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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8. 2022

사랑은 정성이다

네 이름이 게발선인장이구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색종이로 감싼 우유갑 화분을 들고 왔다. 작은 잎사귀가 흙 위에  빼꼼 나와 있었고 바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낯설은 유치원에서 새로운 교실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선인장을 심었습니다. 3월 한 달간 사랑으로 보살폈더니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가정으로 가져가서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예쁜 꽃을 피우며 사랑해 주십시오.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주려고 심은 선인장이었다. 가까이 보니 가냘픈 잎사귀 끝에 자줏빛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여섯 살 아이들이 이렇게 키웠을 리는 없고 선생님께서 일일이 우유갑에 흙을 담아 선인장 잎을 꽂아 한 달간 키우신 것이다. 흙이 보슬보슬하니 촉촉했고 토끼 귀처럼 쫑긋한 이파리가 무척 싱그러웠다. 어떤 종류의 식물도 잘 키우지 못하는 나는 이 화분을 받아 든 순간 하나의 숙제를 떠맡은 기분이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잘 키운 화분을 어떻게든 꽃을 피워야 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인장은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식탁 위 그나마 덜 복잡한 곳에 화분을 두고 며칠을 기다렸다. 꽃망울이 더 부푸는 것 같긴 한데 탁 터지진 않는다. 물은 그 후로 두 번 정도 준 것 같다. 우리 집에 온 지 3주가 된 날 아침,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첫째가 꽃이 피었다고 외쳤다. 정말 꽃이 피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 온 선인장이 혼자서 꽃을 피웠다. 

단 한 송이!

토끼 귀에 꽃이 달렸다.

자세히 보니 처음 온 날 보다 키도 컸다.

보송보송했던 가시도 조금은 굳세진 것 같았다.

꽃은 아침에 가장 활짝 피고 오후가 되면 다시 오므라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은 더 활짝 폈고 오후가 되니 다시 입을 꽉 닫았다. 그렇게 2-3번 하더니 이내 꽃잎이 툭 떨어졌다.

그렇게 짧은 만남 후에 안녕했다. 


처음엔 보잘것없는 작은 선인장 잎이었을 텐데 선생님의 정성으로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꽃까지 피워냈다.

이 선인장이 이름이 게발선인장이라는 것도 선생님이 적어주신 쪽지가 아니면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가끔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서 확인을 하면 볼 수 있다. 

밴드, 클래스팅, 키즈노트, 카톡 채널 등 요즘 선생님들이 학부모와 소통을 하는 방법은 코로나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더 많아졌고 화려해졌다. 그러나 우리 둘째 유치원 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를 사용하신다. 들어갈 때마다 로그인을 해야 하고 학급 홈페이지까지 여러 번 클릭을 해야 해서 번거롭다. 그렇게 들어가 보면  작은 선인장 잎사귀처럼 싱그러운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정성스러운 사랑을 받아 꽃망울을 맺고 있다. 집에서는 한없이 장난꾸러기지만 나름의 사회생활을 거친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열심히 배우고 놀고 자라고 있다. 그렇게 한번 쭉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번거롭다고 여겼던 그 과정은 사라지고 예쁜 모습만 남아있다.  


선생님께서 주신 선인장을 보며 작고 소중한 내 아이가 어떤 정성 속에서 자라고 있는지 느껴졌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주시는 사랑은 작은 선인장이 혼자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혼자서 하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매일의 정성이다. 우리 아이를 나 혼자만 아등바등 키우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흙처럼 아이들을 잡아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찡하게 감사했다. 


부모가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아이가 가장 믿고 기댈 수 있는 분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어떤 화려한 언변과 교육 기법으로(?) 마법을 부리듯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믿음은 생긴다.

꽃이 떨어진 이후 다시 우리 아이들의 관심은 선인장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식탁 한편에서 조용히 있는 선인장을 본다. 다음 꽃이 필 때까지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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