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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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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May 02. 2023

수영을 사랑하는 사람들

난 수영을 좋아한다. 평상시 입는 옷보다 수영복 사는 게 더 좋고, 퇴근하고 쉬는 것보다 수영장 가서 발차기하는 게 더 좋다.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도 좋지만 수영 알려주는 영상이 더 관심이 가고, 서점을 구경하다가도 수영장 그림이나 수영에 관련된 제목이라면 한 번 더 보게 된다. 주변에 수영 배워본 사람이 있으면 일단 호감이 생기고 수영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 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수영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만난 적이 없는 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영 시작했을 무렵에는 나만 진심인 줄 알았다. 세상에 나만큼 수영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열정적인 사람, 잘하는 사람, 진심인 사람은 없는 줄 알았다. 좋은 수영복 사이트나 수영 유튜버는 나만 알고 싶었다. 수영장에 결석이 잦은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한 번 수영장에 나오는 사람은 진정한 수영인이 아니라고 감히 판단했다. 나만큼 수영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다.


이 오만과 자만은 2019년 2월 배럴에서 처음 열린 스프린트 챔피언십에서 무참히 깨졌다. 스타트도 못 뛰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대회를 신청했다.(연습량은 그저 퇴근하고 50분 강습, 10분 물장구가 끝)

우리 수영장에서 그래도 빠른 편에 속했고 강사님도 회원님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기 때문에 진짜 잘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회날 그 높은 스타트대에 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들어가 영법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50m 수영장 길이에 압도당했다. (우리 동네 수영장은 25m 레인)


대회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금메달을 받으면 소감을 뭐라고 말해야 하지? 사진 찍히면 어쩌지? 우리 동네에서 유명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일어났는데, 수영장 들어서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타트대에 올라서보니 거의 63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스타트는 포기하고 물속에서 시작했다.


*평영 

벽을 차고 나갔는데 양쪽 옆레인 사람들이 이미 나를 지나쳐서 발끝이 보인다.

‘아. 내가 너무 느려서 나 때문에 대회 시간 뒤로 밀리는 건 아니겠지..?‘

‘언제 끝나냐..’

‘자유형은 그냥 포기할까..?’

‘아직도 멀었나?’

‘언제 도착하냐...’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

다행히 나 때문에 대회가 지연되는 일은 없었다.



*자유형

물속 스타트여서 그런지 시작부터 옆레인 발끝이 보인다.


‘아 그래 뭐 죽기야 하겠어! 그냥 막 달리자!’

‘평영보단 빨리 도착하겠지!’

‘에라 모르겠다!!!!‘


도착하고 전광판을 보니 세 번째로 숫자가 찍혀있다. 와! 3등!!!!!!!!!!!!(물론 예선 탈락)

그리고 맘 편하게 간식을 먹으며 완주메달을 목에 걸고 결승전까지 보고 왔다.


여전히 나는 수영을 사랑한다. 아직도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반갑고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수영 대회를 계기로 자만을 내려놓고 이젠 더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인다. 나만 좋아하는 수영이 아니니까. 우리 모두의 수영이니까.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배워나간다. 꼭 선생님한테만 수영을 배우라는 법은 없었다. 때로는 내 뒤에 있는 회원님한테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옆레인 회원님한테 영상 사이트를 공유받는다. 모두 자기만의 방식대로 수영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해 주면 된다.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정성과 진심을 다해서! 난 오늘도 열심히 수영장 물을 뜨겁게 안아주고 쓰다듬고 밀치고 발로 차 주고 왔다.


나는 수영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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