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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20. 2022

설렘과 긴장 사이

우리 반 아이들과 만난 지 이제 2달이 다 되어 간다. 오랜만에 5학년 담임을 맡은지라 처음에는 많은 과목에 자신이 없었다. 영어와 과학 전담 시간을 빼고 나머지 국어, 수학, 사회, 체육, 음악, 미술, 실과, 도덕, 영어 1시간(영어 전담 선생님은 2시간, 내가 1시간 나눠서 한다.) 과목 중 매일 3-4개의 과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육아 휴직 후 내가 맡은 학년이 1학년과 2학년이었고 국어, 수학, 통합이라는 비교적 적은 수의 과목만 준비하면 되었다. 내용이 쉽다고 가르치는 것이 쉬울리는 없었다. 국어와 수학은 1-2학년이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연수를 듣고 적용하고, 아이들 학습 기초를 쌓기 위해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업을 했었다.

하지만 5학년 수업은 1-2학년과는 내용도 느낌도 그리고 난이도도 달랐다.

초임 발령을 받은 다음 해와 그다음 해 2년 연속 5학년을 가르쳤던 기억이 있었고, 전담까지 하면서 5학년 아이들은 3년 연속 가르쳤기 때문에 5학년은 내게 익숙했다. 2월 말 휴직이 확정되고 집에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었을 때 학기 초 업무 분장과 학년 배정 회의의 결과로 내가 5학년이 배정되었다고 알게 되었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내가 신청한 4학년이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5학년이면 수업 시간이 많아 퇴근이 늦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교실로 돌아왔을 때 2학기 시간표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매일 6교시가 기본이었고 교과서도 많았다. 아이들은 익숙한 과목이었지만 나는 무려 10년 만에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아는 것이 있어야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는데 집에 연구용 교과서를 모두 챙겨놓고 수업 전날 공부를 해야 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철저하게.


먼저 펴본 교과서는 수학이었다. 수학은 문과 재질의 사람이지만 겨우 수포자를 면하고 교대에서도 수학 수업이라면 기를 못 편 유일한 과목이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다행히도 이런 나 스스로를 잘 알아서 수학적 사고력은 충분하지 않아도 수학 학습 방법이라도 잘 알고 가르치고 싶어 최근 몇 년간 수학 연수를 꽤 많이 듣고 수학 학습 관련 책도 많이 읽어두었다. 그랬지만 작년까지 두 자릿수의 덧셈과 뺄셈, 곱셈구구, cm 따위의 길이 재기 등을 가르치다가 1학기를 통째로 건너뛰고 2학기 분수의 곱셈을 가르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 스스로가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았다. 매 시간 공부를 하면서 예습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문제를 풀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제일 많이 배웠다.

그런데 1학기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수학에서 제일 중요한 계열성이 없었다. 2학년에서 5학년으로 점프했기 때문에 몇 계단이 사라지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공부를 해야 했다.


사회는 10년 전에 가르쳤던 내용이 대폭 축소되어 있었다. 예전에 가르칠 때는 5학년은 1-2학기 전체 역사를 배웠다. 역사 시대 이전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꽤 자세히 수업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본 5학년 교과서는 많은 곳이 삭제되어 있고 한없이 간단해졌다. 교과서에 있는 부분만 하기엔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에 간단하게라도 중요한 사실을 다뤄야 했다. 매 수업마다 적당한 자료를 찾아서 편집하고, 그것도 안 될 때는 직접 만들어서 수업에 활용하며 수업을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정작 수업을 할 때는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알았던 사건과 인물이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가 많고 헷갈리기까지 했다.


그나마 익숙한 것은 국어였다.

1학년을 할 때는 한글 해득이 국어 교육과정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한글 지도 방법에 골몰했고

2학년은 이렇게 읽고 쓸 수 있게 된 한글을 독서와 한 문장 쓰기로 완성을 시키는 방향으로 가르쳤다.

대부분 아이들은 한글을 이미 읽을 수 있는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국어 시간을 통해 정확하게 쓰고 읽는 연습을 계속해서 충분히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내가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은 한글 미해득이 아이들의 지도였다.

다행히 5학년은 한글 미해득을 걱정할 단계는 지나있었지만 과목 자체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적어낸 글을 읽어보면 놀랄 때가 많았다. 칸이 커다란 10칸 공책에 몇 문장 안 되는 글을 읽다가 진짜 수필과 논설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꽤 많은 아이들이 글 쓰는 것을 잘했고 심지어 너무 잘 쓰는 아이들이 많아 읽을 때 재미가 있었다. 내가 브런치에 글쓰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


과목이 많아 어렵고 힘들다고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선생님인데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이 이렇게 혼란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반 어떤 학생들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교에 갔다. 수업을 할 때마다 내가 공부한 것이 맞았나 틀렸나 채점을 받는 기분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 설 때마다 떨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수업 시간 전, 어디서 발표를 해야 할 때 항상 떨린다. 간단한 인사말조차 부끄러울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연습하지 않으면 준비한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조마조마한 가슴은 매번 떨려서 머릿속에 담은 생각들이 덜덜덜 떨어져 나가 버리지 않도록 연습을 해야 했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과 하는 수업이 그렇다.

수업 연구를 하지 않고 그냥 수업을 할 때는 맨 땅에 헤딩, 옷을 다 벗은 채로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꼴이 되어 버린다. 매 수업 긴장을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그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마치 연못에 떠 있는 오리 같다. 둥실둥실 물 위에 자유로운 오리들은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물장구를 친다.


그런데 이런 긴장이 즐거울 때도 있다.

  아닌 40분짜리 수업이지만 새롭게 아는 내용도 있고 11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그렇다. 그리고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처음이자 유일한 공부아이들의 눈빛이 설렌다.

내가 잘 가르치고 있는지 확신은 없어도 내가 하는 말이 유일한 공부가 되는 아이들도 있기에 적어도 기본은 확실히 알려주자는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선다.

설렘과 긴장 사이, 묘한데 싫지 않은 기분으로 매일 아침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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