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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Jul 24. 2023

벚꽃 위에 눈이 오는 독일의 4월

변덕스러운 사람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기피해야 할 대상일 수도 있는데 4월 한 달 동안은 너그러움을 구할 수도 있다.


Aprilwetter

독어로 직역하면 4월의 날씨인데 이 시기 독일의 날씨가 유독 변덕스럽다 보니 굳어진 말이다.


평소 귀엽게 얄미운 사람이 있다면 4월의 날씨 같다고 유머스럽게 일침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데 요즘 유행어처럼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독일의 겨울은 시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조량이 부족해서  우리가 가을이라고 생각되는 시월 중순경부터 스산하게 추워지고 11월에는 완연한 겨울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겨울 라이프는 대략 이렇다.



10월 중순

해가 짧아짐을 느끼다가 시월 마지막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끝이 난다.

아날로그식의 시침이 있는 시계는 한 시간을 돌려서 시간을 맞춘다.

서머타임 시작과 끝에 시계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간단한 설명


11월

오후 4시쯤이면 해가 져서 긴 겨울을 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11월 말경부터 도시 곳곳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고 깜깜한 밤에 화려한 불빛의 장이 흥분되는 시기다.


나도 그랬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마다 비슷비슷한 물건을 파는 마켓일지라도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



12월

크리스마스 마켓이 절정에 이르게 되고 연말이라 지인들과 글뤼바인(불어로는 뱅쇼라고 하는데 계피와 과일을 와인과 끓인 음료)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마켓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마켓이 철수되는 24일부터 연말까지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도 줄고 주택가의 골목은 무척 고요하다.



1월

새해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폭죽놀이

새해가 시작되고 아이들의 2~3주의 겨울방학이 끝이 나서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한다.



2월

이 시기의 도시는 회색빛이라고 느껴진다.


평소 외로움을 자주 느끼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감정에 사로 잡힌다고 한다.


아마 긴 겨울나기에 지친 이유가 아닐까?


3월 

일반적인 사람들도 지쳐가기 시작한다.


곧 봄이 온다고 하는데 그 봄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꽃은 폈지만 여전히 회색빛인 도시

그리고 3월 마지막 일요일에 드디어 섬머 타임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아날로그시계의 바늘을 돌리며 드디어 겨울이 끝나가나 생각한다.


4월

마음이 폭발한다!!!


해가 떴다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리다가 또 비가 온다.


분명 날씨가 따뜻해져서 꽃들이 활짝 폈는데 말이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는가? 보일 듯 말 듯한다.


일조량이 적은 게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마음대로 한다. 



겨울을 버티는 법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던 유럽 사람들의 오랜 겨울나기엔 나름의 아이디어가 있기도 했다.


긴 밤의 시간을 공기만 데워주는 라디에이터식의 난방으로 지내기엔 서늘함이 있지만 창문너머 보이는 이웃의 노란색 빛이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주로 실내의 조명을 노랑빛이 나는 전구를 사용하는데 엄마의 품처럼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로등과 함께 노랗게 빛나는 가정의 조명들

그리고 긴 겨울 동안 많은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지낸다.


기나긴 겨울의 밤이 많은 서글픔과 외로움을 줄 때도 있었고 그 나름대로의 멋을 즐기기도 했었다.


겨울이 지나가면

이렇게 긴 겨울이 지나면 우리나라와 같이 벚꽃 소식이 전해진다.


우리에겐 베토벤의 고향으로 알려진 본이라는 도시에는 긴 벚꽃길이 생긴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으로 감상하기도 한다.

안에서 찍은 사진들은 SNS에 매우 많이 올라온다

다만 우리나라와는 품종이 다른 아주 큰 꽃송이로 놀라기도 하고 제법 바람이 불어도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조금 길다.


그리고 점점 길어져 가는 해로 여름에는 밤 10시에도 어두워지지 않고 활기찬 시간을 보낸다.



어릴 적 읽은 이솝우화 중 해와 바람 이야기를 기억한다.


해와 바람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을지 내기를 한다.


힘센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외투는 벗겨지지 않고 오히려 나그네는 꼭 잡고 걸어간다.


얌전하게 방긋방긋 웃기만 하던 해가 따뜻한 햇살을 비추자 나그네는 스스로 외투를 벗고 밝은 모습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바람이 자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자책을 하자 해가 말한 것을 기억하는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다.


바람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이 이야기처럼 기나긴 겨울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과 벚꽃 위에 눈이 내리는 황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모두가 기다리는 화창한 날이 매년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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