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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08. 2022

겉만 봐서는 모른다

둘째 유치원 등원을 하고 서둘러 수영장으로 향했다.

오늘로 8번째 수영장을 갔다.

수영장을 가는 첫 관문은 주차.

9시와 10시대 수업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서둘러 가지 않으면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해 차가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안쪽 깊은 자리가 비어있다고 손짓으로 알려주셔서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었다.

항상 10분 먼저 오지만 나보다 발 빠른 다른 수강생들이 이미 샤워장에 가득하다. 조금 기다리니 또 친절한 분께서 비어있는 샤워기를 알려주신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수영장 가득 수강생들이 있다.


여기는 코로나 따위는 이미 사라진 듯하다.

색색의 아름다운 수영복을 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가득한 수영장은 밖에서는 모를 열기가 가득하다. 몇 번 왔다고 안면을 익힌 다른 수강생과 눈인사를 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먼저 미지근한 물에 몸을 적시고 킥판을  잡은 채  팔 젓기를 한다.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면서 팔을 앞에서 뒤로 물을 보내며 젓는 이 동작은 가뜩이나 숨이 짧은 내게는 버겁다.  왼팔을 젓는 것은 잘 되는데 오른팔이 어렵다.

오른손바닥으로 물을 밀면서 팔을 저을 때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고 숨을 내뱉은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고개는 왼팔 안 겨드랑이 쪽으로 귀를 붙인다 생각하고 돌리고 오른팔을 저을 때 손목을 꺾지 말고 그대로 나오면 된다. 머릿속으로는 이해를 하는데 할 때마다 고개를 너무 들고 손목은 꺾이며 호흡이 짧아 물을 마시기 일쑤다.


처음 킥판을 잡았을 때 손가락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굽혀지지 않고 아팠는데 힘이 조금은 빠졌는지 손가락은 안 아프다. 대신 숨이 매우 찬다. 어린이 전용 레인에서 왔다 갔다 연습을 하는데 그 짧은 거리를 갈 때 도약을 빼고 나면 실제로 호흡하며 가는 거리는 짧지만 내게는 너무 멀다. 킥판이 벽에 닿을 때 멈추려고 하지만 항상 그전에 벌써 몸을 일으킨다.

아이유 노래... 

숨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진짜 그렇다. 
숨이 차서 급하게 고개를 들면 코로 물이 들어온다.

방심은 금물.

덥지 않은데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쫘악 퍼진다.


어제 짧게 배운 누운 자세(배영)에서 발차기를 했다 .

일단 킥판 두 개를 양쪽 겨드랑이부터 잡는다. 그런 후 힘을 빼고 눕는다. 귀로 물이 들어올 것 같아서 머리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만 일단 눕고 하늘을 본 상태에서 허리가 가라앉지 않도록 당기고 발을 찬다. 발을 찰 때는 무릎이 물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면 된다. 호흡이 없이 힘을 빼고 발차기만 하면 되는 동작이지만 물 위에 내 몸 하나 띄우는 것이 겁이 난다.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겁나는 게 많은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이 그저 누워서 발차기만 하면 되는 이 동작이 또 뭐가 겁이 날까 싶어 그냥 누웠다. 귀가 살짝 물에 잠긴다. 그러면 그 많은 소란이 사라진다. 출렁거리는 물소리만 귀에서 멀리 들리고 눈앞에 물방물 몇 개가 튈 뿐이다.
수영장 온 지 8일 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할 일은 오로지 힘 빼기와 발차기.

절대 귀에 물이 들어오진 않는다. 찰랑거릴 뿐이다.

요즘 나처럼 초보 수강생들이 많이 들어와서 적막했던 어린이 풀장에 대여섯 명 정도 연습을 한다. 천장을 바라보며 헤엄치는 것이라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데 뭐 내 맘대로 될 리가 없다.


이 동작에서 관건은 힘을 빼는 것이다. 항상 목과 어깨가 결리는 나로서는 목에 힘을 빼는 것이 어렵다. 평소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물속에서는 안다. 힘을 주면 가라앉는다. 힘을 빼야 귀에 물이 들어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겨드랑이에 낀 킥판을 믿고 눕는다. 그리고 발을 찬다. 그뿐이다. 호흡이 없어 편하고 많이 힘들진 않았다.



40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서둘러 씻고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오면 수영장 안의 그 뜨거운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시원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햇빛 한 줄기 한 줄기가 온 몸으로 부딪치고 순식간에 수분이 공중으로 분해된다.

밖에서는 모른다. 저 안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동안 수영장 앞을 얼마나 많이 지나갔는데 낡고 오래된 수영장이라 누가 다닐까 싶었던 그곳엔 건강을 위한 에너지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수영장을 다니는 사람들뿐이다.

같은 시간대에 수업을 받는 어른들 중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많으시다. 물속에서는 그분들의 주름도 굽어진 허리도 안 보인다. 물속에서 우리는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다. 물을 온전히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든 분들에게서는 여유와 포스가 느껴진다.
겉만 봐서는 모른다. 수영장 밖에서 그분들을 만나면 그저 할머니일 뿐이지만  수영장에서 만나는 그분들은 어린이 수영장에서 이제 일주인 된 초보자들이 가장 동경하는 멋진 분들이다.

내가 40, 50이 지나서 저분들의 여유를 가지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려면 일단 힘을 좀 빼자.

출처 - 픽사베이 abenakis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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