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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Jun 27. 2023

무뎌지지 않는 행복함으로 가득 찬 일상

독일은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여 경제적으로 그다지 여유가 없는 편입니다.


지출을 제일 못하는 세대지만 경제관념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돈을 쓰는 연령층은 40대가 지나야 가능한 거 같고 퇴직 후 노년층도 우리보다 여유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공연 예술은 집 주변 교회나 마을 회관에서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양질의 콘서트가 많아서 빈부의 격차에 문화의 차이는 없는듯했습니다.


시간과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도시 내 큰 콘서트홀에서의 공연은 놓치지 않는데요,

간혹 홈페이지에 적혀 있지도 않은 연주자의 공연이 매진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독일에서도 콘서트장에 젊은 층보다 백발의 노인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저에게 문화란 명절에 큰댁에 가면 오빠가 틀어놓은 피아노 소품을 듣던 어린 시절에서 시작이 됩니다.


카세트테이프에 소녀의 기도와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피아노 소품곡이 수록되어 있었던 그 시절의 음악 감상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이후로 바이올리스트 조슈아 벨과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런 감정들이 제 아이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가 일기처럼 적은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다른 독일 학생들처럼 부모로부터 독립하였고 연구소 히비를 하며 엄청난 양의 공부에 짠하지만 음악을 통해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것이 기특합니다.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진리, 아름다움, 올바름을 위해"

 


딸의 일기~~


아름다움에 감동받을 줄 아는 감수성은 내가 엄마에게서 물려받고 배운 것이다.


누군가는 쓸모없는 것이라며, 감상에 빠져서 공상하듯 가만히 앉아있는 걸 시간 낭비라고 여길 사람도 많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의 가치를 아는 게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능력이다.


엄마는 우리를 좋은 연주회에 데려가거나 경험을 하는 기회를 가지는 데에 전력을 다 하셨다.


외국에 사니까 뭐 하나 찾는 거에도 시간이 걸리고 어린 우리를 데리고 가면서 길을 돌아서 가거나 차를 잘못 탄 적도 있었지만 언제나 다음 콘서트를 검색하셨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요요마와 Ax, Kavakos트리오.


  나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실황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곳에서 밥을 한번 덜 먹더라도 연주회나 미술관에 정기적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자란 나는 현재 혼자 살면서도 주변 도시들까지의 연주 프로그램을 수시로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너무나 가고 싶은 연주회를 발견했다.


하필 그날은 오후 늦게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시험을 끝나자마자 뛰어도 연주회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까 말까 한 시간이었다.


난 시험장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에 힐을 신고 조그만 핸드백에 펜과 계산기를 억지로 넣고선 갔다.


시험을 치고는 집에 들를 새도 없이 중앙역으로 뛰어가 쾰른행 기차를 겨우 탔다.


그러곤 기차 안에서 직접 만들어온 삼각김밥을 먹었다.


배가  차진 않았지만 저녁을 굶는 것보다 나았다.

 


연주회에 혼지 간다는 건 오로지 나의 마음을 채우기 위한 목적뿐이기에 특별하다.


약속이나 사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 감상을 위해 간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험 후 정신없이 갔지만 그 연주는 확실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 내 마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쾰른이라는 도시에서 춥고 배고프고 혼자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니 세상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은 많이 느낄수록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쌓여서 사소한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해가 좋은 봄날 혼자 산책하다가도 그 활기찬 풍경에 감동을 받는다.


비가 오고 어두운 날이면 또 그런 선율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를 챙겨주는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도 생활의 활기를 준다.


거의 매일 도서관 오픈런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공부와 수업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내지만 힘든 일과 후 먹는 맛있는 케이크 등 내 눈에는 온통 감동스럽고 행복한 일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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