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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01. 2022

여름, 비빔국수!

이번 주는 엄마로서 넘치게, 그동안 경험한 바 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이들과 나, 셋이서 경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화내지 않고 온전히 행복한 3일이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목요일에 등교, 등원시키고 난 후 나의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곧바로 수영장으로 갔다.

5일 동안 못 갔던 수영장에 가니 소독 냄새도, 샤워실의 후끈한 열기도, 아는 듯한 모르는 사람들과의 어색한 눈인사도 그리웠었나 수영장은 나의 남은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갔다.

겨우 5일 못 간 것뿐인데 나의 몸은 물을 몰랐던 그때로 되돌아간 듯 호흡은 어렵고 팔과 다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자유형은 이제 겨우 허우적거리지 않을 정도, 배영은 넘실대며 코로 들어오는 물을 뱉어내기도 어려운데 팔 젓기까지 해야 하는 난관. 나랑 같이 배우던 수강생분은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처음 보는 평영을 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것이 단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허기였다.


아침에 물 한잔 벌컥 마시고 온 것이 다였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뱃속은 요동쳤고 밥을 달라는 것인지 그냥 쉬고 싶다는 것인지 강습 내내 일관성 있게 성실하지 않은 태도로 허우적대다 집으로 돌아와 만든 것이 비빔국수다.


여름이면 비빔국수다.

잔치국수 아니고 비빔국수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멸치로 국물을 내고 야채와 계란 지단까지 만들어야 하는 정석의 잔치국수를 해야 하지만 나 혼자일 땐 그냥 비빔국수다.

재료는 간단하다.

얼마 전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햇양파가 다용도실에 가득하고 냉장고에 반 조각 남아있던 애호박을 대강대강 썰어 식용유에 대충 볶는다. 소금 한 꼬집 넣으면 더 달달한 맛이 올라온다.

고추장-고춧가루  숟갈, 양조간장  숟갈, 설탕 대신 조청을  숟갈 넣고 휘휘 저은  알맞게 삶아진 국수를 차가운 물에 헹궈 물을   넣어 비빈다.

그게 .

일 인분 국수는 양이 항상 애매하여 조금 넉넉하게 한다. 조금 남으면 아이들 좋아하는 국수 튀김을 해주면 된다. 이것도 에어 프라이기에 10분만 돌리면 바삭바삭해져서 꿀맛이다.


아무튼 12시가 다 되어서 먹는 아침 겸 점심 식사는 성공이었다. 여름이면 늘 먹는 아는 맛이다.

비빔국수에 열무랑, 오이까지 넣으면 너무 풍부해져서 별로다.  그저 양파와 호박이면 된다.

어릴 적 이맘때 밥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이 두 재료였다. 특히 나는 양파가 좋다.

다른 반찬 없이 매콤한 양파 볶음 하나면 밥 한 끼 잘 먹었다 했다. 달짝지근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좋아한다. 껍질에 흙이 듬성듬성 묻어서 그대로 굳어 있는 양파는 칼로 살살 껍질을 벗겨내야지 안 그러면 애먼 하얀 속살까지 깎아먹는다.

칼이 지나갈 때마다 단단하고 묵직한 양파의 달콤하고 매운 냄새가 풍겨온다. 봄이나 겨울에 마트의 주황색 망에 담긴 양파와는 다르다.

뽀드득한 하얗고 연둣빛은 초여름의 햇살과 닮았다.


며칠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이제 다시 뙤약볕이 성질을 부린다.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으려고 더운 불 앞에서 그렇게 열심히 썰고 볶고 비빈 후 완성된 점심상.

몇 번의 젓가락질이면 끝나는 간단한 식사지만 한 끼에 나름의 정성을 쏟으면 배가 부르다.

땀을 쏟고 비워낸 후 먹는 한끼라서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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