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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30. 2022

일단 시작했으니 박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시작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나는 아직 수영에 있어서는 쪼그맣고 까만 개구리알일 뿐임을 물속에서 들어가서야 알았다. 


휴직 기간에 꼭 배우고 싶었던 것은 수영이었다.

3월에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코로나 극 절정기였던 3월과 4월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이런저런 5월의 행사가 지나고 전화로 강습 문의 두어 번, 수영복은 이미 사두었다. 제일 무난하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수경, 수모, 가방까지 구비했다. 모든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관문은 수영장 문 앞이었다.


머릿속으로 갖가지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자유형, 영, 영을 마스터하고 접영까지 접수한 나의 모습.

숨이 찰 때까지 왕복 수영을 하며 건강한 근육을 갖게 된 모습까지.

자신감을 가득 충전하고 5월 마지막 주 드디어 수영장 문 앞까지 갔다.

하지만 나의 허약한 자신감은 수영복으로 탈의할 때 허물어졌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꼭 해야 하는 샤워기 하나 차지하지 못해 서성거리다가 겨우 환복했다.

수영 만렙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의 반신 수영복에서 일단 기가 눌렸고  최소 바다사자 이상의 기상을 보여주시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의 여유에서 쭈굴해졌다.


일단 시작했다.

수영을 배운지는 십 년 전 동네 수영장에서 한 달도 못 채우고 눈 라섹 시술 때문에 그만둔 게 다였다.  

그래도 내 몸은 기억할 줄 알았는데 오만이자 자만이었다.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수영 배운 적 있냐는 말에 없다고 한 것이 사실이었다. 내 몸은 다 잊어버렸다.

어린이 수영장에서 숨 쉬는 연습부터 했다.

나보다 하루 먼저 오신 분과 함께여서 다행이다 했는데 그분은 키판으로 왕복 연습을 하고 계셨다.

물속에서 음~소리를 내며 숨을 내쉬고  머리를 들고 파! 터트린 후 가슴 가득 숨을 마시라고 했다.

수경을 쓰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웠는데 이따금 콧속으로 들어오는 따끔한 물도 가볍게 느낄 정도로 숨쉬기 연습을 했다.

첫날은 그렇게 지났다. 40분 정도 혼자 연습하니 벌써 호각 소리가 들려 인사를 했다.

초심자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뿌리치고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싶어 그냥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둘째 날은 금요일.

어제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수강 시간에 딱 맞춰 갔다. 오늘은 킥판을 잡고 발차기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팔을 쭉 펴고 킥판을 잡고 숨을 내쉴 때 머리는 가볍게 들고 파!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에서 천천히 내뱉기!  발은 멈추지 않고 계속 차야 한다.

여전히 어린이 수영장에서 연습을 했다. 어린이 수영장은 깊이 50-60cm 정도로 앉으면 얼굴만 간신히 나오는 정도의 깊이다. 나보다 하루빨리 오신 분은 팔 동작까지 시작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숨쉬기랑 발차기 연습이 제일 중요하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주셨다.

수영장에 있는 누구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지만 나는 열심히 연습을 했다. 여전히 숨 쉬는 것은 어렵고 머리를 너무 치켜들었으며 숨을 가득 머금는 것이 힘들고 발은 계속 땅에 닿았다.
연습하면서 성인 레일을 보았다.

여전히 수영 만렙 아주머니들은 물살을 빠르게 가르고 계셨고 할머니들은 여유 있게 웃고 계셨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 느린 편이다. 그래도 첫날보다는 킥판을 잡고 해서 조금 재미있었다.

같이 어린이 수영장에서 연습하시는 분은 강습이 끝나고도 더 연습하자고 하셔서 어제처럼 도망가진 않고 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둘째가 감기 기운이 있어 오늘은 못가나 했는데 아침이 되니 말끔히 나아서 등원시킨 후 수영장으로 향했다. 처음 온 날보다는 빨리 샤워기를 차지해서 씻고 수영장으로 들어가서 숨 쉬는 연습부터 했다. 이틀 했다고 코로 물은 마시지 않았다. 발차기 연습을 더 힘차게 하라고 하셔서 집중해서 연습했다. 힘들었다.

정말 배우고 싶었던 수영을 하고 있는데 마음이 막 뜨거워지진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내 모습이 아니기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나도 바다사자, 돌고래,  물개가 되고 싶었지 그 시간 안에서 물 마시고 숨차며 허우적대는 나는 그리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했다.

머릿속으로 하는 수영이 아니고 유튜브로 보는 수영이 아니다. 내 몸으로 직접 하는 수영이다.

내 몸이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팔과 발을 휘저을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  

아이들이 처음 학교와 유치원을 갔을 때 매일 이렇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재미있었어?

아이는 일단 침묵하다 겨우
-응 재미있었어.
라고 대답을 했다. 대답이 시원찮으면

-오늘은 뭐 했어? 친구들하고 뭐 하고 놀았어?
질문을 퍼붓는다.

아이는 물속에 빠진 내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눈길이 부담스러워 도망가고 싶었을 수도 있다.

마음처럼 안 되는 몸 때문에 자책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처음을 거쳐 두어 달이 지나 아이는 서서히 적응하고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도 그 시간을 거쳐야겠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배우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주어야겠다. 

엄마가 어린이 수영장에서 숨쉬기도 안되어서 물을 몇 번이나 마셨다는 소리에 아이가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이제 3일 차.

수천번을 넘어져야 걸음마를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수영장으로 옮겨온다. 수 천 번을 허우적거려야 비로소 물과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시작했기에 남은 길은 앞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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