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Sep 20. 2022

실수는 나의 힘

복직한 지 이제 3주가 되어간다. 그 사이에 추석 연휴가 있었고 큰 태풍이 두 번 지나갔다.

큰 태풍마다 등교 여부와 원격 수업 준비로 갈팡질팡 했고, 연휴는 짧지 않았지만 그리 길지도 않아 아직도 여름방학의 끝자락인 듯 날씨도 마음도 늘어졌었다. 그렇게 시간은 가서 3주가 흘렀다.


반 아이들은 순하고 열정이 넘쳤다.

아직 친해지기 전이라 그렇겠지만 무슨 말을 하든 호응을 잘해줘서 갖고 있는 것을 다 퍼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예전에 맡았던 1-2학년 아이들에게 했던 것보다 더 나긋하고 상냥하게 말을 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교 일도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고 옆에서 도와주는 선생님이 계실뿐더러 하던 일을 받아서 진행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어렵지는 않은데..  문제는 나였다.


1학기를 다른 선생님과 보낸 아이들은 처음부터 나와 시작하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이 상냥해도 다가가기 조심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을 매 시간 마주 보고 오랜만에 하는 국어, 수학, 사회, 음악 등 이런 교과목들을 가르치려니 버거웠다. 분명 아는 내용인데 머릿속에서 반짝 사라져 버려서 말을 한참 잇지 못하는 때가 있고,  하는 말이 앞 뒤가 맞지 않아 버벅거렸다.

업무상으로는 학기 초 제출해야 하는 여러 계획들, 형식들 모두 아는 내용이고 익숙한데도 뭔가 핀트가 한 끗씩 어긋난다.

한번 집중해서 확인하면 되는 것인데 처음에만 기합을 주고 나중엔 흐지부지해서 그냥  넘겨 버린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실수를 하고 헛걸음을 하고 있다.

실수를 인지하지 못했을 때는 여유롭다가 실수를 알아차리면 그 자신감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이 정도도 못하나 싶어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그럴수록 더 힘이 들어가고 긴장해서 온 몸이 바싹 쪼그라든다.

처음에 복직했을  기본만 하자는 다짐은 태풍 왔을  모두 날려 버렸는지 기본도 해내지

못하면서 3 만에 깡그리 없어졌다.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에는 조바심을 내고 너무 애를 쓰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실수 연발인 상황이다.


육아 시간을 올려야 하는데 모성보호시간을 올려서 교감 선생님을 화들짝 놀라게 한 일

8시 30분으로 출근 시간이 변경되었는데 40분으로 알고 여유 있게 하다가 겨우 지각을 면한 일

결재 라인을 잘못 올려 다시 상신했는데 또 잘못 올려서 전화를 받은 일

기안을 할 때  간단한 계산을 실수해서 결재자에게 쪽지를 받은 일

1학기에 했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서 계획이 중복된 일.

수학과 사회(역사) 과목에서 너무 많이 혼자 이야기해서 정작 아이들이 잘 배우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일


내가 꼼꼼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이건 뭔가 실수의 늪에 빠진 건가 싶을 정도로 실수를 매일 하고 있다.


9월 첫째 주 태풍 힌남노가  올라왔을 때 우리 지역은 태풍 직접 영향권이어서 월요일과 화요일 모두 원격 수업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이 일상화되었지만 1학년과 2학년 담임을 연속으로 했기 때문에 모두 대면 수업을 했다. 줌이고, 아이 톡톡이고 실제 원격수업으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두려웠다.

하지만 이틀간 실제로 해보니 할 만했고 1-2학년 했던 수업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법이 어렵다기보다 내가 안 해 본 것을 한다는 두려움이 더 나를 긴장하게 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  오랜만에 가르치는 교과목, 해야 하는 학년 업무와 담당 업무들이 힘들고 어려워서 못하겠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어딘가 막연히 두렵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고 그 때문에 실수한다.


원래도 완벽하지 않았는데

그깟 실수 몇 번 더 한다고 뭐 어떻게 될까

실수투성이 그대로를 인정하기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데.

내일 출근해서 실수한 것 사과하고 다시 하면 그만이다. 내 잘못 아니라고 변명하는 게 더 별로다.

실수는 나의 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너무 애쓰지 말자.

실수야 안녕? 친하게 지내자
이전 17화 수영의 목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