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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16. 2022

둘째의 모닝 루틴

아이는 어떻게 노는가

월요일 아침이다.

남편은 오늘과 내일 항해 시운전을 간다.

아이들은 아빠 배웅을 한다고 7시도 안 되어서 일어났다. 아빠가 나간 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소파에서 놀이방에서 속닥속닥 즐겁게 논다. 이렇게 사이좋게 일어나서 잘 노는 아침은 뭐든지 순조롭게 흘러간다.

아침도 잘 먹고 양치, 옷 갈아입기까지 완벽했다.


아침, 둘째 아이를 유심히 관찰한다.

정확히는 아이의 놀이를 관찰한다.

꼭 엄마가 놀아주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정말 재미있게 논다.

누나가 머리를 빗고 있을 때, 둘째는 화장대에 있는 여러 빗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두 개의 빗을 들고 사마귀가 된다. 두 개의 빗이 앞발이 되어 위아래로 휘두르다가 누나가 하지 말라고 원성이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변한다.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면 그대로 스스슥 침대로 가서 침대를 빗으로 가르며 여전히 사마귀 놀이를 한다.


첫째 등교하러 밖으로 나오면 둘째는 바람이 된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어디 갔지?  두리번두리번 찾는 말을 꼭 해줘야 한다.

아이는 계단 아래 의기양양 멋지게 서 있으며 왜 이렇게 늦었냐고 퉁을 준다. 얼굴은 가볍게 웃음을 날린다.


첫째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다가 친구를 만나 먼저 간다.

둘째는 누나 뒤를 서둘러 쫓아가지만 따라잡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빨간 블록을 밟지 않고 뛰기 때문이다.

빨간색을 밟으면 좀비가 되는 놀이를 혼자서 한다. 빨간 블록을 피해 폴짝폴짝 뛰다 보면 뒤에 우르르 오는 형들 누나들에 치여서 넘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손바닥 탈탈 털고 다시 혼자만의 좀비 놀이를 한다.


첫째가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아이가 따라오지 않는다.

어디 있나 보면 미술학원 앞에 서 있다.

아이들이 그린 알록달록 그림들이 빼곡히 유리창을 덮고 있다.  아이는 미술 학원 유리창 앞에 가만히 있는다. (좀비 놀이는 누나가 학교에 들어가면 끝이 난다.)


-왜 만날 여기 서있어?

-그림 봐.

-무슨 그림? 토끼? 앵무새?

-아니, 물고기!!


어디 물고기가 있다는 거야? 건성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데 집중해서 찬찬히 보다 보면 그림 가운데 딱 하나 푸른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아이는 항상 그 그림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림 감상까지 끝이 나면 엄마가 내민 손을 잡고 가야 하지만 아이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다시 눈을 돌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울타리에 찰싹 붙는다.

차와 부딪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여러 번 경고를 한다.

그래도 아이는 옆으로 옆으로 원숭이가 나무를 타듯 울타리를 잡고 옆으로 이동한다.

그만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이동을 멈출 줄 모른다. 그 가느다란 팔로 울타리를 잡고 옆으로 옆으로 자기가 정한 자리까지 오고 나서야 내려온다. 물론 손바닥은 하얀 먼지로 가득하다.

바로 집에 가서 손을 씻고 이제 유치원에 가나? 싶지만 역시나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차에서 모사 사우르스 영상을 보여주겠다고 꼬시지만 놀이터 먼저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놀이터에서 오래 놀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3종 세트가 있다.


1. 미끄럼틀 타고 내려올 때 숨어있다가 메갈로돈 흉내 내면 놀라는 척 하기

2. 구름사다리에서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대결하기

3. 흔들이 의자에 앉아서 누가 더 빠르나 대결하기


오늘은 그네에 아이들이 몇몇 계속 타고 있어서 그네는 타지 않았다.

이제 유치원 가자!라고 하면 아이는 또 내 앞을 쌩! 달려서 한쪽에 숨는다.

맨날 숨는 장소는 비슷하다. 그러면 나도 아이가 아는 익숙한 장소에 숨는다.

엄마의 뒷모습을 본 아이는 또 달려와서 엄마를 잡고 잡히는 숨 막히는 숨바꼭질까지 해야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지하주차장까지는 또 바람이 되어 엄마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고

나는  -우리 @@이 어디 있지?를 다섯 번 정도 말한다. 그렇게 해야 아침의 놀이가 끝이 난다.

둘째는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복직 후 아침에 눈도 못 뜬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준비를 해서 차에 태워 억지로 들여보낸 것이 3년이다. 아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 안 간다는 말을 선포했다.

- 나 어린이집 안 갈래!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아침의 평화는 깨진다.

아이는 아침의 모든 준비를 짜증스러워하고 힘들어했다.

아침 1분 1초가 빠듯한 엄마는 그런 아이를 챙기는 것이 버거워서 덩달아 화를 내고 하루를 엉망으로 시작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난 지금. 우리의 아침이 달라졌다.

올해 6살이 된 둘째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등원 시간이 평소보다 한 시간 늦어졌기에 늦잠도 자고 누나 배웅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천천히 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 역시 분주할 일이 딱히 없으므로 아이의 놀이를 기다리거나 같이 하면서 여유롭게 보낸다.

미운 4살 5살이라고 치부했던 아이의 떼쓰기와 짜증이 조금은 사그라들고 엄마에 대한 애정 표현이 늘었다. 부드러운 베개와 인형을 부비적하던 아이는 엄마의 팔과 무릎을 안아준다.

말랑하고 따스한 아이의 볼이 나를 스치면 행복이 터지듯 흘러나온다.

아이가 스스로 노는 모습을 볼 때면 저 작은 아이한테 힘이 어디에 숨겨져 있기에 저렇듯 쉬지 않고 놀까?

빨리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에 서두들 때도 있지만 아이의 생생한 생명력을 온전히 느끼며 아이의 건강함에 행복을 느낀다.

조금 특별한 아침을 보낸 우리의 하루도 특별해지기 바라며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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