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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l 04. 2023

독후감 쓰는 사람

자유의지 총집합

도서관에 간다.

책을 고른다.

책을 읽는다.

독후감을 쓴다.


초등학교 이후로 독후감 쓰기에 이렇게 매진한 적은 처음이다.

나는 지금 거제 시립도서관에서 행사 중인 섬앤섬길 독서대회 참가 중이다.

이 대회로 말할 것 같으면 거제의 아름다운 길 2미터를 책 1쪽으로 환산하여 목표한 길을 완주하는 독서운동이다. 길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가 원하는 길을 하나 선택한 후 그 길이만큼 해당하는 책을 읽으면 된다. 읽은 후 도서관 홈페이지 독서 일지 탭에 등록한 후 관리자가 승인을 해주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목표한 분량의 쪽수를 다 읽으면 완주하는 시스템이다. 작년에는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을 선택해서 5000쪽을 읽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읽고 싶어서 양지암 등대길을 선택했다.


학창 시절 제일 싫어했던 과제 3 대장을 꼽으라면

일기, 원고지에 각종 글쓰기, 독후감이었는데 학생도 아닌 지금 그 숙제를 다시 하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다른 점이라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독후감 숙제는 일단 책의 앞이나 끝을 펼치고 간단한 줄거리 요약을 찾아 그것을 베껴 쓴 후 마지막에 '정말 재미있었다.'라고 붙이면 끝! 그래서 그런가. 많은 책을 읽었는데 지금 내가 갖게 된 것은 뛰어난 작문 능력도 아니고 문해력도 아닌 구간 점프를 하며 빠르게 읽는 능력이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독후감 숙제를 지금에 와서 왜 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완주하면 특전이 있다.

첫째,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권수가 5권에서 10권으로 늘어난다.

둘째, 완주 증서를 준다.

셋째, 소정의 상품(지역 상품권 만원 정도)을 준다.


소소한 특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책을 한 번에 10권 대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독후감을 쓰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은 후 그냥 지나가면 즐겁고 유쾌했던, 감동받았던, 슬프고 화났던 장면 장면을 잃게 되는 것이 아까웠다. 그렇게 또 다른 책을 배고픈 사람처럼 읽기만 한다. 줄거리만 아는 것 말고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생각들을 다음 책을 읽을 때 버리고 싶지 않았다.

모으고 정리하고 싶었다.

마침 도서관에서 이런 행사를 매년하고 있으니 나의 필요를 충족시킬 따름이다.

4월부터 시작해서 방학 전에 7500쪽을 모두 읽으려고 분발하고 있다. 분량 대부분은 소설이고 요즘은 해리포터를 다시 읽고 있어서 진도가 팍팍 나간다. 한 번에 500쪽 이상 입력하는 것은 안되지만 호흡이 긴 책 몇 권만 읽으면 사실 7500쪽도 금방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도서관에 간다.

책을 고른다.

책을 읽는다.

독후감을 쓴다.

이것들은 모두 내 자유로운 의지의 총집합이다.


뭐든 요약이 가능한 시대, 2시간 반짜리 영화는 20분이면 압축을 해서 재미있는 부분만 보여주는 시대, 16부작 드라마도 1시간이면 내용을 80프로 이상 이해하고 요약본을 본 후 흥미가 생기면 다시 정주행 하는 요즘 같은 때에 독후감이라니 얼마나 예스러운지.

유튜브에 한 글자만 입력을 해도 수백만 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요약 편집본에는 없는,  

독후감에는 나의 시선만이 오롯이 담긴다.

그동안 읽었던 책 목록을 증거로 남기며 7500쪽을 다 읽은 후 다시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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