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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25. 2022

내가 살던 집

최은영의 밝은 밤을 읽고

   

책 한 권을 읽었다. 최은영의 밝은 밤이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옛날에 외할머니댁에서 지냈던 며칠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주인공이 새로 이사 온 회령의 아파트, 가까이 있었지만 몰라봤던 외할머니의 집, 딸의 이혼을 외면한 엄마의 집, 옛날 증조모와 외할머니가 살던 회령 집, 대구로 피난을 가서 잠시 머물렀던 명숙할머니의 집까지.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일들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사람들이 머물렀던 집에 마음이 갔다.

오래 살던 나의 옛날 집이 떠올랐다.     




늦은 저녁, 마지막 버스를 타고 마을 다리에 도착하면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올라가다 보면 동네를 내려보는 키 큰 가로등이 있었고 그 안쪽 깊숙하게 자리 잡은 마당을 지나면 우리집이 있었다. 그 집은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목수와 함께 손수 지은 집이었다. 반듯하게 잘 깎인 누르스름한 나무 대들보가 직각을 이루고 서 있고 그 사이사이 회백색의 시멘트벽이 깔끔하게 발라진 정갈한 새집은 아버지가 3년 동안 리비아에 가서 번 돈으로 지은 집이었다. 아버지는 결혼과 동시에 엄마와 떨어져 리비아로 떠났다. 80년대 중동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아버지는 3년 동안 엄마와 헤어져 일을 했었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집을 짓는 일이었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얼기설기 지은 슬레이트집 사이에 나뭇결이 살아있는 윤기 나는 기와집은 마을 사람들의 시기와 부러움을 샀다고 들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듣기 전에도 옛날 앨범을 뒤적이면 옛날 집 마루에서 찍은 엄마와 젖먹이 동생, 그 옆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몇 장 볼 수 있었다.


아직 얼굴에 젖살이 덜 빠진 젊은 엄마는 진달래 분홍 한복을 입고 마루에 곱게 앉아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아기 둘을 안고 있던 앳된 얼굴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까지 나는 그 집에 살았다. 새집을 짓고 이사 가던 28살 가을, 지금껏 살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잘 살았다고 짧은 인사도 건네지도 않고 무정하게 떠났다.

반들반들한 마룻바닥에, 손자국 가득한 문고리, 다 낡아서 열 때마다 삐걱대던 방문마다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모두 살아날 것 같은 그 집을 떠날 때 아쉬움보다는 오래된 집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더 컸었던 것 같다. 새로 지을 때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 집은 불에 탄 흔적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퇴락해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방 세 개, 옆으로 드르륵 미는 미서기로 된 유리창을 열면 나무 마루가 있었고 마루를 중심으로 가장 왼쪽엔 부엌, 부엌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 안방, 안방과 나무 문으로 나눠진 동생방. 그리고 가장 오른편에 학교에 들어간 후 쓰게 된 내 방이 있었다.     

동생과 내가 어렸을 땐 안방 4면에 모두 문이 있었다. 들어가는 문, 다락문, 툇마루에 연결된 문, 옆방으로 가는 문. 사방으로 뚫린 안방은 늘 열려 있었지만 아늑했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은 원래 다락으로 연결된 문이었다. 다락엔 난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늘했었는데 거기에는 동생과 내가 쓰지 않는 장난감이나 오래된 책들, 광주리, 과실주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가 겨울에 꺼내오는 곶감이 보관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락문을 열 때마다 시큼한 감 익는 냄새가 났었다.

또 안방엔 뒷산을 볼 수 있는 툇마루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당산과 큰 소나무가 보이고 동네에서 시제를 올리는 커다란 무덤이 있었다. 여름이면 발을 쳐 두어서 시원했었고 엄마가 뒤 안에서 생선을 다듬거나 채소들을 손질하는 모습을 마루에 앉아서 보곤 했다. 아쉽게도 다락은 부엌을 입식으로 개량하면서 없앴다.     


마루는 텅텅 울리는 나무 마루였는데 청소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빗자루질을 내가 늘 도맡았기에 아버지, 엄마 일하시고 온 뒤에 남는 흙먼지 자국이 늘 뿌옇게 남아 있어 쓸기 바빴다. 여름에는 유리창을 열어두고 발을 쳐 두었다. 밤이면 마루에 이불을 깔아 거기서 잠을 잤는데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이 솔솔 맞으며 잠이 들었다. 마룻바닥은 기다란 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연결해서 만들었는데 당연히 난방이 안 되어서 겨울에는 발바닥이 시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고 가끔 동전이라도 굴러가서 그 틈새로 떨어지면 기어코 다시 주워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언젠가 동생이 그린 드래곤볼 그림이랑 엄마가 걸어둔 말린 꽈리 다발이 늘 지키고 있던 마루였다.    


그리고 옛날 집에서 가장 넓었던 내 방. 마당을 바라보며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바로 아래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사주셨던 피노키오 책상이 있었다. 여자애 방이라고 기다란 거울, 장롱, 유리 책장까지 있었던 좋은 방이었다. 특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우리집에 피아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고동색의 피아노 한 대가 들어 온 다음부터 더욱 좋아했던 내 방. 겨울에는 말린 고추 가마니가 대신 들어가서 안방에서 지낼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큰 다음부터는 혼자서 그 방을 썼었다. 책장 안에 든 여러 가지 전집들은 얻어온 것도 있었고, 학교에서 받아온 방문 서적 판매원에서 구입한 전집들도 있었다. 높은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을 읽으면서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있으면 저벅저벅 마루 울리는 소리가 났고 아버지가 들어와 불을 꺼주고 가셨다. 내가 책 읽고 있는 모습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지금도 내가 책을 읽거나, 손녀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좋아하신다.  

  

옛날 집에는 나무가 많았다. 마당에는 감나무, 대추나무가 있었고 밤나무가 집을 두르고 있어서 담을 이루었다. 가을이 채 되기도 전에 동네 아이들과 밤나무를 털어 아직 익지 않았지만 고소한 누런 밤을 꺼내 먹었다. 쌉싸래한 껍질을 이로 까고, 오도독 깨물어 먹는 샛노란 밤은 참 맛있었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되어 밤이 익으면 학교 가기 전에 엄마가 밤을 주워 오라고 시켰다. 동생이랑 바구니 하나씩 들고 나가면 금세 가득 주워오곤 했다. 갓 삶은 밤을 이빨로 반절 쪼개서 찻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가을 간식이었다. 그렇게 많은 밤을 다 못 먹으면 땅에 묻어서 겨우내 먹기도 했는데 그런 밤들은 땅 속에서 얼거나 밤벌레가 다 파먹어서 못 먹게 되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불에 구워 겨울밤에 먹던 알밤 맛은 잊지 못한다.




옛날 집을 이야기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미련 없이 그 집을 떠난 줄 알았는데 내 마음 속에 미련이 또 사랑이 굽이굽이 서려 있었나 보다.


그런 집이, 내가 사랑하던 집이 14살 봄,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불이 나고 말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에 가방을 던져두고 강아지랑 놀고 있었는데 엄마의 비명이 들려 나가보니 창고에서 일하고 있던 엄마 아빠가 서둘러 호스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창고 가득 쌓아둔 짚더미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안방으로 달려가 119에 전화를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친 것은 나였다.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겨울을 지나 바싹 마른 지푸라기와 창고 가득 쌓아둔 농자재들은 타기 쉬운 것들이었고 창고마저 나무로 지은 것이었으며, 창고 옆에 있던 내 방과 우리 집조차 모두 나무로 지어진 집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나고 사람들이 모여 물을 뿌렸던가? 아니면 소방차가 먼저 들어왔던가?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이 나던 순간 엄마와 아빠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무엇을 했었는지 그때만 오려낸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불이 한창 타고 있었을 때 동네 아저씨들이 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내 방에서 피아노를 끙끙대고 꺼내는 모습, 강아지 복실이가 끈이 풀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모습, 좁은 동네 길에 커다란 소방차가 끼인 것처럼 겨우 들어오는 모습 정도만 생각이 난다.


나와 동생은 같은 동네에 살던 작은 아버지 집에서 불이 나던 날 잠을 잤고 다음 날 가보니 집은 완벽하게 절반만 남았었다. 집을 둘러싼 밤나무들은 흉하게 타서 밑둥만 남았고 창고는 흔적도 없었고 내 방은 틀만 남았다. 마루도 그을음으로 온통 새카맸고 남은 집 구석구석에 불에 탄 흔적, 불 냄새가, 그을음이 덮여 있었다.

엄마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불이 난 그날 뿐이었다. 불이 났을 때 엄마 아빠는 필사적으로 물을 뿌릴 호스를 찾았지만 겨울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호스는 꽝꽝 얼어있었고 터져서 제구실을 못 했다. 할 수 없이 물을 이고 지고 날라서 불을 껐던 모양인데 그마저도 제 때에 할 수 없어서 피해가 더 컸었다. 망연자실하게 마당에서 울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어색해서 곁에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날 이후 엄마 아빠는 불이 난 집을 떠나지 않고 남은 집을 고치고 새 방을 만들고, 창고까지 다시 스스로 만들었다. 한창 일 철이었지만 가까이 사는 친척, 동네 어른들이 도와주셔서 한 달 만에 다시 집이 만들어졌다. 불에 탄 자국을 없애려고 마루, 문 할 것 없이 집안 곳곳을 모두 페인트로 칠했다. 좀 더 연한 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무색을 흉내 낸 갈색 페인트는 너무 짙고 선명해서 오히려 여기가 불에 탄 자국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불이 나고 집이 예전 모습을 잃어서 나도 그 집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 불난 집에서 우리는 계속 살았고 새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십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세월 속에 불이 난 자국은 점차 사라졌고 생경했던 페인트는 자연스러워졌으며 우리집을 둘러싼 밤나무 대신 담벼락이 들어서서 집은 원래 그랬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불이 났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 가족들만 기억할 옛날 일 중 하나가 된 듯하다.

우리 가족은 떠났지만 그 집에는 다른 가족들이 이사를 와서 또 다른 기억을 만들고 있다.


그저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내 안에 잊고 있던 옛날 집에 대한 기억이 새삼 떠올라 책을 읽는 것인지 내 기억을 찾는 것인지 모를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자기 얘기를 하는 나 때문에 옛날 집도 귀가 좀 간지러웠으려나.


      

블로그에 올렸던 옛날 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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