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영웅
어린 시절 유달리 동물을 좋아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에 반대로 키우지 못했고,
동네 강아지란 강아지는 다 손으로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다.
싫다고 피해 다니는 강아지를 화단으로 몰다가 손등도 물렸다.
이빨 자국과 피가 흥건 했지만,
강아지 주인은 광견병 주사는 맞혔으니 강아지 털을 잘라 손등에 올려 불태우고 기도해 주면 금방 낫는다고 했다. 그랬다. 예전이는 그 정도로 병원에 가는 건 별난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그 후로도 내 정신은 나름 온전했었고(광견병이 판을 치던 시국), 그다음 날도 동네 강아지 뒤를 따라다니는 행동은 여전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문구사 앞 병아리를 마리당 50원에 사서 큰오빠, 둘째 오빠, 나에게 주었다.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매일 쌀이며 곤충을 잡아다 주었고, 잘 때도 함께 했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이불 안에 병아리를 뒀다가, 불상사가 벌어졌다.
구사일생으로 내가 키우던 '삐약이'는 살아남았고 시간이 지나 중닭이 되었다.
누가 닭 IQ가 낮다고 했던가?
' 삐약이'는 내 말을 찰떡 같이 알아 들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종종걸음을 하며 머리를 내 손에 비벼대고 이름을 부르면 쏜살 같이 달려왔다. 그렇게 내 소중한 친구였다.
국민학교 2학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다. 그날은 왜 삐약이를 먼저 찾지 않았을까?
밥 먹으라는 엄마 말에 쏜살 같이 달려가 식탁 앞에 앉으니 뽀얀 국물에 흰색 다리 하나가 덩그러니 보였다.
삐. 약. 이. 가. 삼. 계. 탕. 이. 되. 었. 다.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서러움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대성통곡을 했지만,
어린 시절 식욕이 서러움을 앞서지 못한 건지, 눈물 콧물 섞인 삼계탕을 잘~~~~만 먹었다.
"엄마 삐약이가 너무 찔겨~"
그 후로 두 번 다시는 병아리를 키우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지금보다는 더 많은 고양이들이 동네를 어슬렁 거렸다.
유기묘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고 경상도 사투리로 '살찐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살찐이 한 마리가 집 앞에 버려져 있었다.
이마에 1센티 정도의 버짐이 있었지만, 그때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계속 문질러 주기만 했다.
엄마 몰래 살찐이를 데리고 와 '나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며칠을 숨겨 키웠다.
살찐이를 데리고 온 다음날부터 온몸이 가렵고 동전 모양의 버짐(피부병 질환)이 올라 왔지만 '나비'를 버릴까 봐 무서워 말을 못 했다.
그렇게 또 며칠, 가족 모두에게 가려움증을 옮기고 병원에 들락 거리면서 '나비'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
몇 차례의 회초리와, 벌서기를 하고서야 '나비'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한 달 넘게 피부병으로 가족 모두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나비'는 귀여운 외모 탓에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먹고 사는데 급급했던 그 당시, 비싼 돈을 주고 사료를 살 정도의 형편이 아니였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어서였는지 '나비'는 오래 함께 하지 못했다.
마지막 내 동물 친구로 '진돌이'가 있다.
아빠가 동네 아는 분에게 얻어 왔다며,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종이 박스가 꽉 차게, 푸짐하지만 귀여운 모습으로 토실토실 '진돌이'가 우리에게 왔다.
진돗개도 닮았고 셰퍼드도 닮았는데 주둥이가 좀 짧았고 귀는 접혀서 펄럭거렸다.
너무도 잘 생긴 '진돌이'
어느 집 자식보다 우리 '진돌이'는 더 잘 생겼었다. 품종 있는 어느 강아지보다 더...
엄마도 정성을 다해 키웠다. 식탐도 많았고 힘도 유독 세서 마당에 묶어 놓으면 묶인 기둥을 뽑고 그 기둥을 액세서리 삼아 끌고 다녔다. 6개월 동안 너무도 빠른 성장에 '진돌이'는 사고뭉치가 되었다.
엄마는 주인집 눈치에 커가는 '진돌이'를 버거워하셨다. 보름 이상을 고민하셨다고 한다.
학교에 갔다 오니 '진돌이'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울고 있었다.
'진돌이' 행방을 물으니, 과수원 집에서 데리고 갔다고 했다.
넓은 과수원에 뛰어다닐 수 있고, 먹을 것도 더 풍족히 먹을 수 있다고... 그리고는 계속 우셨다.
슬펐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갔다는 엄마 말을 믿었고, 잘 살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국민학교 6학년되어 '진돌이'를 보러 과수원에 가고 싶다고 물었더니,
엄마는 개장수에게 5만 원을 주고 팔았다고 사실을 털어놨다.
80년 초, 사는 게 팍팍한 시절, 지금 같이 강아지 사료나 간식 구매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웬만한 덩치 큰 성견은 키워서 개장수에게 팔아 수입원으로 생각하던 그런 때였다.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강아지도 키우지 않게 되었다.
내 어릴 적, 세 친구들은 그렇게 짧은 만남을 끝으로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책임지지 못한 데에 대한 죄책감. 인간의 수명보다 더 짧은 수명 탓에 먼저 떠나보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강아지, 고양이를 많이 좋아한다.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고 여전히 엄마에게 혼이 난다.
요즘 TV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면 내 세 친구들은 천국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참 궁금해진다.
세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면 꼭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