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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22. 2023

하루 늦은 악몽

안방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을 거의 다 읽어가는 참이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베란다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단번에 알아챘다. 장수풍뎅이 소리였다. 우리 집에 있는 장수풍뎅이 1호 태풍이(수컷)와 2호(암컷)가 살고 있는 파란 채집통이 소리의 진원지였다.

날아오를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수컷은 뒤집혀있고 암컷은 채집통 문에 꼼짝없이 매달려있다. 먹이통에 있는 젤리를 보았더니 이미 다 먹고 뒤집혀있었다. 몇 주간 비가 계속 내리다가 어제, 그리고 오늘(금요일) 비가 그쳐서 아이들도 조금 더 보송보송해진 톱밥에서 잘 놀았는지 밥도 금세 다 먹어버렸다. 밥 달라고 시위를 버리는 참이었나 보다.


비워진 젤리통, 빗방울 자국이 아직 남은 채집통, 뒤집어진 풍뎅이, 언제 관심 가져줄지도 모르는데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자고 있고 나는 그나마 책을 본다고 안방에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며칠 동안 비가 들이쳤을 베란다에서 이 아이들이 냈을 소리는 누가 들었을까? 그렇게 비가 많이 온 날 우리는 시원하게 거실에서 누워 잤는데 이 아이들은 밤새 그 비를 듣고 마시며 조금 안쪽으로 들여보내달라고 지금처럼 날개를 부딪쳤을까?


나는 얼마나 이런 소리들을 듣고도 모르는 척, 아님 정말 못 듣고 넘어가는 것일까?


하늘이 뚫린 줄 알았다.

수요일 아침 학교 가는 길은 정말 난리통이었다.

빗물이 넘쳐 흙탕물이 되었던 도로는 가까스로 물은 빠졌지만 진흙이며 모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도로 이리저리 쓸려서 모여 있었다. 횡단보도는 진흙으로 형태를 알아보고 힘들었고 산과 가까운 인도엔 작게 산사태가 났는지 나무와 흙이 쏟아져서 뒤엉켜 있었다.

그전날 주말, 전국엔 폭우로 많은 곳에서 인명 사고가 있었기에 이 정도로 넘어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우리 동네도 비가 많이 왔다. 그날 밤에 어쩜 그리도 태평하게 잠을 잘 수 있었는지 남편, 나, 딸과 아들 모두 푹 자서 비 온 줄도 몰랐다.


다들 잘 잤고 우리 집에 아무 일없으면 되지

그렇게 웃어넘겼는데 그 악몽을 단지 하루 늦게 만났을 뿐이었다.


수요일 열 시, 첫째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토를 해서 옷을 다 버렸다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많이 어지러워한다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는 전화였다. 난감했다. 지금 당장 데리러 갈 수 없다는 말에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교문까지 데려다주셨다고 했다.  남은 체육복을 입혀 주시고 아이가 집에 갈 수 있도록 잘 정리해서 보내주신 덕분에 아이는 집으로 혼자서 돌아왔다. 나는 점심시간에 1시간 외출을 내서 집에 들러 아이를 보고 안아주었다.

어디에서 뭘 잘 못 먹었길래 그랬을까 궁금하기보다 아이가 혼자 집에 와서 외롭게 누워있는 것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래도 내심 이젠 2학년이라고 혼자 조퇴도 다하고 대견한 마음도 있었다.

아이 옷을 빨고, 점심을 차려준 후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오후엔 시간이 금방 가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누워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더운데 추워.


아이의 이마, 등, 목덜미에 땀이 흥건했다. 땀을 닦아주는데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있었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다. 장염 초기 증세였다. 그 좋아하는 복숭아를 깎아 주었는데도 한두 조각 먹더니 이내 접시를 내려놓고 어지럽다고 계속 누워있는 모습에 기운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아 안심이었는데 그날 저녁 이제 순서는 나였나 보다.


처음엔 근육통이었다. 뻐근한 것이 아침에 열심히 수영장에 갔던 효과인가? 아니면 오늘 학교-집 하도 많이 왔다 갔다 해서 피곤했나 싶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영 편하지 않고 미세한 통증이 느껴져서 자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러고 12시에 다시 잠이 깼다.

나 역시 추우면서 더웠다.

에어컨은 이미 꺼진 상태였지만 공기는 차가웠고 선풍기 역시 돌아갔기에 시원한 방에서 더 있기 힘들어 안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돌돌 말고 그 안에서 몸부림을 쳤다. 몸살과 오한이 동시에 들어왔다. 그리고 구역감이 몰아쳤다. 그날 밤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폭우 때문에 걱정하던 전날밤을 나는 하루 늦게 배송받았던 걸까

아이가 아프다고 했을 땐 '괜찮아'를 남발하며 아이의 호소도 그냥 투정으로 넘겼는데 그것이 나에게로 왔을 땐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밤새 열, 근육통, 오한, 구토와 사투를 벌이고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아침이 왔다.


출근을 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은 7시였다.

남편은 이미  '이멀전시 emergency' 상황이라면서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있었다.

7시 5분 학년 부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


-부장님, 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오늘 저희 반 보결할 내용 부장님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선생님! 걱정 말고 푹 쉬세요.


-교감선생님, 저 *학년 *반 ***입니다. 장염기가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학년부장님과 교무부장님께 연락 주세요.


-교부무장님, 저 *학년 *반 ***입니다. 장염기가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네. 푹 쉬세요. 병가는 어떻게 할까요?

-네. 제가 병가 상신했습니다.


마지막 고민하다가 교장선생님까지 전화를 돌리니 7시 18분. 4통의 전화를 걸고 나서야 다시 침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편이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첫째는 조금 늦게 나가는데 왠지 얼굴이 어둡다.

어제 아팠던 것이 아직 남아 어지럽나 싶어 불렀더니 엄마 아프다고 울먹거린다. 아이 컨디션도 아직 힘들 것 같아 오늘 학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어지러운 것만 빼면 괜찮다고 해서 보냈다.


8시 30분.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푹 쉬면 되는 거였다. 방 안에서 혼자 열나고 끙끙거리고 어지럽고 다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나니 첫째가 집에 왔고 정신을 차려 병원 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진짜 고통은 그때부터였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의자에 앉아 고꾸라져 있었다. 누가 내 허리를 베어간 것처럼 허물어져 버렸다. 작디 작은 딸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서 순서만 기다렸다.

초기 장염 증세라는 말을 듣고 처방전을 받은 후 약국에 갔다. 약국에선 생전 처음 딸에게 카드를 쥐어 주며 계산을 부탁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하늘이 뒤흔들렸다.

어깨를 누가 잡고 흔드는 것처럼 어지럽고 혼란했다.

그 순간 여기서 쓰러지면 얘는 누가 데리고 가지?

둘째 유치원엔 누가 데리러 가지?

구급차를 타고 가는 게 나을까 그냥 조금 쉬다가 어떻게든 집에 가는 게 나을까?

짧은 순간에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면서 이럴 때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어떻게 인생을 이렇게 살 수가 있는지 못난 나를 욕하면서 그냥 주저앉았다.


-엄마 괜찮아? 차에서 조금만 쉬다 가자.


딸 말대로 차에서 그대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시트를 젖혀 누워 있으니 온몸에 구멍이 열린 듯 땀이 솟아올랐다. 이마, 목덜미, 얼굴 할  것 없이 식은땀이 흥건해서 옷으로 대충 닦았다. 딸은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둘째 유치원은 거기서 5분 거리였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다시 운전을 했다.

이런 상황에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정신을 부여잡고 했다. 둘째는 첫째가 데리고 나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내 생에 가장 긴 1시간이었다.

내 몸이 처절하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와서 또 정신없이 잠을 잤다. 남편은 시운전을 간 터라 집에 아이들과 나뿐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날 엄마 상태가 자신들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는지 오래간만에 둘이 오손도손 잘 놀았다.

그 상태로 또 밤을 지나 새벽이 되어 겨우 회복한 것 같다. 이틀째 제대로 밥을 못 먹고 국에 조금 말아먹거나 과일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구역질은 안 한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던 그 이틀은 끙끙거리고 땀을 흘리고 온몸을 뒤틀게 하는 무분별한 통증까지 최근 들어 가장 무서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살아 있다.


통을 뒤집어엎을 듯 날아오르며 부딪치고, 채집통을 다리 톱날로 긁으며 존재를 알리는 두 마리 장수풍뎅이도 살아있다.


그럼 살아있으니, 나는 괜찮으니 모두 괜찮은 걸까?

어떻게든 이겨냈으니 그럼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어제의 그 시간을 되돌려보라고 한다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겪고 싶지 않을 그 고통을 우리 둘째가 다시 겪어야 한다면?

막아야 한다. 여름 장염은 옮기는 것으로 손을 잘 씻고 더 깨끗이 지내야 한다.

내 땀이 묻은 이불과 베개, 쿠션을 다 빨고 바닥을 밀었더니 조금은 개운하지만 여전히 미심쩍다. 하루 늦은 악몽이 더 길어지지 않도록 글도 끝내야겠다.(나에게는 겨우 하루 이틀이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을 끔찍한 날들이었음에 미안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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