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피바라도 물어요

월요일 지하철에서 건드리면 온순한 카피바라도 물어요.

by 닭발공주

카피바라는 성격이 온순한 동물로 알려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오리가 위에 타고 올라와도, 머리 위에 귤을 올려도, 비어디 드래곤이 타고 올라와도 꿈쩍을 안 하고 내쫓지 않는다.

심지어 펠리컨이 자신을 먹으려고 입으로 사이즈를 잴 때도 가만히 있는다.


이렇게 보면 카피바라가 공격성을 하나도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피바라도 공격성이 있다고 한다.

카피바라는 설치류 중 가장 큰 동물이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 물리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한다.

카피바라가 공격성을 띄는 상황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낄 때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웬만하면 나를 건드려도 그냥 내버려둔다. 아무 때나 물지 않는다.


하지만 월요일 지하철 안에서 내 자리를 빼앗는다던가,

인파에 밀려서가 아닌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 나를 강하게 밀치고 간다면

그럼 그땐 물 수도 있다.


피차 지하철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당신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다.

그렇다고 굳이 다른 사람 자리를 빼앗고, 일부러 밀치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처음부터 자리가 나지 않아서 계속 서서 가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지만,

눈치 싸움에 성공하여 자리가 나서 기쁜 마음으로 앉으려고

앉아있던 사람이 편하게 일어나서 나갈 수 있도록 잠깐 비켜주고 앉으려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다 밀치면서 그 자리에 끼어들어와서 자리를 뺏어 앉으면

아무리 온순한 카피바라라도 물어요.


앉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앉으려던 자리에 다른 사람의 다리가 나타나서 그 위에 앉아버릴 뻔했어요.


다른 곳이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지하철이야 말로 동물의 왕국이다.

자신의 본성을 쉽게 드러내는 곳.


인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밀게 된 사람한테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사람,

내려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 못 비켜주었더니 왜 안 비키냐며 싸우려는 사람.

회사 다니고,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든데

지하철에서까지 기가 빨려서 기분이 안 좋은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너무 아깝지 않나요.


우리 서로 배려하고 살아요.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막 대하지 말고, 사람대 사람으로 존중을 하는 지하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제 자리를 빼앗은 분,

당신을 소재로 삼아 글을 썼으니 용서해 드릴게요.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앉고 있는 걸 보면 앉지 말아 주세요.

그 사람도 힘드니까 앉으려고 하겠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원망과 사랑은 한 끗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