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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23. 2022

나의 해방 일지 - 엄마의 밥상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온 엄마는 계속 밥을 한다.

거실과 마당에서 반찬을 할 나물을 다듬는다.

가지를 썰고 고구마 줄기를 깐다.

엄마가 해 준 밥상은 따듯하고 풍요롭다.

막 무친 제철 나물과 푸성귀, 국, 숭늉.

막 끓인 숭늉을 아버지와 구씨에게 줄 때 그들은 술술 잘 마신다.
식사가 끝나고 마시는 숭늉은 그냥 물이 아니다.

한 끼를 끝까지 잘 먹었다는 의식이다.

숭늉은 전기밥솥으로는 안된다. 냄비로 밥을 해야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일 수 있다.

우리 엄마도 냄비로 밥을 지었다.

어렸을 때 아침을 먹고 나면 엄마는 고소한 누룽지를 긁어서 나와 동생에게 주었다.

어떤 날은 설탕을 뿌려줘서 달콤하고 쫀득한 누룽지를 먹으면서 티비를 보거나 학교에 갔다.

다른 날은 물을 붓고 숭늉을 해주면  대신 김치를 올려 먹었다. 뱃속이 뜨끈하게 데워졌다.


봄이면 두릅나물과 참나물이 밥상에 올랐다.

여름이면 양파를 볶거나 오이냉국 같은 간소한 밥상이지만 한 끼 먹으면 든든했다.

엄마의 밥상은 별거 없는 찬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가득 찬 한 상이 되었다.


나의 해방 일지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족은 냉장고에서 내온 반찬으로 찌개 없이 밥을 먹었다.

엄마가 해놨던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 모습에서 반찬의 냉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반찬을 먹으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을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가 밥상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부엌에서 직접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은 어색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을 내어 준비해도 계란 프라이와 국 정도이다. 엄마가 차려줬으면 뭐가 달랐을까?

출처 - 유튜브 캡처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수 집에 갈 때마다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 가거나 간편식을 사서 갔다. 간단히 먹으려고 준비하지만 밥을 차려 먹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냥 밥인데. 한번만 먹을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고심을 해서 준비해 가도 별 맛이 없었다. 차라리 돈이 들더라도 외식이 편했다. 누가 차려주는 밥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그렇게 알아버렸다.

엄마의 수고로움이 따뜻한 밥상을 만들었고 그 밥을 먹으면서 자란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밥상이 그립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드린 적이 없다. 기껏해야 읍내 식당에서 포장을 해가면 먹는 정도였지 내 시간을 내서 요리를 한 적은 없다. 그렇게 엄마가 해준 밥을 당연히 먹었는데 당연하게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면 식사를 잘하셨는지 제일 궁금하다. 코로나 이후 아버지는 입맛이 없다고 하신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어를 주문해서 드신 모양인데 많이 드시질 못해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특유의 냄새가 냉장고 가득 흘러넘쳐도 아버지는 새참으로 한두 점 먹고 말았다. 반찬 그릇에 옮겨 놓고 냉장고 정리를 했다. 아버지가 만든 반찬들이 한 두 개 있다. 멸치 볶음이나 두부조림, 배추 겉절이 등 아버지가 직접 한 반찬은 짜고 맵다.

이렇듯 아버지 입맛에 맞는 반찬은 손수 만든 반찬이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가도 아버지 입맛에 안 맞아 내가 가서 냉장고를 정리할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스스로 밥을 해 드시는 것이 익숙해지셨을 테지만.. 아버지의 식사는 옆에서 챙겨드리지 못해 더 짠하다.

출처 - 유튜브 캡처

더운 가스레인지 옆에서 끓이고 다듬고 볶고 하는 일련의 행위는 노동이다.

어제저녁 시래깃국을 끓여 아이들에게 주었다. 계란 부침과 오징어채 정도의 간단한 밥상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잘 먹는다. 너무 맛있어서 잘 먹는다기 보다 엄마가 직접 한 음식이기에 아이들을 그 맛에 서서히 길들여져 가는 것 같다. 밥상을 차리는 것은 힘들지만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해서 먹을 때와는 다르다.

외식이나 배달시킨 음식을 먹고 느끼는 배부름과 내 손으로 한 음식을 같이 먹었을 때의 배부름은 다르다.

나는 우리 엄마의 밥상을 잃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밥상이 있으니 다행이다.


나의 해방 일지 속에서 엄마의 부재가 밥상에서부터 느껴졌다. 내가 느꼈던 상실감을 티브이에서 보니 이상했지만 사람 다 비슷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해준 밥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들에게 식사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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