거워졌다. 그래도 좋은 책이니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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