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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14. 2022

착하게 살자

갑작스레 후원을 시작한 이유

마음이 어수선할 때 글이라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침에 둘째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이 시간에 걸려올 전화가 없는데?

전화번호가 우리 지역번호로 시작해서 받았다.

"여기 @@ 병원인데요. 저번에 검사하신 결과 나와서 연락드렸어요. 언제쯤 내원 가능하신가요?"


이번 주 화요일 피검사를 받았는데 벌써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렇게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온 것을 보니 수치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 둘째 아직도 엄마 징징인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내 나이 37, 아직 젊은데 별 일이야 있겠어? 아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불안은 증폭되어 아이가 유치원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도 갑자기 찡해졌다.

원래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질 것 같으면 걱정할 일이 없겠다는 어떤 농담을 되내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5월 말에 종합 건강검진을 했었다. 그 일은 앞서 브런치에도 글을 남겼었다. 간이 검사 결과가 괜찮았기에 몇 주 뒤에 등기로 검사 결과가 도착하기 전에 결과에 대해선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그런데 검사 결과를 보내줄 때 전화가 오기를 췌장암 , 대장암, 위암, 유방암 등과 관련된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다며 내원하여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나중에 결과를 읽어보니 Ca 19-9 수치가 38로 정상수치보다 1 정도 높았다.

CA 19-9 수치는 췌장암 관련 종양표지자 수치인데 구체적으로 췌담도암, 대장암, 위암, 유방암, 췌장염, 궤양성 대장염 등에서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0에서 37까지가 정상 수치 범위인데 나는 약간 높은 38.06으로 나왔다.  겨우 1 높은 것인데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시간이 나면 병원에 한번 들러 검사받으면 되겠지 하고 넘겼던 정도였다.

그런데 친정에 들러서 이야기하다가 검사 결과 얘기를 하니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전화 올 때마다 검사받았냐고 물으셨다.

"별 거 아니야. 많이 높은 것도 아니고 겨우 1 높은데 뭘.  간호사도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고."

"그래도 꼭 검사받아라. "



아이들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화요일에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 - 가족 중 아프신 분 계시나요?

나 - 아버지가 고혈압 있으시고 어머니는 직장암으로 돌아가신 지 8년 되셨어요.

의사 - 그러면 수치가 유의미할 수 있겠네요.

나 - 1 정도 높은 것인데 그럴까요?

의사  -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지만 복부초음파 상 깨끗한데 수치가 높으면 검사를 더 해야 합니다. 만약 수치가 저번보다 높게 나오면 CT를 찍으시고 다른 검사도 받으셔야 합니다. 종합 병원에서는 그 정도 검사만 가능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MRI는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정말 아무런 걱정이 없었는데 걱정이 없는 게 걱정이었는데 CT, MRI, 췌장암 등 이런 단어들이 나의 가슴을 더욱 쪼그라들게 했다. 그렇게 진료를 받고 이틀 만에 결과가 나왔기에 더욱 그랬다.

간호사님이 접수를 미리 해놓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바로 내과로 찾아갔다.

혈압을 측정하고(혈압이 너무 높게 나옴) 잠시 기다린 후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의사 - 수치가 확 내려갔네요. 25로 나왔어요. 1년 후에 다시 검사받으시고 경과를 지켜봅시다.

나 -  네! 감사합니다.

세상 공손하고 감사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38에서 25로 CA19-9 수치가 내려간 것이다.

앞서 했던 걱정들은 다 사라지고  우중충하게 보였던 하늘이 갑자기 환해 보였다. 마음이 편하니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덥고 습한 날씨에 주차할 곳도 없어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았을 때는 속이 타 들어가더니 주차장까지 가는 높은 계단도 상쾌하다.

아빠한테 먼저 전화드리니 안도하셨고 남편은 내가 수영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라며 수영 효과를 극찬했다.


병원에 들어설 때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하는 설문도 그냥 지나쳤는데 나올 때는 설명도 잘 듣고 내친김에 정기 후원도 하기로 했다.  

인도의 파르시들은 (배화교,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 사후에 천국에 가려면 현세에 선행을 많이 하고 기부도 많이 하는 등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천국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착한 일 많이 하면 복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오늘부터라도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침에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아직 저 아이 곁에는 엄마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픈 엄마 말고 착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평소에도 들쭉날쭉하던 기분이 아침에 최고조로 긴장되었고 그 감정이 글을 쓰는 동안 흩어져버렸다.

국경 없는 의사회까지 후원 4개째, 몰래몰래 조금씩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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