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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08. 2022

수영의 목적

이젠 4시 40분이면 눈이 떠진다.

 9시에 잠이 들면 1시나  3시쯤 갑자기 잠에서 깬다.

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놀라서 겨우 눈꺼풀을 말아 올려 핸드폰을 보면 아직 여유가 있다.

그렇게 갑자기 깬 잠은 다시 들기 어려워 이래 저래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또 잠이 들지만 어김없이 4시 40분쯤 깬다. 뭉그적거리면서 갈까 말까를 천 번도 더 고민하다 오늘은 가기로 했다. 몸은 이미 일어나서 움직거리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화요일에 수업 도중 도망을 쳐서 민망하기도 했고 이대로 안 가면 진짜 안 될 것 같아 일단 출발했다.


이번 주 화요일, 2주 만에 수영장에 갔다.

그동안 수영장 물 교체로 일주일 휴관을 했고 지난주는 소독을 한다면서 또 일주일을 쉬었다.

내 의지로 쉰 것도 아니고, 수영장 차원에서 쉬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휴가를 준 것처럼 아침 시간이 여유로웠다. 6시 반에 일어나서 천천히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는데 강사님이 이제는 초보반 강습을 같이 받으라고 하셨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 새벽반은 3개 반이 있는데 초급반, 중급반, 연수반이다.

그중 초급반은 1번 레일에서 하는 그룹과 어린이 수영장에서 하는 그룹이 있다.

나는 새벽반으로 옮긴 뒤 이틀 빼고 계속 어린이 수영장에서 연습을 했다.

70에서 80cm 정도의 깊이의 물은 내 허벅지 정도 오는데 이곳에서는 수영 처음 배우시는 분들이 호흡부터 연습하는 곳이다.  여기서 영법을 다 배우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일반 수영장으로 옮겨서 강습을 받는다.

4가지 영법도 배우고 나름 하이엘보도 할 수 있게 되어 어린이 수영장에서 할 때는 정말 할 만했다.

길이도 짧은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있지는 않아서 물도 먹지 않고, 사정없이 튀기는 물 맞지도 않으면서 편하게 했었다.

문제는 내가 여기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아무도 없는 어린이 수영장에서 혼자 노는 게 제일 좋았다.

주말 아침에 오는 분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수력이 되는 분들이 자유 수영하시거나 걷기 운동하시는 할머니들이 많으셔서 어린이 수영장에는 들어오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 혼자 그 넓은 수영장에 있다. 가로, 세로, 대각선 종횡무진하면서 내 마음대로 수영을 했다.

내가 만들어 내는 물결을 바라보거나  물살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너무 좋다.

평일 강습은 너무 힘들지만 주말 자유 수영할 때는 진짜 자유롭게 수영을 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 없이 그냥 나 혼자 물살을 느끼면서 물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수영이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힘든 강습에서 어찌어찌 조금이나마 배운 기술을 혼자 연습하고 그러다가 하기 싫으면 쉬면서 그렇게 하는 수영이 좋았다.


이제는 어린이 수영장을 떠나 1번 레일로 갔다.

맨 끝으로 가서 줄을 서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눈치를 보았다.

다들 너무 잘하신다.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부담감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가 출발을 하면 언제 끝이 오나 가쁜 호흡을 하면서 허겁지겁 팔을 돌린다.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데 나 혼자 괜히 의식을 한다.

아직도 물이 무섭고 손 뻗어서 줄이나 벽이 닿지 않으면 겁을 먹는다.

아직 호흡이 남았는데도 놀라서 일어나려고 하면 발이 닿지 않아 물을 먹고 켁켁거린다.

선생님은 천천히 하라고 힘들면 쉬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이미 천천히 하고 있어도 힘들다.

그렇게 쉬면서 천천히 해도 이미 다 돌고 앞지르는 분이 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까 겨우 50분 강습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마칠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냥 나와버렸다.

도망쳤다.

가르쳐준 선생님께 인사도 안 하고 쌩 나가버렸다.

다 씻고도 얼굴이 아직도 벌겋고 숨이 찼다.

괜히 어지럽기까지 했다.

집에 와서 그냥 누웠는데 내가 뭘 하고 온 것인가 싶어 부끄러웠다.


이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고 성실한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다르다. 나도 그러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말로만 떠들었다.

왜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하는지, 수업 시간에 왜 집중을 못하는지, 왜 맨날 떠드는지, 말썽을 피우는지 이해가 됐다.

나도 숙제를 끝까지 미루는 아이처럼 수영장을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갔고

강습받는 내내 힘들다고 얼굴로 숨소리로 온갖 티는 다 냈다.

못하겠다고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 기어이 도망쳐 버린 것이다.

성실하지도 못해서 온갖 핑계를 다 대고 며칠을 또 안 갔다.

이쯤 되면 수영 강습받는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그래도 진짜 포기하는 싫었다.

진짜 여기서 그만 두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수영도 못 할 것 같았다.

조용히 흔들리는 물결을 진정으로 온전히 느끼는 공간이 꼭 어린이 수영장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넓고 긴 수영장에서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배우는 것이다.

수영의 목적이 대회 우승도 아니고 선수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물속에서 자유롭고 싶고 아이들과 물놀이를 더 즐겁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강습을 받고 있고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것인데 그것들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아니 많이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뭐, 어때 싶어서 금요일 강습은 갔다.

일찍 들어가니 아직 서너 분 밖에 계시지 않았었다. 얼굴이 익숙한 수강생분께서 킥판을 두 개 잡고 하면 편하다고 알려주셔서 그렇게 발차기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니 정말 잘 나갔다.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나보다는 조금 더 잘하시는) 수강생 분들이 계셔서 조금은 편안한 상태로 시작했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그래도 힘들면 쉬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다른 분들 절반도 안 되는 양만 했는데도 힘들어서 수업 마치기 전에 나왔다.

그래도 오늘은 나올 때 선생님께 인사는 드렸다.

내 수영의 목적은 편하게 수영하는 것이다.

그것만 기억하면서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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